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연재 노동 경험기

‘자까의 세상’ 에필로그

by 방자까

2022년 7월 2일, 큰 포부를 안고 ‘자까의 세상’을 시작했다. ‘자까의 세상’을 시작하며 다짐한 것은 딱 세 가지. 첫째, 나를 위한 글을 쓸 것. 둘째, 매주 쓸 것. 셋째, 15편을 끝으로 완결할 것.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실패했다고 말하기엔 아쉽다. 소중한 첫 번째 연재물 ‘자까의 세상’을 마치며, 뭣도 모르고 연재 노동에 뛰어든 지난 반년을 돌이켜보려 한다.


연재 글쓰기의 구성 요소는 주제, 글감, 끈기이다. 열 편 이상의 글을 연재 형식으로 쓰려면 각각의 글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가 필요하다. 또 각각의 글은 저마다의 글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글감을 찾아 꾸준히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끈기가 중요하다. ‘자까의 세상’은 주제, 글감, 끈기 면에서 모두 애매한 성공과 아쉬운 실패를 남겼다.


먼저 주제 면이다. ‘자까의 세상’의 주제는 ‘세상을 관찰하며 찾아낸 일상 속 글감’이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연재 글쓰기를 하려면, 당연히 세상을 관찰하며 일상 속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 반년 전의 내가 호기롭게 정한 주제는 실은 주제가 아니었다. 밥을 먹으려면 반드시 쌀을 씻어야 하듯이 필히 해야 하는 일을 두고 주제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저 일상에 관해 쓸 생각이었으니, 차라리 간결하게 ‘나의 일상’으로 정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있어 보이게 꾸며대다가 망해버렸다.


‘세상을 관찰하며 찾아낸 일상 속 글감’이라는 헛주제는 집어치우고, 그렇다면 ‘나의 일상’은 과연 좋은 주제였을까? ‘나’는 수많은 정체성의 집합이다. 그런데 고작 15편의 글을 쓰면서 어떻게 여러 정체성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나의 일상을 조리 있게 이야기하겠는가? 오만한 생각이었다. 어떠한 ‘나’의 모습으로 바라본 일상을 포착할 것인지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마다 ‘이게 맞나?’ 하는 아리송함에 사로잡혔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연재를 목표로 했다면, 주제를 더 신중히 정했어야 했다. 주제는 연재 글쓰기의 뼈와 같다. 몸을 지탱하는 뼈처럼 각각의 글을 단단하게 지탱할 주제는 필수다. 서로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아래 놓여야만 비로소 연재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명확한 주제도 없는 척박한 글쓰기 환경에서 작은 꽃 하나는 피웠다. 나의 글들을 느슨하게나마 연결해준 새로운 주제를 발굴해낸 것이다. ‘자까의 세상’에 담은 글들은 어쩐지 하나같이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을 말하고 있었다. 쓸 때는 몰랐으나 다 쓰고 보니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자까의 세상’을 쓰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글쓰기를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일상 속 통찰’을 주제로 삼고 여기에 나의 정체성 중 하나를 녹여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뭐, ‘일상 속 통찰’이라는 주제도 여전히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다음은 글감 면이다. 주제를 ‘세상을 관찰하며 찾아낸 일상 속 글감’이라고 지어놓은 걸 보면, 과거의 나는 일상에서 글감을 뽑아낼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쓰는 건 내가 아니라 마감 시간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신뢰했던 탓도 있다. 에디터로서 마감 시간에 다다르면 언제나 꽤 만족스러운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마감 시간이 닥쳐오면 없던 글감도 땅에서 솟구치고 하늘에서 떨어질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현대인이 매주 새로운 글감을 하나씩 찾아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까의 세상’을 쓰면서 글감이 없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억지로 찾아낸 글감으로 글을 쓰다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아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연재 작가들이 여분의 원고를 만들어놓듯이 여분의 글감을 마련해놨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그래도 ‘자까의 세상’이 아니었다면 무거운 엉덩이 전법(일단 노트북 앞에 죽치고 앉아 글감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것), 산책 전법(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글감을 발견하는 것), 경험 보따리 전법(지나온 인생에서 그나마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개를 뽑아 쓰는 것)과 같은 글감 찾기 능력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전법은 글감이 없어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에서 써먹으면 반드시 효과를 보았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몇 가지 비기를 얻었으니, 연재 글쓰기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중에 그나마 가장 큰 성공을 얻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끈기 면이다. 연재 글쓰기는 웬만한 끈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과거의 나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다. “말이 쉽지!” 오후까지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원고를 쓰고, 저녁이 되면 ‘자까의 세상’을 썼다. 주말을 반납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연재 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감하는 반년이었다. 이 세상 모든 연재 노동자에게 손이 닳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종일 마감에 시달리고 얻은 쉬는 시간에 마감도 없는 글을 써야 하는 것도 괴로웠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활자에 사로잡혀 살던 어느 날, 내가 아니라 손이 멋대로 글을 쓰는 무서운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정신을 붙잡고 다시 글을 쓰고, 퇴고하고, 교정하고, 발행하기를 반복했다. 여백 없이 활자로 가득한 삶이었다. 매일 글을 써야만 하는 프리랜서 에디터인 나에게 주 1회 글쓰기는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자까의 세상’을 쓰려는 시도조차 힘들었다. 몇 번의 휴재를 하기도 했다. 분명 몇 번은 쉬어갈 만한 이유가 분명했으나, 개중에 몇 번은 변명과 핑계였다.


그런데도 우여곡절 끝에 목표했던 15편의 글을 다 써낸 것은 기특하다. 프롤로그와 지금 쓰고 있는 에필로그까지 더하면 총 17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게 연재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연재를 해냈다는 것에 장하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힘들었다. 재밌었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아쉬웠다. 뿌듯했다. ‘자까의 세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분과 감정이다. 자까로서의 도전이 계속되어야 작가로서의 발도 내디딜 수 있는 법이다. 아쉬움을 발판 삼아 다음엔 조금 더 성장하리라.


‘자까의 세상’을, 아니, ‘자까의 도전’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글을 올리면 제일 먼저 반응을 남겨주시는 소중한 구독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다시 쓰게 하신 분들이다. 언젠가 ‘자까’의 철자가 ‘작가’로 재조합되는 날, 그날에도 나는 이분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 글을 선뜻 먼저 읽어주고, 때로는 찬사를, 때로는 쓴소리를 보내준 친구에게도 감사하다. 힘겹게 적은 글에 아쉬움의 의견을 보내올 때면 나도 모르게 좌절하고 말았지만,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나의 발전을 위해 그다음에도 또 내 글을 읽어주어 고맙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쓸 것이다.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좋다. 평생 자까로 남아도 좋다. 자까로서 써 내려간 글에는 자까로서 살아온 나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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