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스마트폰이 멈췄다

15화. 내가 스마트폰의 노예라니

by 방자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지도 앱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제일 빠른 버스를 검색했다. 밤사이 쌓인 카카오톡 메시지에도 답장했다. 친구와 통화하며 오늘 만나서 무얼 먹을까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갑자기 통화가 끊어졌다. 뭐지? 스마트폰 화면에 뜬 문구는 ‘통화 실패’. 통화 당사자 중 한 명이 전화를 끊으면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통화 종료’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우측 상단에 또 하나의 낯선 문구가 보였다.


‘SIM 없음’


조금 전까지 멀쩡히 통화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지도 앱을 살펴봤는데. 갑자기 SIM 카드가 없다니? 평소라면 구글에 ‘아이폰 SIM 없음’을 검색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당연한 수순을 밟을 수 없었다. 전화, 메시지, 인터넷 모든 것이 먹통이었다. 10분 전만 해도 발걸음을 떼는 순간마다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었던, 지나치게 친절하고 한없이 당연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한순간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약속 시간이 당장 1시간 뒤였다. 아까 전 지도 앱이 알려준 소요 시간은 대략 40분. 혹시나 길을 헤맬까 봐 20분 정도 일찍 나왔지만,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고작 버스 번호와 하차해야 하는 정류장 이름이 전부였다. 어떤 버스 정류장에서 몇 번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지, 목적지까지의 도보 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늦는다는 양해를 구할 방법도 없었다. 친구도 급작스럽게 끊어진 통화에 당황하고 있을 터였다. 일단 버스를 탔다.


다행히 버스에 공공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 세상과 연결되자마자 급히 지도 앱을 켰다. 환승해야 하는 버스 정류장과 최종적으로 하차해야 하는 버스 정류장의 이름, 위치, 번호를 스크린샷으로 찍었다. 그다음에는 최종 하차한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경로를 캡처했다.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상황 설명도 했다. 전화가 먹통이라 메신저 앱의 음성 통화 기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연결 상태가 불안정했지만,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환승해야 하는 버스 정류장에 가까워질수록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버스에서 하차함과 동시에 나는 다시 세상과 단절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평소라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다음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수백만 개의 동영상을 재생해주던 스마트폰은 작동을 멈췄다. 달리 하는 수 없이 버스 도착 안내판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8분 남짓을 기다려야 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정말 느리다. 8분이 마치 억겁의 시간 같았다. 8분은 웬만한 유튜브 영상 1개도 채 보지 못할 시간이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쉭쉭 넘기며 숏폼 영상 대여섯 개 보면 금방 흘러가 버릴 시간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그 짧은 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버스 도착 안내판을 쳐다보다가 SIM 카드 없이도 작동하는 카메라 기능을 가지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았다. 그 와중에도 말이다.


환승 버스를 타고 목적지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아까 캡처해둔 지도 앱의 경로를 보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지도 앱이었다면 나의 움직임에 따라 경로 위에 표시된 빨간 점이 함께 움직였을 텐데, 캡처해둔 지도에는 나의 아바타가 없었다. 내가 디지털 지도 위에 표시된 길을 따라 걸을 줄만 아는 길치였다는 걸 오랜만에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길을 찾았다. 몇 번 길을 헤매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험난한 여정이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SIM 없음’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궁금해졌다. 친구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접촉 불량이 이유였다. SIM 카드를 뺐다 껴보거나 새로운 SIM 카드를 장착하면 해결된단다. SIM 카드를 빼려면 SIM 트레이 옆 작은 구멍에 꽂아 넣을 만한 도구가 필요하다. 클립 정도면 된다. 하지만 누가 외출할 때 클립을 휴대하고 다닌단 말인가? 결국 동네 스마트폰 대리점에 들러 SIM 카드를 재장착했다. ‘SIM 없음’의 자리에 그리웠던 ‘LTE’ 표시가 떴다.


혹시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지국부터 망가뜨려라. ‘SIM 없음’과 같은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정처 없이 와이파이만을 찾아 헤맬 것이고, 끝끝내 와이파이를 찾지 못하면 속절없이 방황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가져다준 편리함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만큼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이 없는 삶에도 점차 적응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시작된 스마트폰 없는 삶은 분명 혼돈 그 자체이리라. 수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좀비의 창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의 방랑객이 생명수를 찾아다니듯이 와이파이를 찾아다녔다. 와이파이는 물처럼 내 생명과 직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좀비 같은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내 삶의 주인은 스마트폰이었고, 나는 스마트폰의 노예였다.


때때로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이전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곤 했다. 편지를 주고받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지난 며칠 간의 일을 공들여 적은 편지에 우표 한 장과 함께 마음을 보내던 그 시절, 우편이 잘 도착했으려나 하는 기대감과 걱정,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 같은 것들이 지구를 꽉꽉 채우던 그 시절에. 아니면 삐삐 세대는 어떨까? 상대방에게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 줄지어 서고, 숫자를 조합해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던 그 시절 말이다. 뭐든 쉬워진 이 세상이 싫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편리함을 얻고 소중함을 잃었다. 우리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당연한 일은 소중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문제의식은 문제의식일 뿐이다. 이번 'SIM 없음' 사건으로 깨달았다. 나는 절대 편지 세대, 삐삐 세대로는 살 수 없다. 이미 편리함에 중독되어 버렸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삶을 거부하기엔 너무 늦었다. 디지털 세상없이는 현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렇지만 당연함에서 벗어나고, 소중함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해봐야겠다. 'SIM 없음' 사건 이후, 나는 스마트폰에 내 모든 것을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스마트폰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애써 멀리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 적어도 스마트폰 없이도 버스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던 8분의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지지는 않도록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 흔들리는 나뭇가지, 따뜻한 햇살, 살갗을 스치는 바람, 붕어빵 트럭의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얼마 전에 스마트폰 셧 다운(shut down) 앱을 내려받았다. 타이머를 켜면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의 다른 앱들을 이용할 수 없는 앱이다. 이 앱 덕분에 스마트폰과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다. 스마트폰을 하는 대신 멍하게 있거나 주변을 관찰하는 시간을 늘리며 스마트폰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다니,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슬픈 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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