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테스트에 빠져드는 이유

1화. 즐기다, 표현하다, 웃게 하다

by 방자까

인터넷에서 재밌는 심리 테스트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참신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법’.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수백 개의 동사 가운데 ‘가슴을 뛰게 하는’ 10개의 동사를 고른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10개의 동사를 3개로 줄인다. 그렇게 최종 선택된 3개의 단어가 자신의 비전이며 성향이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시간이나 때울 심산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어느 순간 누구보다 진심으로 테스트에 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심리 테스트가 공신력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에 관해 알아내고 싶은 욕구는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알아내기 어려운 존재다. 심리 테스트는 이런 ‘나’를 정의해주는 고마운 도구다. 그것도 몇 가지 질문만으로 쉽고 빠르게. 비슷한 결과를 받은 참여자들의 반응은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약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하고, ‘검사’라는 단어는 공연히 객관성을 더해준다. 출처가 불분명한 비공식 심리 테스트에도 자꾸만 마음이 동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또 어떤 ‘나’를 알게 될까 내심 궁금했다. 심리 테스트와 함께 올라온 이미지에는 엄청나게 많은 동사가 나열돼있었다. 협상하다, 정돈하다, 결정하다, 구매하다, 조종하다, 공유하다, 구조하다, 추진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사들이 다 여기 모인 것 같았다. 테스트는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단어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효한 단어를 고를 것’을 강조했다. 뜨끔했다. 나도 모르게 ‘도전하다, 실현하다, 결정하다, 소통하다’와 같이 대기업 인성 검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법한 단어에 눈길이 가던 참이었다. 애써 내재화된 사회 통념, 기준, 규범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것들이 내면의 소리와 뒤엉켜버리면 분간이 어렵다. 대한민국 수험생 중에 오로지 양질의 고등 교육을 받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도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내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온전한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별별 단어가 다 눈에 들어왔다. 모든 동사가 다 나에게 유효해 보였다. ‘기록하다’도 좋았고, ‘조사하다’도 마음에 들었다. 수십 개의 단어를 목록에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10개쯤은 가뿐히 추려내겠거니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할 단어, 아빠가 마음에 들어 할 단어,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할 단어는 단숨에 10개를 고를 텐데. 나에게 유효한 10개의 단어를 고르는 데는 무려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특히 마음에 와닿는 단어 3개를 고를 차례였다. 단어들을 한동안 응시하며 마음의 요동에 집중했다. 신기하게도 몇몇 단어에 마음이 반응했다. 최후의 단어는 ‘즐기다, 표현하다, 웃게 하다’였다.


내가 골라놓고도 뜻밖이었다. 최후의 단어를 한참이나 노려봤다. 너희는 왜 나에게로 온 것이냐. 글자는 말이 없었다. 매우 불친절한 심리 테스트였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이 단어들이 내게로 온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찌 됐든 이 단어들이 내게 울림을 준 이유가 있을 테니까.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고민하던 내게 엄마께서는 이런 말씀을 툭 건네셨다. “엄마가 보기엔 넌 국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엄마에겐 아마도 이런 말을 한 기억조차 남지 않았을 만큼 가벼운 조언이었다. 이과의 선호도가 문과를 앞지르기 시작한 시절, 그렇게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글쓰기와 가까워진 건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말씀하신 ‘재능’에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한국어 맞춤법 규정을 세세하게 외웠고, 대학생 때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 글쓰기를 가르쳤다.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며 글과 잠시 멀어지나 싶었지만, 영어로 일하는 그곳에서도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을 했다. 퇴사 후 돈을 벌 수단으로 떠올린 것도 역시 글쓰기였다. 쓰고 또 쓰는 하루가 이어졌지만, 재밌었다. 팔랑귀 덕분에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즐길 수 있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웃게 하다’는 아무래도 의외의 단어였다. 나는 내향형(Introvert) 인간이란 말이다.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관계를 돌보기보다는 내면을 가꾸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반드시 객체가 존재하는 ‘웃게 하다’를 골랐다. 문득 조회수가 높았던 몇 편의 글에 달린 댓글들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내 글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어 좋았다고 했다. 모든 댓글이 감사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댓글은 “재밌게 잘 읽었다”는 내용이다. 재미를 주었다는 사실은 뿌듯한 성취로 남았다. 뿌듯함은 나를 키워주는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웃게 하다’라는 단어가 나에게 왔구나. ‘웃게 하다’는 ‘성취하다’의 아름다운 표현이었다. 우습게도 엄마의 말 한마디가 나를 쓰게 했고, 출처조차 없는 테스트가 나도 몰랐던 일의 지향점을 알려주었다.


아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심리 테스트에 빠져들 운명인가 보다. 어떻게든 최후의 단어와 내 인생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있으니. 하물며 이 단어들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는 생각까지 해버렸으니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에게로 온 세 개의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즐길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표현하며 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웃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중을 위한 글’과 ‘나를 위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