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은 어쩐지 구질구질하고 지질해

13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들

by 방자까
제발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이 말은 헤어짐을 앞둔 연인에게 전하는 지긋지긋함의 표현이 아니다. 누가 쓰레기장에 버린 가구를 보고 “집에 가져갈까…”라고 혼잣말하며 고민하는 나를 향한 엄마의 한방이다.


나의 선택들로 가득한 내 자취방은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구질구질한 취향들로 채워져 있다. 정말 나는 구질구질한 취향의 소유자일까? 지금부터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몇 가지 물건을 소개해보겠다. 엄마가 “제발 좀 버려!”라고 일침을 가했거나 “그냥 하나 사면 안 되니?”라고 물으신 전적이 있는 물건들로 엄선했다. 엄마의 단언처럼 내가 그렇게 구질구질한 취향의 소유자인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주길 바란다.


별 모양 무늬가 인쇄된 보디 필로우. 친척 집에서 주인 없이 외로이 침대를 지키던 녀석을 우리 집에 모셔 왔다. 친척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이 녀석과 처음 만났다. 약간의 사용감이 있었고, 군데군데 얼룩도 보였지만, 하룻밤만 베고 잘 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그 녀석으로부터 기적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누워도 불편함이 없도록 몸 전체를 지지해주는 U자 모양의 폭신폭신한 솜 베개. 잠의 요정이 숙면을 위한 마법을 걸며 밤새 보살펴주는 것 같은 아늑함. 아주 오래간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미소를 지으며 잠을 청하는 침대 CF의 광고 모델처럼,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로 그렇게 잠에 들었다. 침대에 어떻게 누워도, 어떤 베개를 써도 불편하던 시기였다. 딱히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 녀석이 놀라운 숙면의 밤을 선사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친척 어른께 보디 필로우의 기적을 간증하듯 털어놓았다. 친척 어른은 마침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베개라며, 흔쾌히 가져가라고 말씀하셨다. 보디 필로우를 어깨에 둘러멘 나를 향해 부모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을 구태여 가져가야겠느냐고, 새로 사도 그리 비싸지 않다며 말리셨다. 사실 이 녀석은 베개 커버를 벗겨서 세탁할 수 없는 제품이었고, 무엇보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다(애매한 갈색 천에 주먹만 한 크기의 별 모양이 잔뜩 인쇄된 디자인이다). 크기도 내 몸만 해서 집에 두면 인테리어를 해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다른 보디 필로우가 이 녀석처럼 나에게 숙면을 선사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 녀석을 버리고 새 보디 필로우를 사는 건, 한 마디로 도박이었다. 이 녀석은 게다가 공짜인 걸! 결국 사람만 한 보디 필로우를 자동차 뒷좌석에 욱여넣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다행히도 집에 돌아와서 보디 필로우의 커버를 벗길 수 있는 지퍼를 뒤늦게 발견했고, 이 녀석을 새것처럼 세탁할 수 있었다. 바느질도 못 하고, 재봉틀도 할 줄 몰라서 대형 천으로 새로운 커버를 만들겠다는 야심은 접어두었다. 대신 이불 안쪽에 안 보이게 넣어두고 쓰고 있다(꼭 사람이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 밤이면 흠칫 놀라곤 한다). 어쨌든 이 녀석과의 동침 이후로 수면의 질 그래프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에, 무척이나 아끼며 사랑해주고 있다.


우유 팩으로 만든 양말 및 속옷 보관함와이어로 만든 컵홀더. 어릴 적 방학 때면 어김없이 하곤 했던 재활용품으로 생활용품 만들기. 나는 지금도 때때로 그 숙제를 한다. 꼭 해야 한다고 시키는 선생님도 없는데 말이다. 우유 팩, 종이 박스, 페트병을 보면 뭐든 만들어보고 싶다. 다이소에서 2천 원이면 살 수 있는 보관함들을 굳이 이런 것들로 만들어본다. 카페에서 받아온 종이컵을 연필꽂이나 조명 갓으로 쓰고, 페트병을 잘라서 수경재배용 화분을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우유 팩으로 만든 양말과 속옷 보관함은 만들어 쓰는 물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유 팩은 따로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유 팩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종이 팩 수거함이 따로 없어서 어찌하지 못하고 베란다 한구석에 몇 개월째 모아 두고 있었다. 그렇게 우유 팩을 모으다가, 어차피 버리지도 못할 바엔 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인터넷에 ‘우유 팩 방학 숙제’를 검색해 자료조사를 하고, 15칸짜리 보관함을 만들었다. 우유 팩은 단면이 정사각형이라 무언가를 일정하게 정리하기 좋고, 가볍고 얇아서 클립으로도 쉽게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곱게 갠 양말과 속옷이 아주 제자리인 양 쏙쏙 들어간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재활용에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스쿠터에 물통이나 텀블러를 거치할 컵홀더가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던 차에, 집에 굴러다니던 공예용 와이어와 일회용 커피 컵이 눈에 띄었다. 이 두 가지를 사용하면 꽤 괜찮은 컵홀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한 다음, 와이어를 이리저리 구부려가며 열심히 만들어봤다. 하지만 장렬하게 실패했다. 컵홀더에 물통을 꽂고 달리면, 3초 만에 물통이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실패작을 보신 엄마께서는 제발 그냥 하나 사라며 혀를 쯧쯧 차셨다. 그러나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작은 서랍 한쪽에 잘 보관해두었다. 오늘의 실패를 발판 삼아 내일은 더 나은 작품을 만들리다.


저장 강박증으로 오해받는 다이어리 용품. 내 취미 생활인 다이어리를 쓸 때도 구질구질한 취향이 한껏 발휘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내 친구 중 한 명은 내가 다이어리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재활용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라프트지를 사는 대신 병원에서 받은 황갈색 서류 봉투를 잘라 붙이고, 스티커를 사는 대신 과자 봉지나 포장지 등을 오려 붙이고, 여기저기서 받은 종이 쪼가리들을 그럴듯하게 배치하곤 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 꾸미기에 쓸만한 것이면 일단 모으고 보는 손버릇 때문에 ‘구질구질한 저장 강박증’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물론 유명한 문구 브랜드에서 다이어리 용품을 잔뜩 사본 적도 있다. 언제나 구질구질하게 구는 것만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으레 말하는 ‘힙한 감성’보다는… 맞다, ‘구질구질한 감성’이 더 잘 어울린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좋아하는 감성은 구질구질함 속에 피어나는 묘한 매력 같은 거였다.


고작 세 가지를 추려보았을 뿐인데, 독자들의 판단 없이도 내가 아끼는 것들이 지질하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나는 값을 주고 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적은 것 같다. 우리는 값에 부합하는 쓸모나 만족도를 기대하고 물건을 구매한다. 그러니 물건이 예상했던 쓸모나 만족도에 조금이라도 못 미친다면, 실망이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가 값 이상의 쓸모를 찾아준 물건이라면 어떨까? 그 쓸모만큼 애정이 커진다. 아무런 쓸모도, 만족도도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의 딱 맞는 쓰임새를 찾아주면, 예상치 못한 행복이 찾아온다. 보잘것없고 변변찮은 것들이 제 역할을 찾으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어린 시절,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똥』은 쓸모가 없다고 여긴 강아지똥이 자신의 쓸모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 동화의 결말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의 거름이 되었듯이, 모든 것은 쓰임이 있다.


인정한다. 나는 구질구질하고 지질하며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그런 것들이 내게로 와서 쓸모를 찾아 좋다. 어찌 보면, 나는 탁월한 안목을 가진 걸지도 모른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것들의 쓸모를 분별해내는 안목. 그러니 구질주질하고 지질하다고 해도, 아이 돈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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