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

14화.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법

by 방자까

영화 <밀양>은 납치범에 의해 아이를 잃은 엄마 ‘신애’의 이야기다. 아이를 잃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살던 ‘신애’는 어느 날 운전 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을 칠 뻔한다. ‘신애’는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건넸지만, 행인은 그녀를 향해 이렇게 소리친다.


미안하다면 그만이가? 사람 쥑이놓고도 미안하다 말만 하마 되겠네?


만약 행인이 ‘신애’의 상황을 알고 있었더라면 아무리 놀랐더라도 저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애’는 고작 얼마 전에 자신의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상황을 겪었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인은 ‘신애’를 ‘엄한 데 정신이 팔려 나를 칠 뻔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나무랐다. 영화에 더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행인은 돌아서며 쯧쯧 혀까지 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애’의 이야기를 지켜본 관객들은 안다. 행인의 질타를 들은 ‘신애’가 느꼈을 허망감과 분노를.


행인이 ‘신애’의 사정을 몰랐듯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억울함을 호소할 때 흔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남을 함부로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사실을 토대로 하는 객관적인 판단이라며 자위한다. 그러나 사실은 진실의 한 조각일 뿐이다. 진실은 전후 사정과 맥락은 물론, 감정과 생각, 여기에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OO 씨 외모는 등급으로 따지면 중이나 중하 정도는 돼요. 화장하면 중상까지는 충분히 올라가지.” 추측건대 그는 나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주겠다는 명목하에 이런 말을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라는 사람의 진실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착각하기까지 했다. 외모에 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렇게 무례함을 모르고 당사자에게 자신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을 평가하면서 살아간다. 그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타인을 주어로 두고 ‘~해 보여’, ‘~할 것 같아’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라. 그는 불행해 보여. 언니는 돈을 헤프게 쓸 것 같아. 그 아저씨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 보여. 이런 말들은 모두 단편적인 사실만을 보고 단정 지은 평가들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들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그럼 남을 평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TVING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서울체크인≫에 출연한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가 나눈 대화에서 찾았다. 아래는 둘의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는 미워할 사람들이 많아. 생각해 봐, 우리도 이상할 때가 많잖아.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다른 면을 계속 보려고 해야 해. 그 사람을 귀여워해 보는 거야. 내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봐. 그러면 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일걸? 다르게 말하면 연민을 갖고 바라보는 거야. 그렇게 보니까 이젠 싫은 사람이 없어. 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여.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 복잡하잖아. 사랑해버리면 모든 게 해결돼.


사실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면,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였다. 그 사람의 이면을 떠올림으로써 아예 사랑해버리겠다는 마음가짐.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 사람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내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내뱉은 동료를 나는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미워함으로써 그를 평가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인간의 반보성이 작동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내 영화 속, 내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는 어떻게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었을까?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을까? 그게 나와 대화하려는 유일한 방편은 아니었을까? 질문을 거듭하면서 신기하게도 그가 미웠던 마음이, 그를 비난하던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의 말처럼 그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가하는 건 쉽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미워하는 건 쉽고, 사랑하는 건 어렵다. 이 세상에는 미움을 촉발하는 수많은 감정이 있지만, 사랑을 촉발하는 건 오직 관심이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만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나와 맞닿아있는, 혹은 맞닿아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예단하고 평가하며 사는 건 너무 못났잖아. 눈앞의 사실에 관심과 상상을 더해 진실을 찾아 나서보자. 설령 그것이 진짜 진실과 다른 모습이더라도, 사랑해버리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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