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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Apr 17. 2021

'K-좀비물'이기에 가능한
한국형 포스트 아포칼립스

<반도>, 방자까의 영화 리뷰

지난 7월 15일 개봉한 영화 <반도>를 보러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여서 그랬는지, 처음 관람한 4DX 영화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즐겁게 영화를 즐기고 왔습니다. (<반도>는 IMAX, 4DX, ScreenX, 4DX SCREEN, SUPER 4D, ATMOS의 6포맷 특수관에서 상영되었습니다.)


반도
PENINSULA

<반도>를 두고 '전편보다 못한 속편'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의견에 반대합니다. 설정 오류, 신파, 설명 부족 등 다소 아쉬운 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도>의 스토리라인이 <부산행>만큼 흥미로웠습니다.


대부분 좀비영화는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하나둘 좀비로 변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반도>는 이미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지 4년 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배경을 설명하는 지지부진한 초반부를 다뤄 줄 필요 없이 한국판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류 멸망 이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 보였고, 관객은 영화 시작부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생경한 세상에 떨어진 듯한 색다른 경험이 가능했죠.


<부산행>의 세계관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설정이므로, 전편보다 못한 속편으로 평가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전편만큼 해냈다'고 평가하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꼽을 수 있기 마련인데... 저는 약 한 시간 + α 동안 아래의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어요.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서 대위’였지. 민간인을 구출하던 631부대를 악의 근원지로 바꿔버린 비열한 사람인데, 단지 평범한 삶을 동경하다가 결국 '미쳐 버린 자'를 너무 잘 표현하더라니까. 동정심이 느껴질 정도였어.


아냐, 그래도 한 명만 꼽자면 이레 배우가 연기한 ‘준이’지. 끽해야 중학생 같은 아이가 차로 좀비를 쓸어버리는 카체이싱이라니. 게다가 끝까지 희망을 얘기하는 아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정현 배우가 연기한 ‘민정’이 제일 인상적이야. 목숨을 건 희생정신으로 아이를 구출하는 뻔한 모성애 스토리는 많았지만, 목숨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희망도 놓지 않는 엄마 캐릭터는 처음이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다가 강동원 배우의 ‘정석’, 김도윤 배우의 ‘철민’, 김민재 배우의 '황 중사', 권해효 배우의 '김 노인'까지 놓치고 싶은 인물이 없어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고르는 건 포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캐릭터의 서사가 매력적이었거든요. 연상호 감독의 연출력에 관한 말이 많은데, 저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연상호 감독의 능력을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부여한 서사가 구체적인 편이며, 모든 캐릭터를 적당한 비중으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다뤄주니까요. <부산행>에서도, <반도>에서도 연상호 감독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어느 배우 하나 아깝지 않게, 풍부한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그릇을 잘 마련해주었습니다.


캐릭터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짜놨다는 게 서사를 잘 풀어냈다는 건 아닙니다. 캐릭터의 서사를 탄탄히 구축해놓은 것에 비해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데는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서 대위'와 '민정'의 관계, '서 대위'와 '황 중사'의 관계, '민정'와 '준이'의 관계 등).


캐릭터 대신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를 고르자면, 아무래도 ‘서 대위' 역의 구교환 배우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 대위'는 악의 근원이었다가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자살을 시도했다가 탈출을 염원하는, 그러다가 결국 미쳐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영화 내에서 표현되지 않은 뒷 이야기를 구교환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해냈죠. 구교환 배우는 <꿈의 제인>으로 잘 알려진 배우이자 감독인데요. 연상호 감독이 그의 연기를 두고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같았다고 호평한 만큼, 구교환 배우의 연기는 영화 <반도>의 중요 감상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 대위는) 위태롭고 불안한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일반 청년이었다. (중략)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청년이었다. (구교환, <맥스무비> 인터뷰)




분명 영화는 인류 멸망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이상하게 현실과 맞닿은 부분들이 느껴졌던 건 저뿐이었을까요? 한국인을 ‘반도’ 사람이라 부르며 병균인 양 멀리하는 장면에서는 코로나 시국이 자연스레 연상됐고, '준이'와 '유진'이 좀비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을 게임처럼 즐기는 장면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분명 멸망 이후의 세계라는데, 왜 이렇게 오늘날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Summary

전대미문의 재난 그 후 4년, 폐허의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반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되돌아온 자, 살아남은 자 그리고 미쳐버린 자.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연상호
출연: 강동원, 이정현, 이레,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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