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자까 Apr 17. 2021

누가 뭐래도, 나는 내가 예쁘다

<아이 필 프리티>, 방자까의 영화 리뷰

이 영화는 '못난 외모 탓에 자신감이 하락한 여성이 마법 같은 순간을 겪고 절세미인의 삶을 누리다가 결국 본모습으로 돌아와 자존감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 필 프리티>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해주는 마법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생각의 전환'만이 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영화입니다. 지금부터 영화의 제목이 '아이 엠 프리티(나는 예쁘다)'가 아니라 ‘아이 필 프리티(나는 내가 예쁘다)'인 이유를 찾아가봅시다.


아이 필 프리티
I Feel Pretty 


영화 정보를 보지 않고 영화를 시청했기에 망정이지, 줄거리를 먼저 봤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앞서 말한 '그런 류(못난 외모, 매직, 인기녀, 다시 못난 외모, 깨달음)'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시청을 포기했을 것 같거든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의 진가를 발견해나가는 여성들의 성장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뻐지고 싶은 못생긴 여자의 마법 체험기'가 아니라요. 


한 마디로 마법의 샴푸로 머리를 감고 미인의 삶을 경험하는 <두근두근 체인지>나 뚱뚱한 얼굴 없는 가수가 성형 수술로 경국지색이 되어 톱스타의 꿈을 이루는 <미녀는 괴로워> 같은 내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저도 중간까지는 '어, 이거 외모 자신감이 없는 여자에게 하루아침에 초미녀로 거듭나는 기적이 벌어지는 그런 영화구나.'하고 생각했지만요. 


이 영화가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증거는 외모 강박에 사로잡혀 자신감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 '르네 베넷'을 연기한 배우 에이미 슈머가 예뻐지는 마법(?)의 순간 이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르네 베넷'을 연기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조정린 배우가 머리를 감으면 정시아 배우로 바뀌고, <미녀는 괴로워>에서 특수분장을 한 김아중 배우가 성형 수술 이후 특수분장을 벗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이 없습니다.) 이것이 <아이 필 프리티>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매력 포인트지요. 


한편 영화 속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견하는 건 비단 '르네 베넷'뿐만 아닙니다.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에이버리 르클레어'도 CEO와 어울리지 않는 작고 앵앵거리는 목소리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여성으로 등장하는데요. 그녀 역시 (마법 없이) 목소리 뒤에 가려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앞서 '여성들'의 성장 스토리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다고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화 사이트의 줄거리를 보고 이 영화는 '패-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혹자를 말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영화입니다. 줄거리에 현혹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쉽게 사로잡는 이데올로기의 집합체이므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 항상 '다양성'을 염두에 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인들도 기득권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죠.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려면 필히 젠더 이슈를 직면하게 될 텐데요. 혹시 젠더 이슈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 지 고민하는 예비 영화 감독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 영화를 따라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혼성 듀오 감독인 아비 콘과 마비 실버스타인은 예민할 법한 젠더 이슈를 극 속에 부드럽게 굴려내었습니다. 남자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게 부담스러워 줌바 교실에 다니는 남자나 기업을 물려받아 브랜드 라인을 구축하는 젊은 CEO 여자를 등장시킨 것이 일례지요.


앞으로의 영화가 필히 다양성을 이야기해야 하고 다양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젠더 이슈라면, <아이 필 프리티>의 두 감독처럼 혼성 듀오로서의 활동을 고려해보는 것은 어떠실지요?




세상이 변했고, 여성도 변했습니다. 이제 스크린에서 '예뻐진 외모'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여성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더 이상 볼 수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미(美)는 오직 나 자신만의 것입니다. 나 자신만이 느낄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죠. 저 또한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 충분히 멋있다고요. 


Summary

“예뻐져라.. 예뻐져라.. 엇! 진짜 예뻐졌네?!”

뛰어난 패션센스에 매력적인 성격이지만 통통한 몸매가 불만인 ‘르네’. 예뻐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늘에 온 마음을 담아 간절히 소원을 빌지만 당연히 달라지는 건 1%도 없고. 오늘도 헬스클럽에서 스피닝에 열중하는 ‘르네’! 집중! 또 집중! 난 할 수 있다! 예뻐질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 미친 듯이 페달을 밟다가 헬스 클럽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머리를 부딪히고..

지끈지끈한 머리, 창피해서 빨개진 얼굴로 겨우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하다! 헐, 거울 속의 내가… 좀 예쁘다?! 드디어 소원성취한 ‘르네’의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아비 콘, 마비 실버스타인
출연: 에이미 슈머, 미셸 윌리엄스, 부시 필립스 외
매거진의 이전글 'K-좀비물'이기에 가능한 한국형 포스트 아포칼립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