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 간호중>, 방자까의 영화 리뷰
에스에프에잇(SF8)은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anthology)를 표방하며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네마틱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8명의 영화 감독이 참여하였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입니다.
SF8 - 간호중
The Prayer
<간호중>은 근미래의 로봇을 소재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간병로봇'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유영 배우가 연기한 '연정인'은 식물인간 어머니를 10년째 간호하고 있는 근미래의 인간이고, 이유영 배우가 연기한 또 다른 배역인 '간호중'은 환자의 가족 모습으로 만들어진 근미래의 돌봄 로봇입니다. (따라서 로봇 '간호중'은 간병을 시작한 10년 전 '연정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이유영 배우는 한 영화에서 10년의 간격을 둔 한 인물을 연기해야 했고, 매우 훌륭히 해내셨죠.)
'간호중'에게는 두 명의 돌봄 대상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환자인 '연정인'의 어머니와 보호자인 '연정인'. 영화는 10년째 깨어날 기미 없이 누워있는 '연정인'의 어머니와 오랜 기간 이어진 간병으로 피폐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연정인' 사이에서 고뇌하는 로봇 '간호중'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근미래를 상상하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에이, 어떻게 기계가 마음을 갖겠어'하는 결론으로 끝나곤 했는데요. <간호중>을 보고 어쩌면 로봇에게도 복잡하고도 미묘한 마음이란 게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돌봄 로봇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두 명의 돌봄 대상을 10년 간 돌보았습니다. 한 명은 죽을 고비를 앞두고 있어 10년 째 데이터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같은 기간동안 희로애락이 가득한 인생 데이터가 끊임없이 축적되었죠. 로봇인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하겠습니까?
영화에서 로봇 '간호중'은 참으로 로봇다운 선택을 했습니다. 보호자 '연정인'이 환자인 '연정인'의 어머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연정인'의 어머니를 죽여야겠다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판단이 마치 사고(思考)에서 비롯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정량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된 행동일 뿐입니다. 쌓여온 데이터를 토대로 두 명의 돌봄 대상 중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선택, 즉 '연정인'을 살리기 위한 선택에 도달한 것이죠.
로봇 '간호중'의 선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극히 로봇다운 선택이었으나, 저는 그 행동이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는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로봇 '간호중'은 '연정인'을 기다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드는 설렘의 표현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듯 스킨십을 시도하기도 했으니까요. 정말 로봇에게 마음이라는 게 생겨버린 걸까요? 근미래에도 로봇 '간호중'에게 생긴 마음 비스무리한 그것이 정말 인간의 것과 같은 종류인지는 알 방법이 없나 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SF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으로 나뉩니다.
1. 로봇에게 마음이 있을까? (SF적 관점)
2. 생사의 결정은 오직 신의 영역인가? (철학적 관점)
예수정 배우가 연기한 '사비나 수녀'는 로봇 '간호중'이 던지는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인해 평생의 신념이 흔들리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식물인간으로 10년째 누워있는 어머니 때문에 생을 포기하려고 하는 '연정인'을 위해 생사의 결정을 하려는 로봇 '간호중'을 말리려는 사람이자, 결국 자신도 '간호중'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게 되는 인물이지요.
영화 <간호중>은 SF영화지만, SF를 소재로 생사의 결정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4장으로 이야기를 열고 맺었으니 말이죠.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세기 4장 10절)
창세기 4장은 카인이 자신의 형제인 아벨을 죽여 최초의 살인으로 기록된 사건을 다룹니다. 이는 인간이 생사의 결정에 관여한 첫 번째 사건이기도 한데요.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려던 로봇을 신념으로 뜯어말리던 '사비나 수녀'는, 감히 로봇이 인간의 생사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마치 마음이 있는 듯 고통스러워하는 로봇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창세기 4장을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영화가 답을 내리지 않았듯,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을 곱씹으며 로봇의 마음에 대하여, 신의 영역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로봇에게 마음이란 게 생긴다면, 과연 그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마음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로봇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에게 데이터가 쌓이고 또 쌓이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에 없던 데이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데, 그럼 어쩌면... 로봇에게도 마치 오류처럼 마음이란 게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끊임없는 질문에 빠지게 하는 영화, <간호중>이었습니다.
요양병원에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와 지칠 대로 지친 보호자, 그 둘을 보살피던 간병로봇이 자신의 돌봄 대상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 고뇌에 빠지는데... (출처: MBC)
감독: 민규동
출연: 이유영, 예수정, 염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