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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Apr 17. 2021

만개한 대중문화를 향한
스티븐 스틸버그의 헌사

<레디 플레이어 원>, 방자까의 영화 리뷰

간만에 스펙타클한 SF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숨죽이고 볼 수밖에 없는 잔잔한 영화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이렇게 시끌벅적한 잔칫집 같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아바타> 이후로 제 눈을 이렇게 호강시켜준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영화 이야기를 주절거리기에 앞서, 이 작품을 추천해주신 저희 아빠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덕분에 재밌게 잘 봤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포스터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게임을 소재로 하는 영화입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해보셨다면 아마 1P, 2P가 뭘 뜻하는지 알고 계실 겁니다. 영화 제목의 플레이어 원(Player 1)이 뜻하는 건 바로 이 1P, 즉 2인용 게임의 첫 번째 플레이어를 말합니다. 이처럼 <레디 플레이어 원>은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제목은 후술할 영화의 주제 의식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죠.


물론 VR기기가 전면에 등장하고, 영화 자체가 반은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세계)에서 펼쳐집니다만, 이 영화를 단순히 ‘게임 영화’라고 퉁쳐서 설명하기엔 조금 아깝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모두 느끼실 테지만, 영화는 게임보다도 ‘대중문화사’를 소개하는 데 더욱 진심이거든요. 매 장면, 매 대사마다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온갖 대중문화를 인용하고 오마주한 게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이런 포스터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킹콩부터 시작해서 샤이닝, 마인 크래프트, 건담, 고질라, 스트리트 파이터... 영화 속엔 시대를 풍미한 대중문화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그것들을 영화 스토리의 핵심인 ‘이스터 에그’로 표현한 포스터입니다. 그마저도 “이게 전부일까?”라고 말하는 걸 보면 저것보다도 더 많은 대중문화 요소들이 영화 속에 등장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죠. 제작비의 80%가 판권이라고 하니, 말 다 했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모든 인용과 오마주들을 캐치할 수 없는 저 자신이 통탄스러웠습니다. 저는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영화만은 예외로 두어야겠습니다. 알고 봐야 더 재밌는 영화, 많이 알수록 재미가 커지는 영화, 그게 바로 <레디 플레이어 원>입니다. 영화 속 숨은 의미 찾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에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실 온갖 문화 요소로 가득 채운 압도적인 비주얼은 맛있는 양념일 뿐입니다. 영화가 다루고자 했던 진짜배기는 따로 있거든요. 바로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보다는 따뜻한 밥이 있는 현실 세계가 낫다는 것, 나아가 혼자서 게임 세계에 빠져 살지 말고 현실 세계의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양념이 맛없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는 최고의 양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영화를 그저 ‘게임 영화’로 퉁치기 힘든 또 다른 이유입니다. 휘황찬란하게 게임 속 세계를 구축해놓은 것과는 정반대로 감독은 곳곳에 게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심어두었습니다. 사실 심어두었다기보단 대놓고 드러낸 편에 가깝지만, 비주얼적인 요소가 너무 강해서 잘 느껴지지 않죠.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이사하려고 모아둔 부인의 쌈짓돈을 게임 머니로 탕진해 버리는 남편이라든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현실에서의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덕 기업 같은 것이요. 심지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오아시스’에선 모든 캐릭터가 상처를 입거나 죽을 때 피 대신 코인을 흩뿌리고, 캐릭터를 잃은 사람들은 실제 자신의 목숨을 빼앗겨버린 양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게임을 소재로 대중문화사를 풀어나가는 흥미로운 선택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현실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션을 모두 클리어하는 건 주인공 ‘웨이드’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최강 클랜(Clan)과 함께였죠. 그런데 이 최강 클랜의 구성원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빈곤층, 외모 결함이 있는 여성, 흑인, 동양인, 어린이까지. 모두 오늘날 사회적 약자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죠. 2045년에도 계층 간 구분이 명확한 것으로 묘사되었으니, 씁쓸하지만 20년 뒤에도 이들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가 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 강자를 무너뜨리는 스토리는 언제나 통쾌함을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앞서 영화 제목이 주제 의식과 맞닿아있다는 이야길 했는데요. ‘웨이즈’의 아바타 ‘파시발’은 영화 초반부터 여러 번 클랜(Clan) 없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팀원들과 힘을 합쳐 미션을 헤쳐나가고, 승리를 거머쥔 순간에도 영광을 팀과 나누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죠. 영화 속에서 오아시스를 개발한 ‘할리데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건 1인용 게임이 아니야.”


‘플레이어 1, 준비하세요(Ready, Player 1)’라는 영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1P가 있으면 반드시 2P도 있다는 것, 영화의 제목은 이렇게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용철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밥보다 영화가 좋은 사람에겐 기적과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는데요. 저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용철 평론가처럼 <레디 플레이어 원>의 참맛을 느끼지 못해 너무 아쉬웠어요. 대중문화를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


Summary

2045년, 암울한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하다.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 역시 유일한 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것이다.

어느 날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가 사랑했던 80년대 대중문화 속에 힌트가 있음을 알린다.

제임스 할리데이를 선망했던 소년 ‘웨이드 와츠’가 첫 번째 수수께끼를 푸는 데 성공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현실에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IOI’라는 거대 기업이 뛰어든다.

모두의 꿈과 희망이 되는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그리고 우승을 위해서는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세계의 우정과 사랑의 힘이 필요하기만 한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마크 라일런스, 사이먼 페그, 올리비아 쿡, 타이 쉐리던, 벤 멘델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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