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진 Nov 11. 2021

직원 수 1,200명 기업에 왜 HR 부서가 없을까?

Case Study – 영국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

#HR무용론 #옥토퍼스에너지 #OctopusEnergy #영국 #그렉잭슨


“매출 수조원에 이르는 우리 회사에는 HR 부서가 없습니다
(My billion pound company has no HR department)”. 

“HR 부서는 더 이상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지도, 생산적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는 HR 부서가 없습니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어떤 회사인가?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는 영국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에너지(Sustainable Energy) - 전기 및 가스 공급 업체이다. 


영국의 자산 운용사인 옥토퍼스 그룹(Octopus Group)의 자회사로 2015년에 설립된 옥토퍼스 에너지는, 2021년 2월 기준으로 약 2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영국 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호주, 일본에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경제 용어로 창업한 지 10년 이내에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약 1조 2천억 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기업을 유니콘(Unicorn) 기업이라 부르는데, 2020년 기준으로 옥토퍼스 에너지의 매출이 20억 파운드 (약 3조 원)를 넘어섰으니 충분히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영국의 경우 1970년대 부터 정책적으로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를 꾀했는데, 그 결과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기, 가스, 수도와 같은 공공 에너지 사업 부문에 다수의 민간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같은 지역에 있더라도 어떤 공급업체의 에너지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우리 집은 전력 제공 업체로 옥토퍼스 에너지의 것을 쓰는데, 바로 옆 집에서는 다른 업체(ex. EDF, Shell Energy etc)와 계약을 맺고 사용한다면 한 달 기준으로 같은 전략량 100kWh를 쓰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다르다. 


설립된 지 6년이 채 안 된 후발주자인 옥토퍼스 에너지가 영국의 가스/전력공급업체 경쟁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마트 사용-시간 요금제(smart time-of-use tariff)” 기술을 최초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f This Then That (IFTTT)’와 기술적 파트너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고객 관점에서 전력 요금에 대한 정보를 혁신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기존의 전력공급업체들은 산업표준 고정 요금과 변동 요금을 기준으로 고객의 전력 사용 요금을 산정하고 부과하는데, 옥토퍼스 에너지는 스마트 미터기를 활용하여 좀 더 세분화되고 공정한 전력 사용을 꾀했다. 예를 들어, 옥토퍼스 트래커(Octopus Tracker)를 사용하면 그날의 도매 가격을 기준으로 매일 사용하는 가스 및 전기 요금이 가변적으로 책정되며, 고객은 회사측의 수익 즉, 옥토퍼스 에너지의 간접비와 이윤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왜 HR 부서가 없을까?


1. 창업자이자 CEO인 그렉 잭슨의 경험적 가치관 때문


옥토퍼스 에너지에 HR 부서가 없는 이유는 CEO인 그렉 잭슨의 가치관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HR이 직원들을 보육화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관료제 속에서 익사시킨다”고 표현한 잭슨의 가치관은 집단 교육과 창의성 교육 사이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잭슨이 쌓아온 커리어도 옥토퍼스 에너지의 조직과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옥토퍼스 에너지를 창업하기 이전에 거울 제조 회사, 온라인 자산 관리 대행사, 까페 등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창업했던 그는, 경험을 통해 ‘지휘 및 통제’ 방식의 상하/위계 관계 조직 구조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5명 미만의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면서 HR 관련 이슈를 직접 해결했던 경험을 통해 관리자가 직접 HR 이슈(채용, 교육, 분쟁해결 등)를 처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그의 직접적인 경험은 현재 큰 규모로 확장된 기업의 HR 조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2. HR 부서를 따로 조직화 하는 것은 불필요한 필요를 유발한다. (파킨슨 법칙)


옥토퍼스 에너지가 따로 HR 부서를 조직화하지 않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경과 연관이 깊다. 파킨슨 법칙은 1957년, 영국의 역사학자 노스콧 파킨슨(Northcote Parkinson)에 의해 풍자적으로 제시된 개념인데, 어떤 일이든 주어진 시간이 소진될 때 까지 일이 늘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필요(need)’에 따라서 기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능(function)’이 생기면 이에 따른 필요가 생성된다는 것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면, 실생활에서 업무에 대한 데드라인이나 학교에서 시험 날짜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 해당 날짜까지 설렁설렁 지내다가 막판에 날짜에 임박하여 업무나 공부를 몰아서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관료주의에서 조직의 인력규모, 가용한 예산 등을 업무량과 무관하게 증가시키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HR 관점에서는 HR과 연관된 필요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HR 부서(기능)를 만듦으로써 (없어도 되는) 새로운 필요를 만들게 되고, 이에 따라 회사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과 타 부서와의 마찰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직원에게 업무 수행 방식을 알려주는 부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HR의 본질적인 역할 중 하나는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성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본질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HR 부서가 의외로 많다.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단적인 예로, 필요한 역할(Role)에 따라 상시 채용하는 인력 시장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포스팅되는 채용 공고에는 해당 포지션이 수행할 역할과 필요한 스킬, 경험 등이 자세히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채용하는 HR팀의 권한은 최종 고용된 직원에 대하여 그 사람이 수행할 일의 범위와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혹은 침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1865년에 설립된 영국 리테일 수리 전문 업체인 팀슨(Timpson)의 CEO, 제임스 팀슨(James Timpson)이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은 HR에 큰 울림을 준다. 

“HR의 핵심은 직원들을 돕는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은 HR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럼 옥토퍼스 에너지는 어떻게 HR 과업을 수행하는가?


HR 부서가 없다고 HR관련 과업이 없을 리 만무하다. 단 1명의 직원이 존재하더라도 해당 직원을 채용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등 기본적인 HR 관련 과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타트업 처럼 기업이 너무 작아서 HR 과업을 전담하는 관리자가 꼭 필요하지 않거나 HR 각 기능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기업에서는 사내에 HR 부서가 따로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직원 수가 1,2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기업에서 어떻게 HR 부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옥토퍼스 에너지에는 HR 부서 자체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HR 업무를 전담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있다. 이들은 총 10명이 채 안되는데, 이들의 역할과 소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직원 성과와 관련된 업무를 위해 HR 비즈니스 파트너가 재무팀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채용을 전담하는 직원은 총 2명인데, 이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채용이 필요한 리더급 매니저와 협력하여 입사 후보자를 찾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L&D(Learning & Development) 전문가가 또한 2명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영업팀에 속해 있다. 대부분의 HR 과업은 리더급 매니저들이 HR 관련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교육 및 학습을 통해 직접 해결한다.  


별도의 HR 부서가 없다는 것은 옥토퍼스 에너지가 탈중앙화된 조직 시스템(decentralised organisational system)을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피라미드 형식의 위계 질서가 갖춰진 조직이 아니라 중간 계층이 없는 수평적 조직을 뜻한다. 10명 미만으로 구성된 각 팀 (이해의 편의를 위해 ‘팀(Team)’으로 칭함)은 팀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10명 미만의 소규모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옥토퍼스 에너지에서 기업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동일한 수준의 팀이 수평적으로 개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해당 팀을 관리하는 또 다른 상위 개념이나 존재가 새로 생기지 않는다. 이는 직원을 ‘관리/운영(management/administration)’의 수동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행동하는 주도적인 존재로 여기는 잭슨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규모가 커졌지만 HR 부서가 새로 생길 필요는 없다. 기존에 각 팀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해당 팀 내에서 해야 하는 HR 관련 업무를 해당 규모 내에서 계속 하면 되기 때문이다. 직원 규모가 1,200명이 넘지만 그것은 겉에서 바라보는 스케일일 뿐이다. 소규모 단위의 팀이 계속해서 ‘복제’하듯 늘어나고, 각 팀 내에서 일하는 방식은 마이크로 레벨의 소규모 기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위와 같은 이유와 방법으로 HR 부서 없이도 HR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평적으로 마이크로 단위의 조직이 복제하듯 늘어난다고 해도, 결국에는 큰 규모의 조직인데, 이를 매크로 단위로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옥토퍼스 에너지는 이를 다양한 기술(Technology)의 활용으로 해결한다. 예를 들어, 직원 데이터 관리의 경우 ‘HiBob’ (*HRIS 관리 플랫폼)을 활용한다. 옥토퍼스 에너지 직원들은 정규직이 되면 모두 일정 부분 주주가 되는데, 이 때 직원들이 자기 자본 관리를 할 수 있도록 ‘Vu’라는 플랫폼을 이용한다. 직원 교육 측면에서는 ‘Loop’ 플랫폼을 통해 직원 상호간에 콘텐츠를 올리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팀 단위의 피드백과 이와 관련된 데이터 관리는 ‘OfficeVibe’를 활용한다. 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는 Zoom, Slack과 같은 온라인 협업 도구의 활용이 늘어났다. 이를 통해 1,200명이 넘는 전 직원이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으로 만나 최신 활동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HR 부서는 정말로 필요 없을까?


옥토퍼스 에너지처럼 HR 조직이 따로 없든, 아니면 별개로 가지고 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직원들이 지금의 ‘HR’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커리어 개발 사이트인 Zety에서 약 1,000여 명의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2020년에 HR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69%의 응답자가 HR 부서에 대하여 불신한다고 답했다. 직원 세 명 중 두 명이 HR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치적으로 조사한 바는 아니지만 필자 주변의 현업 실무자 대부분의 경우에도 HR에 대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첫째, HR 기능의 중요성과 필요의 증가가 곧 HR 부서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기존에 없었던 HR 관련 이슈들이 발생하지만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처럼 수평적 조직화와 관리자에 대한 주도권 위임, 그리고 기술을 활용한 전략으로 HR 부서가 아닌 HR 개별 기능에 집중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HR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다. ‘관리/감독(management/administration/supervision)’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있다. HR에 대한 사람들(일반 직원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과 선입견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HR이 좋은 부서이고 조직에 꼭 필요한, 즉 긍정적인 작업 환경을 지원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체험하게끔 함으로써 HR에 대한 이미지 균형을 맞춰야 한다.  


셋째, ‘HR’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자. 당연하겠지만 옥토퍼스 에너지의 조직 구성과 방식을 그대로 벤치마킹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대로 벤치마킹 자체가 필요하지 않고, 중앙 집권형 조직으로 HR 부서가 존재하는 것이 효과적일수도 있다. 다만, 직원 수가 1,200명이 넘고 3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거대 기업 임에도 별도의 HR 부서가 없는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는 우리에게 HR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한다. 우리 회사의 HR 부서는 무엇을 하는가? 직원들은 HR 부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HR 실무자로서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 우리 회사에서 HR 부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외에도 다른 여러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 주요 참고문헌

- Kurter, H. (2021). 3 things eliminating your HR department says to your employees, Forbes 

- Shaw, D. (2021). CEO Secrets: 'My billion-pound company has no HR department', BBC News

- Weber, L. & Feintzeig, R. (2014). Companies say ‘No’ to having an HR department, The Wall Street Journal

- Whitehouse, E. (2021). Meet the billion-pound company without an HR department, People Management 

작가의 이전글 한국-미국-영국에서의 삶 통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