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의 HR 정보 공개 의무화 발표에 대한 배경
*본 원고는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2년 5월호에 실릴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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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6일,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모든 상장 회사에 대하여 인적 자본 공개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SEC가 이렇게 발표한 이런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SEC의 역사적 배경부터 거슬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SEC는 1934년 미국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에 대한 질서를 잡는 감독기관으로서 설립되었다. 설립 시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이 시기는 미국이 한창 경제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1929년부터 1930년대 내내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침체 현상을 일컫는다. 이 당시, 금융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실직, 인종차별,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주가가 거듭 대폭락하면서 미국의 경우 당시 시가총액의 80% 이상이 사라지는 걷잡을 수 없었던 경제적 침체기였다. 이러한 대공황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 주식 시장과 거래 과정에서 시장의 힘만으로 자정기능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공황 상황에서 논리적 힘을 잃었다. 대신 주식 시장에 어느정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의 감독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설립된 기관이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SEC이다.
그렇기 때문에 SEC의 주된 목적과 기능은 증권거래 시장이 투명하게 또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수행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하려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SEC를 통해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함이 중요했고, 이에 따라 재무제표(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현금흐름 등) 관련 정보가 SEC를 통해 공시되었다. 다만 이런 공개의무가 처음부터 강제화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SEC는 1977년에 들어서 비로소 재무제표와 더불어 기업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12개 사항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비즈니스를 하는 주요 제품/서비스 품목, 원자재의 출처 등과 더불어 HR과 관련된 사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HR 관련 정보의 경우 자세한 내용은 아니고 ‘직원 수(the number of employee)’만 공시하면 되었다.
이후, 40여 년이 지나, 2015년에 SEC는 기업들의 공시를 의무화했던 과거 12개 사항들이 지금의 세태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대한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21세기 들어 인적자본/HR의 중요성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은 기업 가치를 환산하는 과정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1970년대의 *S&P 500대 기업의 가치를 기업들의 재무제표상의 가치와 비교해보면, 약 83% 정도의 물리적 자산에 대한 가치 수준이 일치했다. 그런데 2015년의 S&P 500에 속한 기업의 가치와 해당 기업들의 재무제표 상 물리적 가치를 비교하면 약 16% 정도만 일치할 뿐이었다.
그럼 재무제표로 설명되지 않는 나머지 84%의 가치는 무엇일까? SEC는 이것의 상당 부분이 인적 자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S&P 500 지수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스탠다드&푸어스(Standard and Poors, 약칭 S&P)이 작성한 주가 지수이다. S&P는 무디스(Moody’s), 피치(Fitch)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으로 불리고 있다.
이에 따라 SEC에서는 2015년부터 어떻게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에 대한 공시를 현실화 할 수 있을지 조사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에 발표한 것이 그 결과물이다. 바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거래하는 기업들은 투자자의 알권리를 위해 비재무적 가치, 즉 인적자본에 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내용에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유지하고, 개발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과 정보가 담겨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기업의 인적 자본 정보를 공공에 공개해야 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SEC의 발표자료 문건을 살펴보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업의 인적자본 공개 의무가 기업의 인적 전략 및 정보에 대한 침해 우려가 있으며, 특히 표준화된 측정 기준을 제시할 경우 기업들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투자자의 권익 보호와 기업간 인적 정보의 비교가능성 확보를 위해 SEC에서 일방적으로 재무제표 같이 표준화된 형식으로 인적 자본을 측정하고 공개요구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일 수 있다는 의견도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위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SEC는 인적 자본 정보의 공공에 대한 공개가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보았다. 지난 날과 달리 현대의 비즈니스와 기업의 역량 및 자산은 재무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비재무적 요인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직원과 관련된 사항들, 즉 인적 자본에 대한 정보는 이러한 비재무적 요인의 가장 대표적인 자산이다. 다만, SEC의 발표에서는 개별 기업의 인적 자본에 대한 정책과 방침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위한 표준화된 방법이나 지표, 예시, 프레임워크를 구체적으로 함께 언급하지는 않았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각 기업의 인적 자본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측정 및 목표에 대한 정보, 즉 관리에 대한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각 기업이 직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느냐에 대한 정보 자체 만으로도 투자자 입장에서 해당 기업의 자산(Asset)을 이해하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SEC의 발표와 규정에 대하여 제대로 준수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까? SEC는 해당 기업에 대하여 행정적 조치를 가할 수 있다. 어떤 페널티가 부과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인적자본 정보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를 요구하는 행정적인 경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SEC가 해당 기업에 대하여 추가적인 행정 페널티를 가할 지 모른다. 다만, 이러한 페널티를 SEC가 직접적으로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기업들에 대하여 인적 자본 정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여러 찬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이 한 쪽으로 몰리지 않은 상황에서 SEC가 기업에 일방적으로 행정 페널티를 부과한다면, 이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시장 개입 및 공권력 남용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SEC가 말하고 있는, 또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공의 페널티는 명료하다. 바로 투자자들의 외면이다. 인적 자본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불성실하게 대처하는 기업들에 대하여 투자자들은 투자를 소극적으로 하거나 기존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또한, 내부 이해관계자, 즉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경우 해당 기업은 SEC의 별다른 조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평판과 같은 암묵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을 살펴봤던 것처럼, 해당 회사의 인적 자산 구성과 목표, 전략, 방향 등을 고려하여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이렇게 인적 정보를 공시해야 하는 것이 의무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이 이에 불성실하게 대응한다면, 그 결과는 SEC의 행정적 페널티 부과 여지보다 더 큰 리스크인,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등 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SEC가 인적자본 공개 의무화 조치를 발표한 이후, 기업들은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2020년11월~2021년3월까지를 기준으로, Fortune 500 기업 중 나스닥에 상장된 상위 100개 기업에 대한 조사했을 때,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관련된 별도의 보고서를 발간했거나, 기업 보고서 중 일부 챕터를 인적 자본 내용으로 별도로 구성한 기업은 97%에 이르렀다. 해당 분석을 수행한 The CPA Journal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회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큰 틀 속에서, 회사의 문화, 직원 현황, 복지, 향후 인적 자본 관리와 인재 유지를 위한 회사의 방향성, HR 정책 및 전략 등을 녹여냈다. 특히 Covid-19 팬데믹 상황에 있어서 기업이 직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어떤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공개한 기업의 수도 상당했다. 아래 [표1]은 이러한 공개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담겼고, 해당 주제 내용을 공개한 기업의 비율과, 공개한 사항에 대한 HR 지표 역시 예시로 담겨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관심사가 높은 ‘다양성 및 포용성’에 관한 내용, 그리고 각 기업이 직원에 대한 보상 및 교육/개발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공개한 기업들이 약 80~90% 가량으로 많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할 수 있는 측면의 주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채용과 관련된 사항은 각 기업의 입장에서 인재 확보를 위한 배타적 전략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보니, 이 주제 내용을 공개한 기업의 수는 28% 수준으로 많지 않았다. 직원이나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크리티컬하게 볼 수 있는 ‘작업장 안전’ 관련 사항 역시 마찬가지로, 해당 내용의 현황을 공개한 기업이 1/3밖에 되지 않았다.
[표1] SEC 인적자본 공개 의무화에 따른 기업들의 변화 (*Source: The CPA Journal, 2021)
지금까지 자세히 살펴본 미국 SEC에서의 흐름은 과거 유럽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브렉시트 이전, 영국이 유럽연합(EU)에 속해 있을 당시, SEC에서 발표한 2020년 보다 6년 전인 2014년, 유럽연합(EU)은 비재무보고에 대한 지침(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 NFRD)을 발효하였다. 이 지침에는 기업이 환경 및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예를 들면 직원에 대한 인권 존중, 부패 및 뇌물 수수 방지, 기업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추구 등이 있다. NFRD가 적용되는 대상으로는, 유럽연합 내에 50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대규모 공익단체, 특히 매출이 €40,000,000 (약 530억원) 이상 되는 기업이 이에 속한다.
2014년, 유럽연합에서 발효한 기업의 비재무적 내용에 대한 공개는 미국 SEC의 비재무적, 즉 인적 자본의 공개 여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최근 지속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ESC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내용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유럽 각국에 대하여 비재무적 사항의 외부 공개 여부를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과정 역시 촉진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2018년부터 상시직원 수 250명이 넘는 기업에 대하여 ‘Gender Pay Gap(성별에 따른 임금격차)’에 대한 수치를 매년 의무적으로 공공에 공개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는 비재무적 요소이지만 기업이 사회적 공정/평등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법률적 제도로 강제화 한 것이다.
* 주요 참고문헌
- SEC Final Rule: Modernization of Regulation S-K Items 101, 103, and 105 (2020)
pp.43-
https://www.sec.gov/rules/final/2020/33-10825.pdf
- The CPA Journal (2021). First Look at the Human Capital Disclosures on Form 10-K. https://www.cpajournal.com/2021/10/27/first-look-at-the-human-capital-disclosures-on-form-10-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