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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진 Mar 15. 2024

나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영국의 노동 시장 유연성과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

최근 몇 년간 AI를 중심으로 불어온 기술의 발달은 이미 기업들로부터 대체 가능한 인력들의 해고를 불러오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기술의 활용도가 높은 IT 기업들은 조직 개편을 위해 이미 수만명의 기존 직원들을 해고(layoff) 하였고 또 추가적인 해고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사람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기술에 의해 해고되지 않거나, 혹은 어떻게 하면 기술을 활용해 고용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을지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 단위의 대처와는 별개로 현재 여러 노동시장의 거시적인 흐름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고라고 다 같은 해고가 아니다.


노동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해고와 관련된 규정 및 용어에 대해 잠시 정리하고자 한다.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한국에서 해고라는 용어가 직원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영어 표현으로는 Dismissal, Fire, Layoff 등 다양하게 있다. 각각의 차이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다.

기본적으로 고용주는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 해당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단시간 근무로의 변경을 제안할 수 있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비즈니스 사정으로 인해 직원에게 업무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직장에 출근하지 말아달라고 하거나 직원에게 무급휴가를 제공하는 것을 레이오프(lay-off)라 할 수 있다. 고용이 완전히 종결되는(terminated) 해고는 아니지만 비즈니스 사정에 따라 주당 근무시간이나 급여를 줄이는 것을 단시간 근무(short-time working)라고 한다. 만약 기업 입장에서 직원에 대하여 제공할 업무가 충분하지 않아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리해고, 즉 영어로 redundancy라 표현한다. 쉬운 예로 Covid-19 때 항공 산업이나 여행업에서 일거리가 없어 직원들에 대한 고용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환경이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경우, 정리해고(redundancy)를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필수 고급 인력, 예를들어 장기간의 충분한 훈련이 필요한 시니어급 파일럿이라든지 인력 대체나 해고가 쉽지 않은 직무의 경우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lay-off나 short-time working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기업측 비즈니스 환경 사정이 아니라 직원 개인의 책임으로 인하여 해고하는 경우에는, 한국어로는 여전히 해고라는 표현을 쓰지만 영어로는 Fire라는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직원이 계약 사항을 위반하여 출퇴근을 불성실하게 하거나, 잘못된 행동 및 의사결정으로 비즈니스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거나 하는 등, 이 경우에는 직원의 귀책사유가 핵심이다. 고용주(기업)는 이와 같은 경우 해당 직원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불만스러운 직무 수행을 이유로 직원을 해고(Fire)할 수 있다. 앞선 해고(Layoff)와 지금의 해고(Fire)는 그 배경과 원인이 다른 만큼, 직원이 회사를 떠날 때 발생하는 퇴직금 이슈와 고용보험 및 실업급여와 같은 후차적 보상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Dismissal은 Fire와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마찬가지로 직원의 귀책사유로 인한 해고를 의미한다. Fire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우리가 통상적인 대화할 때 쓰는 해고라는 뜻이라면, Dismissal은 보다 격식있는 표현으로 계약서나 공식 문건에서 활용한다.




노동 시장 유연성(Labour Market Flexibility)이란?


노동 시장 유연성은 한마디로, 기업이 시장 상황에 따라 노동력을 변경하는 정도가 얼마나 유연한가, 또 직원 입장에서 취업에 대한 허들 그리고 노동 안정성이 어떤 방식으로 보장되는가를 의미한다. 여기서 노동 안정성은 유연성과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다. 노동 안정성은 경직되었다는 의미와는 다르며, 면밀히 이야기하면 재직 기간이 보장되고 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한국의 공무원처럼 어느 한 직장에 속하여 꾸준히 일하면서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진 경우 노동 안정성이 보장된 것 처럼 보이지만, 반대 상황의 경우도 노동 안정성이 보장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언제든지 고용주(기업)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lay-off) 경우에도, 재취업이나 이직의 허들이 낮은 경우에는 얼마든지 구직자(Job seeker)가 원하면 쉽게 대체가능한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도 사회 거시적 측면에서 노동 안정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업은 직원을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방식으로, 또는 보상과 혜택을 조정하거나 근무시간과 근무 계약을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에 대한 관리 유연성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기업에만 온전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의 최소 권리 보호를 위해 각 국에서는 법적으로 법률과 정책을 통해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통제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 시장 유연성은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 변화에 대응하여 노동력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생산을 촉진할 수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기업의 자율권을 넓힘으로써 인력관리의 주도권을 기업에 주는 듯 보이지만, 고용주는 법률과 규정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 사이 적당한 밸런스 지점을 찾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 


노동 시장 유연성은 다양한 지표로 이를 측정하고 추적하고 있다. 특히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는 [그림1]에서 표현되어 있는 지표와 같이 노동 시장의 양적측면(Quantity), 질적측면(Quality), 그리고 노동 포용성 (Inclusiveness)와 같은 카테고리와 이와 연관된 지표들을 추적하여 각 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림1] OECD에 속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영국의 노동시장 수준을 보여주는 각종 결과 지표 (OECD Jobs Strategy, 2018)




영국의 유일한 OECD 평균 이하 수준지표 - 성별 임금 격차 (Gender Pay Gap)


[그림1]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영국의 노동 시장 유연성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영국의 노동 시장 유연성 관련 대부분의 지표들은 영국이 OECD 평균 수준을 상당 폭 상회하고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는 영역이 성별 임금 격차로, 해당 자료에서는 Gender labour income gap (2015) 지표로 표시되어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이 지표 자료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국가가 Korea 한국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 지표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사회적 움직임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한국의 사회 문화적 정서를 고려할 때, 다양성(Diversity)이 당장 큰 사회적 이슈가 아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자연스레 수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별 임금 격차에 있어, 한국의 낮은 수준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과 이유를 찾는 것은 일단 뒤로하고, 영국이 지난 수년간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다. 2018년, 영국 정부는 상시직원 수 250명이 넘는 기업에 대하여 ‘Gender Pay Gap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에 대한 수치를 매년 의무적으로 공공에 공개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기업은 매년 일정 기간에 해당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등록 및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 결과, [그림2]와 같이 누구나 정부기관에서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기업명을 검색함으로써 성별 임금 격차와 관련된 리포트와 얼마나 수입(income) 수준에 차이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림2] 영국 정부 웹사이트에서는 누구나 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 수준을 검색해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제공한다




성별 임금 격차(Gender Pay Gap) 개선은, 곧 노동 시장 유연성의 증가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사람들의 인식 변화, 그리고 정부 기관의 노력 때문인지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영국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림3]를 보면 1997년에는 풀타임 직원 기준으로 약 28%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있었다면, 이 수치가 지난 2023년에는 약 14% 수준까지 격차가 줄어들었다. 해당 지표 변화는 단순히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사회가 점차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공평하게 변화되어 가는 듯 보이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 유연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앞서 [그림1]의 OECD 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지표에서 영국의 수준이 한참 뒤떨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근래 조사 자료를 확인한다면 상당부분 개선되었으리라 예상한다. 


[그림3] 지난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 수준의 변화양상 (영국통계청, 2023)


사실 진정으로 유연한 노동 시장은 노동력의 규제가 거의 없을 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즉, 고용주가 마음대로 임금 수준을 정하고, 직원을 언제든 해고할 수 있으며, 직원의 근무시간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예를 들어, 경제가 호황기일 때는 고용주가 임금을 인상하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으며, 반대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고용주는 임금을 삭감하거나 근무시간을 늘려서 생산성을 올리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근로자의 권리와 권한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노동조합(Union)이 개입하여 더 나은 근무조건을 협의하고 노동 시장 유연성을 제한할 수 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은 비즈니스의 인력 생산성과 외부 변화에 대한 탄력을 높이지만, 외부의 제도적 개입과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대량 해고 이슈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노동 시장 유연성’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더불어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적응력, 특히 회복탄력성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기술의 발전과 노동 시장의 변화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 보고서들은 어떤 직업들이 대체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지를 강조한다. 이런 보고서를 접하는 개인은 자신의 직업과 직무에 연구 결과를 대입하며 대체 가능성이 높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가능성이 낮으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한 차례 더 깊이 파고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Generative AI의 등장으로 많은 화이트칼라 직업들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정말로 이러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직업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을까? 우리는 이런 직업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적응력과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의사나 변호사가 로봇이나 AI로 인해 진단 및 판결의 영역에 많은 침해가 발생할 거라 예상하지만, 새로운 스킬 습득력과 학습 역량이 높은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여 기존에 없던, 하지만 새롭게 필요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길로 바꿔 나갈 것이다. 본래 개인의 변화 의지는 개별적인 관심에 의존한다. 그런데, 외부 사회의 변화에 의해 강제적으로 불가피하게 바뀌어야 한다면, 개인의 적응력과 회복탄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양날의 검(Double-Edged Sword)이었다


개인 단위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기술 발전에 의한 사회변화를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기술 발전은 항상 산업, 경제, 사회를 형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영국의 산업혁명을 들 수 있다. 당시 등장한 증기 기관에서 지금의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기술의 혁신은 우리 삶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생성형AI(Generative AI)와 같은 기술의 등장은 이런 변화를 전례없이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효율성과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는 듯 보이지만, 전통적인 직업에 대하여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킨다. 앞서 언급했듯,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여 많은 수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수년 전부터 다양한 연구 리포트에서 언급되어 왔다. 예를 들면, 전 세계 트럭 운전자는 무인 자율주행차에 의해 역할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 마찬가지로 회계사와 법률가의 역할에 대하여는, AI 시스템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회계 데이터 분석과 법률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학계의 경우, 특히 필자가 있는 영국의 대학들을 살펴보면 국제학생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원어민이 아닌 이들이 영문으로 글을 작성한 것에 대한 교정(proofreading) 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성형AI를 통해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작문을 교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자 그 거대한 영작문 교정 산업이 한 순간에 사그러들었다. 전문적인 영문 교정을 통해 연 평균 약 £30,452 (한화로 약 4,70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일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관점은 일부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작업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은 기계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더욱 창의적이고 전략적이며 대인 관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이 여러 많은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듯이 AI와 자동화도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AI 시스템에 작업 수행 방법을 가르치는 AI 트레이너나 AI 시스템이 윤리적 범위 내에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AI 윤리학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영문 교정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영문 문법을 교정하던 사람들은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지만, 대학원 수준의 전문 분야에서 영작문 교정을 하던 사람들은 AI를 활용해 오히려 그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왜냐하면 전문 분야의 경우 해당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와 맥락 등을 꿰차고 있어야 제대로 글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술 발전은 실제로 양날의 검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핵심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고, 준비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있다. 개인 단위에서 이것은 “회복탄력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회복탄력성은 본질적으로 어려움으로부터 신속하게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려움에는 경제적, 심리적, 그리고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과 이로부터 야기되는 스트레스를 모두 포함한다. 심리학에서 주로 언급되는 이 개념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사용하여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관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개인은 실패에 연연하거나 주저하기 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배운 것들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회복탄력성이 애초에 특정한 개인이 배타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생각이 변화하고, 이를 통해 행동이 바뀌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관점에서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역경에 직면하고, 변화에 적응하고,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으로 더 나은 행동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회복탄력성이 직장에서 직원들의 태도나 성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회복탄력성과 직원들의 성과가 실제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혹은 회복탄력성에 따른 직무 만족도와 직원들의 업무몰입도를 예측하는 연구도 있고, 이러한 회복탄력성에 따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여부 및 이직의도 연관성을 분석하는 연구도 있다. (*해당 연구들에 대한 자세한 관심이 있다면 참고문헌 리스트를 참고하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직원은 업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직업 만족도가 높은 경향을 보이며, 성과 역시 높은 수준을 보인다.




적응과 혁신을 통한 변화 사례: 그래픽 디자이너 Alex


생성형AI의 등장에 따라 글, 그림, 노래 등의 창작을 업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직격타를 맞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Hollie Mengert의 실제 작품과, 이를 학습한 DreamBooth의 생성 결과물을 오른쪽에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다. DreamBooth는 구글에서 2022년에 출시한 텍스트/이미지 생성형 AI이다. 실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익숙한 우리에게는 좌측의 이미지가 친숙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생성형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 결과물이 향후 출판/미디어/영화/광고 등의 업계에서 활용될 때, 기존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은 상당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받고 있다.


[그림4]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Hollie Mengert의 실제 작품(왼쪽)과 그녀의 스타일로 Stable Diffusion DreamBooth를 사용하여 생성한 이미지(오른쪽)


이런 관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Alex의 이야기는 회복탄력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역할을 정의하고 적응/변화한 사례이다. Alex는 10년 넘게 브랜딩 및 인쇄 업체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왔다. 디자인에 대한 예리한 안목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Alex는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는데, 생성형AI가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예술 창작, 콘텐츠 작성, 심지어 로고 디자인까지도 Alex보다 생성형AI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Alex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디자인 업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였다. 실제로 일을 하다보니 AI가 디자인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고객의 미묘한 요구와 선호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Alex는 AI를 경쟁자가 아닌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였고, 해당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업무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Alex의 이러한 노력은 AI의 효율성과 인간 디자이너의 창의적 직관을 결합한 서비스로 이어졌다. Alex는 AI를 활용하여 고객이 설정한 특정 매개변수를 기반으로 초기 디자인 컨셉을 생성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Alex가 직접 작업하는 것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 다음 Alex는 자신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AI가 복제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Alex는 이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더 넓은 범위의 디자인을 제공할 수 있었고,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추는 동시에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 Alex는 AI의 효율성과 개인화된 디자인에 대한 고객의 요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직업 역량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개인 비즈니스도 확장하였다.


이러한 Alex의 이야기는 기술적 혼란에 직면한 이들이 가진 회복탄력성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 사례가 된다. 즉, 적응성, 지속적인 학습, 새로운 길을 탐구하려는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선구자로 거듭난 Alex의 여정은 AI가 우리의 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변화를 수용하고 회복력을 키우며 역할을 재창조함으로써 오히려 성장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Alex가 될 수는 없다

 

Alex의 긍정적 사례가 있지만, 이를 일반화하여 성공법칙인 것 마냥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냉정한 현실을 같이 살펴야 한다. DreamBooth와 같은 유형의 디자인 일러스트를 해주는 생성형 AI인 미드저니(Midjourney)의 출현에 따라 영국에서는 예술가 단체에서 이를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고 보았고, 2024년 2월에 미드저니와 같은 생성형AI 회사에 대한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AI가 생성한 창작물이 기존 아티스트들의 저작권을 위협하고, 심지어 이미 침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시각 예술인들의 협회인 DACS(Design and Artists Copyright Society)가 1,000명의 예술가와 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89%의 응답자는 영국 정부가 생성형 AI에 대한 규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협회에서는 이미 1,080억 파운드 (약 170조원) 규모에 이르는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생성형AI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이들 예술인의 22%는 자신들의 작업이 별다른 동의 없이 AI의 이미지 생성 트레이닝에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처럼 법적 윤리 이슈가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은 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Alex와 같이 자신의 업무 영역을 개발하여 새로운 포지셔닝을 하는 것은 별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외부 상황이 알아서 해결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스킬을 개발해 나가는 노력이 결국 살아남는 길일 수 있다.




기술적 파괴 시대에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키울까


Human beings reject change that compromises their interests and the process of implementing new technologies is often fraught with "negotiation and resistance" as well as "terror and hope."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타협하는 변화를 거부하며, 새로운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은 종종 '협상과 저항', '공포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Lauren Weber, The Jobs Most Exposed to ChatGPT


탄력적인 회복력을 키우고 기술적 파괴의 시대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개인 단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의 것들이 있다.


1. 평생 학습은 당연한 것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초석은 지속적인 학습을 수용하는 마인드 셋을 갖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질적으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기질이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최신 정보를 얻고 그것이 자신의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로운 스킬을 가르치는 온라인 과정을 이용한다든지, 관련 산업기술의 워크샵, 세미나 등에 참여함으로써 꾸준한 지식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2. 소프트 스킬 육성

특정 기술의 경우 하드 스킬도 중요하지만, 비판적 사고, 창의성, 의사소통, 감성 지능과 같은 소프트 스킬은 기계로 대체하기 어렵다. 앞서 Alex의 사례에서 봤듯, 이러한 스킬을 통해 개인은 고객과 동료의 복잡하고 미묘한 요구 사항을 이해하고 충족하며, 팀에서 효과적으로 작업하고, 공감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3. 서로 다른 학제간 학습에 참여

학문 간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 및 AI에 대한 지식을 갖춘 마케팅 담당자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소비자 행동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얻고 캠페인을 보다 효과적으로 맞춤화 할 수 있다. HR도 마찬가지이다.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갖춘 HR 담당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직관과 경험의 바운더리를 더 확장하여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


4. 불확실성에 대한 정서적 적응력의 필요

갈수록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현실에서, 필요한 때에 변화에 적응하고 전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즉,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커리어 경로를 변경하고, 심지어 산업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하여 오픈마인드로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이러한 유연성에는 변화와 불확실성에 따른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관리하는 정서적 적응력이 필요하다.




기존 직업사회는 국가의 문화와 노동 규범에 의해 개인의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곤 했다. 미국과 같이 기업 친화적인 법규와 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기업의 비즈니스 성과 여부에 따라 언제든지 직원에게 해고(layoff)를 통보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반면 한국이나 영국처럼 피고용인의 직업 안정성을 법으로 더 보장하는 곳에서는 기업이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이유로 쉽게 일방적인 해고를 결정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문화와 규범/법에 의해 일자리가 보장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급속히 발전해버린 기술은 이런 장벽을 일순간에 허물어 버렸고, 우리는 이제 누구나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정도와 때의 차이가 있을 뿐 AI 기술에 대체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현상을 침착하게 따져보고 살펴야 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시장의 고용유연성을 이해하는 것부터, 회복탄력성을 통한 개인 단위의 적응 전략까지, 기술적 파괴 시대에서 여러 측면을 균형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주요 참고문헌

- OECD Jobs Strategy (2018) How does the United Kingdom compare?

-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2023) Gender pay gap in the UK: 2023

- Kašpárková, L. et al. (2018) Why resilient workers perform better: The roles of job satisfaction and work engagement

- Piotrowski, A. et al. (2022) Resilience, Occupational Stress, Job Satisfaction, and Intention to Leave the Organization among Nurses and Midwiv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Cantante-Rodrigues, F. et al. (2021) The association between resilience and performance: The mediating role of workers’ well-being.

- Tapper, J. (2024) Damien Hirst and Tracey Emin among thousands of British artists used to train AI software, Midjourney. The Guardian.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4년 3/4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 재배포가 불가하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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