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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HR 2부

전쟁이 바꿔놓은 HR 제도: 역사적 전쟁과 제도적 변화

by 이재진

들어가며 – HR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늘날 HR을 논할 때, 전쟁은 단지 외부 충격이 아니라 제도와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정적 사건으로 작용해왔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군사적 충돌을 넘어서 노동시장, 인사제도, 성별 역할, 고용 평등 등 인사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의 핵심 영역을 재구성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의 경제 참여, 군 복무/휴직 후 복귀 제도, 재직자 교육훈련, 고용 평등 정책 등은 대부분 20세기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기존의 노동 질서를 뒤흔든다. 남성이 전장으로 사라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여성과 노년층, 청소년 노동력이 유입되었고, 전후(戰後)에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을 두고 치열한 정책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논의의 산물이 오늘날의 HR 제도다.


지난 1부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충돌 사태를 바탕으로 전쟁이 기업의 노동력 구성, 인재 확보, 이주와 피난, 하이브리드 업무 체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HR의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이번 2부에서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전쟁이 어떻게 HR 제도의 기원이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단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을 넘어, 지금 한국의 기업과 조직이 어떤 제도적 리프레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여성 노동력의 재구성 – ‘Rosie the Riveter’에서 NHS까지


여성 노동력의 대규모 사회 진출은 전쟁이 만든 역사적 전환으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들은 남성의 대규모 징병으로 심각한 노동력 공백에 직면했다. 수백만 명의 남성이 군 복무를 위해 떠나면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여성들을 공장, 병원, 철도, 군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여성들이 주로 가정 내에서 역할을 하였고, 교사나 사무직처럼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에 국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공장, 조선소와 같은 곳에서 리벳 작업, 용접, 전쟁 도구 조립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여성들에게 이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직업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고, 전통적인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근본적으로 촉발시킨 것이다.


그림4.jpg 2차세계대전 당시 여성의 노동을 상징하는 아이콘 ‘로지 더 리벳터(Rosie the Riveter)’ 포스터

이 시기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가 미국의 ‘로지 더 리벳터(Rosie the Riveter)’다 (위 그림 참조). 팔뚝을 걷어붙인 채 "We Can Do It!"을 외치는 이 여성은 단지 선전 포스터 속 이미지가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국가 노동정책의 상징이었다. 로지의 이야기는 1942년, 가상의(*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알려지지 않음) 공장 노동자 로지를 찬양하는 노래에서 유래하였다. 로지는 애국심과 근면함을 겸비한 여성들의 집단적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이후 1943년에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의 J. 하워드 밀러가, 로지를 시각적 표현으로 만들어 "We Can Do It!"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초기에는 직장에서 여성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포스터였지만, 이 포스터는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의 상징으로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도 여성 노동력은 1939년 전쟁 발발 전 550만 명에서 1943년에는 74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비율로 환산하면, 영국 전체 노동력의 약 26%에서 1943년에는 36%까지 급등하였으며, 이는 이후 고용 평등 논의의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여성들은 항공기 조립, 전차 생산, 무기 정비 등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노동에 투입되었고, 병원과 간호 영역에서도 핵심 인력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여성이 수행한 역할은 단순한 대체 노동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실제로 고도로 숙련된 스킬과 책임이 요구되는 산업 현장, 그리고 병원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노동의 전문성과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였다. 특히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립보건서비스)의 형성에도 여성 간호 인력과 전시 의료 인프라가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전후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여성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가시화 시키는 동시에, 일부 산업에서는 심지어 기존 남성 중심 고용구조의 균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영국의 NHS (National Health Service)는 1948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제도는 모든 영국 국민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조세로 운영되고 있다.


복무 후 복귀 프로그램의 기원: 현대적 HRD 제도화 및 Re-skilling의 시초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500만 명 이상의 영국군 병사들이 민간 사회로 복귀했다. 이들은 전쟁 이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없거나, 전쟁으로 인해 생계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다. 국가는 이들의 재적응을 국가 재건의 일부로 인식하고, 새로운 형태의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복무 후 복귀 프로그램(Post-service Reintegration Programme)'이다.


영국 정부는 1944년 '임시 고용 복귀법(Resettlement Advice Service)'을 상정하여, 전역자들이 민간 노동시장에 원활히 복귀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 심리 상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한 Training Within Industry (TWI)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후에 직무표준화, 직무훈련(OTJ), 관리자 교육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HRD의 초석으로 평가된다. 전쟁이 낳은 혼란이 곧, 평화기의 시스템 정비를 요구했고, 이것이 HRD라는 분야를 제도화하는 토대가 된 셈이다.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함께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미국에서는 G.I. Bill (1944)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법은 전역 군인들에게 대학 등록금 지원, 주택 융자, 직업훈련, 재취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괄적 지원 제도였다. 1956년까지 약 770만 명이 G.I. Bill을 통해 직업훈련을 받았고, 250만 명 이상이 대학 교육을 이수했다. 이 제도는 노동시장 내 대규모 전환을 지원하는 “정부 주도의 HR 정책”이자, 민간 기업과 교육기관의 협업 모델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현대 HR에서 기업들이 학계와 함께 산학협력으로 직업훈련 및 인재 개발을 모색하는 전략적 시초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제도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기업 내 비즈니스 영역에서 자리잡아 가며, 직원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 즉 '리스킬링(re-skilling)', '업스킬링(up-skilling)' 전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필요한 직무 역량의 갱신은 과거의 복무 복귀 정책과 유사한 철학을 공유한다. 기술 변화 혹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근로자가 다시 일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 개입이기 때문이다.


고용 평등과 다양성 정책의 태동 - Equal Pay Act의 역사적 배경


2차 대전은 고용 평등 정책의 정치적, 제도적 토대를 제공한 사건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전쟁 중 남성과 동일 노동을 수행한 여성들이 전후에도 동일 임금을 요구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노동시장 내 권리 회복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단지 일시적 여론이 아니라, 법제화된 고용 평등 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결정적 계기는 1970년 제정된 영국 Equal Pay Act다. 이 법은 “동일가치노동(same value work)”에 대해 남녀가 동일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최초로 법적으로 명문화한 것으로, 이후 2010년 Equality Act로 통합되어 오늘날까지도 영국의 고용 평등 법제의 핵심 축을 형성하고 있다.


영국에서 1968년에 발생했던 Ford Dagenham 파업 사건은 1970년 Equal Pay Act 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평가된다. 당시 영국 동부 Dagenham에 위치한 Ford 자동차 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여성 노동자 187명이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단행했다. 당시 여성들은 동일 생산라인에서 일하면서도 남성보다 약 15% 낮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 주목을 받으며 정부와 노조를 움직였고, 결국 Barbara Castle 고용장관의 중재로 동일임금 재분류(Equal Pay Regrading)’를 이끌어냈다.


동일임금 재분류(Equal Pay Regrading)는 직무의 가치나 난이도, 책임 수준에 따라 임금 등급을 재평가(regrading)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남녀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는 조치를 말한다.


영국 정부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산업별 협약에 여성 참여를 확대하고, 공공기관과 군 내에서도 점차 성평등 원칙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41년 ‘Essential Work Order’ 개정으로 여성들도 국가 지정 필수 산업에서 남성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1946년에는 여성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상급 행정직에 임용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같은 생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며 노동의 성별 분업에 균열을 낸 계기가 되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출신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수용하면서 다인종 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에 걸쳐 카리브해, 남아시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의료, 교통, 제조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인종 간 갈등, 노동시장 내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국 정부는 1965년 ‘Race Relations Act’를 시작으로, 고용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갔다. 이것이 오늘날의 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전략의 제도적 기원을 형성한 것이다.


전쟁은 HR 제도의 실험장이었다.


HR 제도는 원래 평상시 질서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가장 급진적이고도 실용적인 실험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onboarding(온보딩, 신입직원 적응 프로그램)은 전시에 투입된 병력과 산업 인력을 빠르게 훈련시키기 위한 표준화 프로그램에서 유래하였다. 직무 분석(job analysis)과 표준화된 직무 설명서(job description) 또한 군수산업에서의 효율성과 훈련 단축을 위한 필요에서 도입된 개념이다. 즉, 전쟁은 “인사관리 제도의 산실”이었다.


이러한 전쟁의 역사 속 HR 제도 변화는 지금 현대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산업구조 전환,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위기 대응 등 여러가지 복합적한 변화 환경 속에서 다양한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 역시,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파생된 HR 제도 실험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OECD 평균에 비해 여전히 낮다. 작년 2024년 기준으로 여성 고용률의 OECD 평균이 67.1%인데, 한국은 5% 낮은 62.1% 수준이다. 한국의 남성 고용률은 76.8%이다. 이는 단지 성평등의 관점이 아니라, 고령화 시대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여성 고용이 전략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앞서 다루었던 2차대전 이후 영국의 참전용사 복귀 프로그램 중, W.V.S. (Women’s Voluntary Services)는 여성 전시 노동자의 민간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조직으로, 전후에 여성들이 공식 고용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보건, 사회복지와 같은 공공부문에서 훈련 과정이 운영되었다. 이는 여성 직업훈련이 ‘단절 복귀’ 관점에서 구조화되기 시작한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여성 고용률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한국 사회에서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다.


HR 제도는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평화 속에서 진화한다.


전쟁은 단기적으로는 파괴를 낳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제도와 조직원리를 재정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HR 및 Employee Labour 관점에서 2차 대전은 여성과 이민자, 소수자 집단이 노동시장 내 시민권을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주었으며, 고용 평등과 조직 내 다양성 전략이 ‘도덕적 요구’가 아닌 ‘정치적 권리’로 제기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전쟁 이후 형성된 HR 제도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인간과 노동의 본질을 다시 사유한 결과물이었다. 인구 구조의 사회적 변화, 기술 혁신으로 인한 적응, 그리고 관세협상 같이 강대국으로부터 예기치 않게 촉발되는 글로벌 리스크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전쟁을 통해 살펴보는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HR 전략을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요 참고문헌

- Goldin, C. (1991). Understanding the Gender Gap: An Economic History of American Women. Oxford University Press.

- Summerfield, P. (1984). Women Workers in the Second World War: Production and Patriarchy in Conflict. Routledge.

- Bound, J. & Turner, S. (2002). Going to War and Going to College: Did World War II and the G.I. Bill Increase Educational Attainment for Returning Veterans? Journal of Labor Economics, 20(4), 784–815.

- Ministry of Labour and National Service (1945). The Training Within Industry Program in Britain. HMSO.

- 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2011). The Equality Act 2010: Guidance for Employers. EHRC.


*본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5년 7, 8, 9월호에 "War and HR" 시리즈로 기고한 글의 편집본 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 재배포가 불가하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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