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진 Sep 10. 2022

퇴사까지는 아니지만, 더 열심히 일 할 필요도 없다.

Quiet Quitting

*해당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2년 9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 재배포가 불가하니 참고바랍니다.


최근 틱톡(TikTok)에서 한 영상이 이슈다. 

"Quiet Quitting" 이라는 용어를 언급하며, 지칠린(Zkchillin)이 올린 7초짜리 비디오 영상은 33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50만에 가까운 ‘좋아요(like)’를 기록할 정도로 그 반응이 뜨겁다. Quiet Quitting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 영상이 사람들에게서 회자되는걸까? 

새롭게 떠오르는 개념이다 보니 국문으로 명확하게 번역 및 정의하기가 어렵다. 다만, 이 개념을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직장에서의 과도한 성취를 위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며, 이러한 노동은 우리 각자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즉, 일(work)의 의미를 삶의 이유, 목적, 가치, 존재와 결부시켜서 ‘덕업일치(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음)’, 또는 업무몰입(engagement) 등으로 해석하는 관점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개념이다. 


Quiet Quitting을 좇는 이들은, 기존에 근면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자세/태도에 의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승진, 더 높은 급여, 개인적 성취 등을 목표로 삼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주느냐고 반문하는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시니컬한 영상이 현대 대중으로부터 많은 공감과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많은 직원들이 지금과 같이 일하는 방식에 지쳤기 때문이다. 급여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직장에서의 극심한 경쟁과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풀리지 않는 피로,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 외부적 요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점차 상실케 하고 있다. 더 열심히 일해도 기회와 부를 얻기 어렵고 약속된 보상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점차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하여 반감 섞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사회 구조에 따른 외부적 요인의 예로써 코로나 시기 이후 발생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이를 더욱 촉진하는 상황이다.     


*source: TikToker@zkchillin  


특히, 직장에서의 번아웃(burnout)을 피하기 위하여 Quiet Quitting를 지향하는 Z세대가 늘고 있다. 이들은 퇴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는 않지만 반대로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려는 자세 역시 회피한다. Quiet Quitting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업무의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만, 주도적으로 추가적인 열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영상에서 언급된 몇 가지 문장은 Quiet Quitting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Work is not your life.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닙니다.)”, “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 (당신의 가치는 생산성/결과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영상의 수많은 댓글을 보면, Quiet Quitting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직장에서 적극적 동기 없이 수동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태도는 오히려 직원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의 업무 경계와 가치(value)를 회사측에 적극적으로 어필하거나, 그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코로나 이후 번아웃(burnout), 그리고 Quiet Quitting 


산업을 불문하고 생산성을 높여서 비즈니스 가치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적 관점의 노력은 직원을 자원(resource)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직원의 업무 몰입도(engagement)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업무 몰입도의 상승은 곧 수익 및 가치 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역시 지난 수십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장기간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여러 사회적 변화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점차 업무 몰입도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2022년 갤럽의 글로벌 리포트에서도, 그리고 미국 Apollo Technical의 연구 조사를 보아도, 자신의 업무에 높은 몰입도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답하는 직장인의 비율은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현재 20% 내외에 머물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는 동일한 연구 조사 결과가 더 낮게 보고되고 있는데, 직장인 스스로 직장에서 업무 몰입도가 높다고 답변하고 있는 비율이 영국의 경우 9%, 독일의 경우 16% 내외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수치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직과 퇴사 그리고 대퇴사시대(the Great Resignation)의 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2021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근로자의 대량 이탈 추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적 이유 등으로 사직/퇴사(resignation)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Quiet Quitting이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은 Quiet Quitting에 밀접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원격/재택 근무를 통해 사무실에서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에 동일한 업무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이 기간이 장기화 되면서,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 대신 다른 것에 생각을 쏟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로 피해를 입거나 세상을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게 되고, 자신이 삶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게끔 만들었다. 직접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직원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방식으로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직장을 떠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Quiet Quitting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럼에도 분명히 말하지만 Quiet Quitting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Quiet Quitting은 주어진 업무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그만두는 개념이다. 

일(work)이 곧 삶(life)이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좇지 않는 것이다. 

애써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려 한다는 개념이다. 

직장에서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바쁘게 살아내는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살기 위해 일하는 자세를 지향하고, 일하기 위해 사는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주어진 책임 경계를 너머서서 더 열정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현실 업무 상황에서 빗대어 표현하면, 승진/성과창출의 기회로써 새롭게 주어지는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거부한다거나, 업무 이외의 시간에 전달되어 오는 이메일, 연락, 문자를 거부하는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존의 업무 몰입(engagement)의 관점과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소극적인 거부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Quiet Quitting과 같은 자세/태도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어진 업무를 책임감있게 하면서 정시에 퇴근하는 한편, 업무 이외의 시간에 이메일 등을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삶의 밸런스를 추구하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합의되지 않은 논란 중 하나는 Quiet Quitting이 실제로 직원 입장에서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몰입(engagement)을 낮추되 최소한 해고되지 않을 수준만큼만 유지함으로써 직원 개인의 번아웃과 피로도를 최소화 하려는 데 있다는 점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사실 이런 태도가 직원 및 조직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직은 당연히 소속 직원의 몰입이 낮기 때문에 생산성 및 직원의 역할 가치(value)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생겨난 마음과 시간적 여유를 스스로에게 더 의미있게 쓰지 않는다면 Quiet Quitting과 같은 태도가 궁극적으로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경기 침체의 시기에 Quiet Quitting은 위험한 시그널(risky signal)이다. 


과거 몇 년간 높은 생산성과 수익 창출은 직장에서의 성취 기준이 되었으며, 개인에게는 경력 성공의 판단 잣대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정신적/체력적 피로와 번아웃은 마땅히 견뎌내고 이겨내야 하는 반대 급부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가치 추구, 장시간 노동, 그리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시간당 업무의 밀도가 증가하는 현상으로 발생하는 피로도는 Quiet Quitting과 같은 운동(movement)를 조용히 촉발시키고 있다. 

그런데 Quiet Quitting이 위험한 시그널로 여겨지는 건, 현재 당면한 경제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악재가 겹치면서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 촉발되고 있는 Quiet Quitting과 같은 신호(signal)는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진에게 뿐만 아니라 직원 관리의 일선에 있는 HR에게도 경고음(warning)이다. 시나브로 업무 몰입(engagement)이 낮아지고 자연스레 퇴사율이 증가하면서 직원들의 열의와 동기가 낮아지는 변화 양상은 결국 비즈니스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시기와 경기 침체기를 겪으며 지칠대로 지친 근로자들을 가만히 목도하면서 이들의 직업 안정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방안 중 하나는 대화/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 앞서 틱톡에 글을 올렸던 지칠린(Zkchillin), 그리고 해당 영상에 동의하고 공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왜 그러한 지치는 감정(tiredness)과 피로도(fatigue)를 느끼는 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직원 개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Quiet Quitting과 같은 가치관에 동의/공감하고 있다면, 스스로 “왜 현재 하고 있는 업무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지, 왜 내가 이 선택을 했는지, 또는 매니저 등과 소통하면서 개선하거나 변화해 나갈 수 있는 점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Quiet Quitting – 당신이 지지하든 아니든. 


일(work)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work)은 사람들이 할 게 없어서 시간을 유의미하게 쓰고 싶어서, 혹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한 필요를 이유로 생겨난 개념이다. 

그런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거나 흥미가 높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로부터 해고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최소한의 업무 책임만 다하려는 태도를 보이려 한다. 


이러한 트렌드를 의미하는 Quiet Quitting을 당신이 지지하든 아니든, 분명한 한 가지는 이 변화가 젊은 세대를 필두로 적극적 공감/동의를 얻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고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의 직업에 적극적인 관심이 없으며 조직에서의 성장과 성공에 대한 갈망 역시 낮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지금까지 직장에서 우리가 일해왔던 방식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 변화는 기능적인 시스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원의 세대별 특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의 가치를 하나의 방식으로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이 대화하고 직원들의 일과 삶, 그리고 그들이 본연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과거 혹은 지금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회사와 조직의 유익을 위해 개인 직원의 헌신을 강요하는 방식의 일하는 문화는 한 단계 변화하고 있다. 적어도 일단 초과 근무를 했다면 그에 따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초과근무 수당 지급 여부와 상관 없이 근로자가 자신의 시간 영역에 대한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 수동적인 자세로 최소한의 책임만 다하는 관점으로 업무에 임하려 하는 Quiet Quitting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Quiet Quitting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더욱 필요하지만, 적어도 회사 경영진과 HR 입장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 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살필 필요가 있다. 일을 하는 것의 참 의미와 직장 생활에서의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돕되, 이를 조직/기업이 일방적으로 리드해서 끌고 갈 성격의 것은 아니다 보니, Quiet Quitting이 단순한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