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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HR 3부

전쟁 이후의 HR: 평화가 찾아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by 이재진

들어가며 - 폐허 위에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전쟁은 언젠가 끝이 난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기약 없는 휴전으로 이어지거나, 중동 지역의 여러 분쟁처럼 끝난 듯 보이지만 재차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전쟁이든 종결이 나면 환호와 슬픔을 뒤로 하고, 사람들은 남은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길 위에 쌓인 먼지와 어둠을 걷어내야 한다. 사람들은 다시 일터를 찾고, 학교를 열고, 병원, 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 제반시설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후 복구 (post-war reconstruction/recovery)는 단순히 물리적 기반시설의 재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파괴되고 분열된 사회에 대한 신뢰, 관계, 심리적 치유 등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 대한 회복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평화기에는 잘 보이지 않던 HR의 기능이, 전후(戰後)에는 조직과 사회의 회복 속도를 좌우한다. 인프라 재건은 수개월이지만, 신뢰와 조직문화의 회복은 수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HR은 어떤 역할을 하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그 역할은 단순히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에 대한 직무 재교육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구체적이고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지난 1부와 2부에서 논의했던 내용에 이어, “전쟁이 끝난 뒤”의 시점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HR의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보겠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HR 전략: 유럽이 준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재건


2025년 8월 15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주요 아젠다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종식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는 합의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결을 위한 논의에,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도 자리에 없었고, 우크라이나 주변국들이 속한 유럽연합(EU) 역시 논의 당사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림5.jpg 2025년8월15일 트럼프와 푸틴의 알래스카 회담장면 (*source: BBC News)


종전 논의에 미국의 개입과 역할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뒤로 하고, 여기서는 HR관점에서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의 복구를 위해 어떤 것들을 준비 및 실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3년 반 넘도록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EU는 지난 2024년 3월에 ‘Ukraine Facility’라는 500억 유로 규모(한화로 약 80조원)의 재건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에서 HR과 관련된 교육·직업훈련·고용시장 접근성에 대한 내용은 전체 예산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독일, 폴란드, 체코 등 인접국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자국으로 넘어온 피난민을 대상으로, 언어 교육과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후 재건에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국제기구도 발 빠르다. UNITAR (United Nations Institute for Training and Research)는 2023 - 2024년에 선발한 우크라이나 여성 난민 500명을 대상으로 6주간 온라인 + 1주간 집중 실습 + 2일간 고용 포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디지털 및 4IR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제4차 산업혁명) 역량 과정을 운영했다. 이들 중 20%가 6개월 후 폴란드에서 취업했고, 96%가 교육이 유용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2023년 긴급 대응 계획에서, 우크라이나 및 난민 수용국에서의 보건 인력 지원에 MHPSS(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를 주요 항목으로 포함하여 심리적 회복과 보건 체계 복원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도 지역사회 기반의 회복 전략을 강조하며, 현지 사회 역량 강화와 서비스 복구를 병행하는 통합적 접근을 추진 중이다.


전쟁 이후 HR관점의 전략은 과거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된 바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전역 군인 재취업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가동했다. 지방 산업을 중심으로 직업훈련소를 운영하고, 퇴역 군인에게 재정착 수당을 지급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시행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경우,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경제 재건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는데, 여기에는 인프라 건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기술훈련과 교육이 주요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마셜 플랜 기간 동안 전반적인 기술지원 프로그램(TAP, Technical Assistance Program)에 약 3억 달러(총 예산의 약 1.5% 수준)가 투입되어, 산업 생산성을 다시금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Wasser & Dolfman, 2005).


마셜플랜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이 시행한 대규모 원조 계획으로 1947년에서 1951년까지 약 130억달러 (현재가치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이 이뤄졌다.


평화 이후 HR이 회복해야 할 것들: 문화, 신뢰, 트라우마


전후(戰後) HR의 첫 과제는 인력 충원과 직무 재교육인 듯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회복탄력성(psychological resilience)”이다. 전쟁을 겪은 직원은 가족을 잃었거나, 피난지에서 원격근무를 했거나, 전선 가까이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복귀한다. 이들의 직/간접적인 전쟁 경험과 종결 이후 평화로운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간극은 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든다. HR은 이에 민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속한 대학에는 러시아 출신의 교수(A)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교직원(B)이 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영국에 정착하여 거주하고 있지만, 각자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많다. A 그리고 B를 포함해 여럿이 회의를 하는 경우, 업무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긴장감은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현장에서 그들의 지인들이 느끼는 감정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비단 직원 뿐이겠는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는 실제로 이런 교직원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갈등을 완화하고 심리적/감정적인 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HR의 전략적 역할을 재정의 한다. 즉, 단순히 인사 행정을 처리하는 기능 정도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문화와 신뢰의 회복을 주도하는 조직 내 “문화 복원자(culture restorer)”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시리아 내전의 경우, WHO와 UN은 보건 인력 복귀 과정에서 심리사회적 지원(MHPSS, Mental Health and Psychosocial Support)을 의무적으로 포함시켰다. 새로운 직원의 채용이나 기존 직원이 복귀 하기 전에, 심리 상담, 트라우마 대응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비록 전쟁 현장에서 심각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직 내에서 안정적인 정착과 업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영국 NHS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파병 경험이 있는 군의관과 간호사들이 민간 병원으로 복귀할 때, 복귀 전 워크숍, 팀 재적응 세션, 개인 상담 및 PTSD 대응 교육, ‘역할 전환 인터뷰’로 직무 조정, 관리자 대상 커뮤니케이션 가이드 등 도입하여 실제 현장에서의 갈등과 불안을 완화했다. 영국의 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추리소설 “셜록 홈즈”의 열혈 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셜록의 절친한 동료이자 전쟁 군의관이었던 존 왓슨이 한 기관에서 사회심리적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 받는 장면은 이러한 실제 현실 배경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NHS (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 국가보건서비스로 1948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모든 국민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원칙 아래 창설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기업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전쟁 피해를 겪은 직원이 복귀할 때 직무 재설계 옵션을 제공하거나, 팀 전체를 대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단합할 수 있는 내용의 워크숍을 운영해 갈등의 불씨를 사전에 완화시킬 수 있다. 전후(戰後)의 시기에 HR 부서가 이런 제도적/문화적 장치를 마련할 때, 조직/기업은 단순히 업무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장소의 개념을 넘어서게 된다. 사회적 기여 즉, 직원 개인에게는 심리적 안전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이는 곧 조직 내에서 HR의 전략적 리포지셔닝을 돕는다.


마치며 – 한국 기업들을 위한 메시지: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에 한국전쟁이 중단된 이후, 72년째 휴전이다. 여전히 종전이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국가이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전쟁과 같이 언제든 다시 불이 날 수 있는 글로벌 화약고로 꼽히는 곳이다. 전쟁과 HR을 3부작 시리즈로 작성한 글이 당장 비즈니스 HR 실무자나 경영자들에게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평상시에 전략적 대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욱이 국경을 너머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글로벌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전후(戰後) 재건은 정부와 국제기구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SG와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전후 지역에서의 인프라 복구 및 고용 창출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먼저 UK‑Ukraine TechBridge는 영국 정부와 주요 IT 기업이 연계해 우크라이나 기술 생태계의 회복을 돕는 전략적 연대 플랫폼이다. 영국 기업들은 TechBridge를 통해 우크라이나 기업과 협력하고, 재건 관련 기술 프로젝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협업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Re:Coded는 이 플랫폼에서, 난민과 기술(tech) 인재를 대상으로 코딩, 소프트 스킬, 디자인, 팀워크 등을 교육하는 무상 부트캠프를 운영한다. 특히 여성과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이들이 고용 시장에 복귀하거나 새로운 벤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 Deloitte & Salesforce 협업 프로그램은 폴란드로 유입된 우크라이나인을 대상으로 맞춤형 Salesforce 교육과 프로젝트 경험을 제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100명이 참여한 커리어 코호트에는 자격증 교육, 모의 면접, LinkedIn 프로필 리뷰 등을 포함한 실질적 취업 준비가 병행되었다. 이러한 실행은 기업 브랜드 신뢰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디지털 인재 생태계의 복원과 지속 가능한 경제 재건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이 수익실현 외에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받고 있는지, 또 HR 관점에서 어떻게 직원 관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 참고문헌

- Wasser, S. F., & Dolfman, M. L. (2005). BLS and the Marshall Plan: the forgotten story. Monthly Labor Review, 128(6), 44–52.

- UNITAR. (2024, December 16). Bolstering livelihoods for Ukrainian refugees in Poland with digital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4IR) training. United Nations Institute for Training and Research.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3). WHO Ukraine emergency appeal 2023. Geneva: WHO.

- Foundation for European Progressive Studies. (2025, February). Strengthening Ukraine’s healthcare for a resilient future. Brussels: FEPS.

-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24). Resilience building and recovery framework: Ukraine response. UNDP.



*본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5년 7, 8, 9월호에 "War and HR" 시리즈로 기고한 글의 편집본 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 재배포가 불가하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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