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조직의 리더십에 관하여
마침, 영국 런던에 있기에, 이 historical 상황을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어느 먼 나라의 국왕이 떠났나보다 싶겠지만, 여기서는 여왕의 장례일을 특별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국가, 특히 런던이 하루 동안 정지된 느낌이다. 국가라는 조직의 리더. 총리와는 달리 실권은 없지만 상징성과 국민의 존경 및 사랑을 받아온 리더의 삶을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반추해본다.
“Throughout all my life and with all my heart I shall strive to be worthy of your trust.” - Queen Elizabeth II, 1953
나는 평생토록 진심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가치가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53년 6월 2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 연설 中
2022년 9월 8일, 영국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5세였던 1952년에 즉위하여 영국 및 영연방 국가의 국왕으로 총 70년이 넘게 재위하였으며,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는 여왕(Queen) 직위로 가장 오랜 기간 자리를 유지하였다.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왕위에 있다보니, 엘리자베스 2세의 인생 경험은 곧 세계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부터 현 영국 총리인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의 총리를 거쳤다. 국왕을 별도로 두고 있는 현대 국가의 대부분이 헌법에서 정하는 권한 내에서 군주권을 인정하고 있다보니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 하에서 국왕(king/queen)의 권한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왕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영향력, 그리고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한 국가의 국왕이 서거했다는 것에 전 세계 미디어와 사람들이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그 나라가 세계 선진국 중 하나인 영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9/20세기에 걸쳐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수 많은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던 영국의 입장에서, 21세기에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탈식민화를 겪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의 영향력을 통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여왕의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기존과 달리 무력으로 인한 식민지화 통합이 아니라, 영연방이라는 연합체로서 역사적 불화를 종식시키고 각 국가간 협력 관계를 증진시켰다는 점이 매우 높게 평가된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되었을 당시 이집트, 가나, 수단과 같은 나라는 어린 여성 국왕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이를 독립의 기회로 여기며 영연방 소속에서 탈퇴하였다. 하지만 여왕은 즉위 직후 영연방 소속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방문하고, 외교적 노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주요 식민지로서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인도의 경우엔, 50년 만에 영국 군주 자격으로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가 외교적으로 통합적인 리더십 행보를 보인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1977년, silver jubilee(여왕 즉위 25년을 기념) 때에 영연방 36개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남태평양, 호주, 캐나다, 카리브해 등 해외 순방을 이어갔다. 90세 즈음 여왕의 해외 외교 기록을 살펴보면 기록상으로 총 117개국을 방문했으며 100만 마일 이상을 여행했고, 총 13명의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났을 정도로 활발한 외부 외교 활동을 하였다. 결과론적으로, 영국 입장에서는 탈식민지화와 전쟁 등을 거치며 실추된 외교적 권위를 여왕의 노력을 통해 영연방 통합이라는 리더십 성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1999년 대한민국에 방문했을 당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던 에피소드는 여왕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안동에 있는 한옥에 들어설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갔던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여왕이 독선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상대방의 문화와 삶을 존중하는 품성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신발을 벗는 행위가 일반적이지 않은 영국식 문화를 여왕이라는 지위에서 누리려 하는 게 아니라, 방문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에 맞춰 따르려는 모습을 보인 것 자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통합의 리더십이 행동으로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영연방 체제에서 엘리자베스 2세가 갖는 위상과 역할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독립국가 입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영연방(commonwealth)은 영국을 중심으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로 구성된 연합체이다. 영연방 연합체 중에는 일부 식민지가 아닌 국가들도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국가 중 일부는 영국의 국왕을 자국 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이에 속한다.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즉위했던 1952년은, 영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이 대다수의 여성이 가정에서 살림을 돌보는 역할을 하던 때였다. 당시 제 2차세계대전 종전 후, 경제 회복을 위해 영국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한 때, 전쟁 상황에서 다양한 외부 일을 하던 여성들은,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온 남성들이 다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을 행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정의 역할 모습으로 회귀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여성 국왕이 갖는 상징성은 지금보다 더욱 컸다.
물론 일반 직장인이 아닌, 여왕이라는 강력하고 권위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과거 통치기간 동안 엘리자베스 2세의 권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받았다. 예를 들어, 군주의 가족에 대한 삶은 일반 대중으로부터 언제나 회자되는 관심사인데, 특히 아들 찰스3세의 이혼과 불륜, 그리고 재혼의 과정은 왕세자에 대한 부도덕성으로 이어지면서 여왕에게 까지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영국 국왕의 가족사는 언제나 영국 내에 핫 이슈이면서 동시에 영연방 리더격 국가로서의 상징성과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있었던 사례로, 찰스3세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가 유색인종인 메간과 결혼하고 나서, 왕실 내 ‘인종차별’이 심각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폭로하며 왕실을 떠나버린 사건 역시 대중의 관심 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많은 실망감과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개인적 관점에서 여성 리더로서의 엘리자베스 2세가 보여주었던 자세와 태도는 제 2차세계대전 당시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 하에 여군부대에 입대하여 보급차량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사실 국왕이 혹은 국왕 후계자가 일반 사람들과 함께 같이 먹고 생활하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비록 곧 종전이 되면서 엘리자베스 2세의 군생활이 길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군에 입대하고 참전하여 같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 만으로도 영국민과 영연방 국가들 등에 전달되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즉위했던 엘리자베스 2세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워킹맘이자 여성 리더로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케냐 방문 일정 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졸지에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때, 침착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고 한다. 또한 자신보다 5살이 많은 필립공과 결혼하면서 총 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아이들을 양육하면서도 외부 외교 행보를 놓치지 않았으니, 정말 워킹맘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Serve to lead”라고 표현하는 봉사적 성격의 리더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 기간동안 국왕으로서 보여준 모습을 함축한다. 국문으로 직역하면 이끌기 위해 봉사한다는 느낌으로 이해되는 이 표현은, 궁극적으로 리더로서 특권을 누리려고 하는 자세보다 리더로서 오히려 베푼다는 의미를 갖는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 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국민들처럼 직접 참전하여 자신의 삶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 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또한, 고령의 나이에도 지속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고 국가를 위해 외교적으로 헌신했던 행동은, 60/70세 즈음에 은퇴하여 남은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일반적인 관점과는 상이하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를 직접 만났던 사람들 말에 의하면 여왕이 사람들과 소통할 때, 상대방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상대방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고, 또 인내심과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려고 애쓰는 성향이라고 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자세 또한, 여왕이 리더로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왕으로 모든 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겸손한 태도와 성품은 어쩌면 영국의 구조적 이슈 때문이라는 일각의 의견도 있긴 하다. 대통령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국왕 외에 총리가 별도로 존재한다. 의회를 대표하는 총리는 국가의 산적한 업무와 책임을 맡고, 그 결과에 따라 국민의 지지에 의한 평가/판단을 받게 된다. 반면, 여왕은 실제적인 권력은 없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성과 동시에 영국이 누리는 영광을 함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렇다보니, 굳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며 국정에 관여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다만, 차기 국왕으로 즉위한 찰스 3세의 경우, 기후 변화 대응과 같은 이슈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겸손하고 조심스런 태도는 꼭 국가 제도와 구조상의 이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코로나 상황 속에서 엘리자베스 2세가 보여준 행보도 같은 맥락 상에 있다. 지금은 퇴임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코로나 확산이 한창인 당시 국민들에게 집에서 격리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장려하는 연설 발표를 하면서 정작 자신은 내각 직원들과 술자리 파티를 벌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년에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세상을 등졌을 때, 정부의 봉쇄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비공개로 장례식을 진행한 것 역시, 여왕의 겸손한 리더십이 드러난 사례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최근 브렉시트에 의한 노동력 부족에 이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 이슈, 그리고 전례 없는 물가상승 문제까지, 전반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거의 영광은 더 이상 영국을 지켜주지 않는다. 현재 당면한 일들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영국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리드하고 있는 ‘국왕’의 전면 교체는 완전히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여왕에 즉위하여 70년 넘게 재임했던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달리, 현재 왕위에 등극한 찰스 3세는 왕세자의 위치에서 64년을 보냈다. 완전히 다른 입장의 왕이 등장한 것이다. 찰스 3세가 고령인 점,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시점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영국 식민지 당시 수탈당한 것에 대한 보상 문제 대두, 영연방 군주제의 회의론, 그리고 영국연합(United Kingdom)의 분할 움직임 이슈까지, 대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도전이 닥쳐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찰스 3세의 리더십 스타일을 시나브로 만들어 갈까? 아니면 찰스 3세가 자신만의 고유한 리더십으로 당면한 일들을 대처해 나갈까? 어떤 쪽이 되든지 조직의 리더십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향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관점이 될 것이다.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2년 10월호에 기고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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