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뭄바이>, 방자까의 영화 리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가운데 특히 재난,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는 특히 더 감상하기가 꺼려집니다. 이 영화가 논픽션이라고 해도 충격적인데,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류의 영화를 계속해서 봐야만 합니다. 모르고 행복하기 보단, 알고 함께 아파하는 편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길이니까요. 오늘의 영화는 <호텔 뭄바이>입니다.
호텔 뭄바이
Hotel Mumbai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현실을 표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는 궁극적으로 ‘재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합니다. 지금까지 탁월한 재현으로 제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작품으로는 영화 <박화영>이 있었죠. <호텔 뭄바이>처럼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어떻게 재현했느냐'가 특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을 스크린에 옮겨와야 하니까요. 관객도 실제 사건을 어떻게 재현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게 됩니다.
이 작품이 선택한 재현의 방식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과장 없이 묘사하는 것입니다. 실화 속 몇몇 인물을 결합해 허구의 캐릭터를 만드는 등 어느 정도 사건을 재구성하긴 했지만, 극적 전환을 위해 실제 사건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슬로우 모션을 넣는다거나 억지스러운 드라마 요소를 추가하지도 않았죠. 긴박한 테러 현장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담담히 묘사할 뿐이었습니다.
이 점이 <호텔 뭄바이>가 재난 영화의 전형을 따르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본받아야 할 자세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오랜만에 영화가 재현의 예술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8년 벌어진 뭄바이 연쇄 테러 사건은 파키스탄 테러 조직에 의해 자행된 무차별 대량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10명의 테러리스트가 5개조로 나뉘어 뭄바이 곳곳에서 무고한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눴죠. 이 작품에선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지만, 테러의 이유는 힌두교도의 이슬람교도 탄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을 행하는 건 분명 옳지 않은 일입니다. 살인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재현한 무표정한 얼굴의 테러리스트들을 보고 있으면, 이러한 테러가 마치 정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을 들먹이며 오직 적을 제거하라는 목소리만을 따르는 그들의 표정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호텔 뭄바이>는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인 ‘임란’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 한 가지를 던집니다. 경찰의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친 ‘임란’은 동료 없이 혼자 있을 시간이 생기자 곧장 자신의 가족에게 전화를 겁니다. 사람을 쏴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죄의식도 없었던 그는 가족들과 통화하며 놀랍게도 눈물을 글썽이지요. 종교적 이념을 빼면 그 역시도 평범한 20대 청년에 불과했던 겁니다. 10명의 청년들에게 종교를 빌미로 테러를 종용한 주모자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텔 직원 '아르준'은 시크교도로 외출 시 절대 터번을 벗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총에 맞아 큰 상처를 입은 투숙객을 보자 망설임 없이 터번을 풀어 상처를 동여맵니다. 이처럼 신념은 인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발휘되어야 마땅합니다. 10명의 테러리스트 중 9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생포된 1명 역시 대량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는데요. 그들은 죽기 전에 자각했어야만 합니다.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는 신이나 종교 따위는 없다는 것을요.
영화를 보는 내내 투숙객을 위해 헌신하는 호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2014년의 그 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도 사상자의 다수가 투숙객을 구하기 위해 호텔에 남은 직원들이었다고 해요. 사람을 죽이기 위해 호텔에 온 사람들과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호텔에 남은 사람들, 이렇게 적고 보니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100여 년 전통의 아름다운 초호화 호텔 타지는 오늘도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사람들과 직원들로 북적인다. 다양한 사람들이 호텔 안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던 그 때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고 혼비백산한 인파가 호텔로 몰려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청년 몇몇이 호텔로 들어오는데... (출처: 씨네21)
감독: 안소니 마라스
출연: 테브 파텔, 아미 해머, 나자닌 보니아디, 아누팜 커, 제이슨 아이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