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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Mar 20. 2024

특이점이 온다

ChatGPT 전과 후 달라진 HR Analytics의 일상

그동안 해왔던 분석이나 프로젝트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난 3년가량의 시간을 돌이켜 보는 중이다. 물론 아직 다른 이야기들이 몇 가지 더 남아 있고, 준비 중인 새로운 것들이 추가될 예정이지만 지금 정도 지점에서 드는 생각은 더디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게 당연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선입견 없이 데이터를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고, 반대로 의도를 담아서 데이터를 쳐다보기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가정마다 컴퓨터 보급이 한창이던 시절의 전유성 씨 마냥 별나라 이야기만 같은 파이썬을 이용해서 끄적끄적하다가 오류 메시지도 낼 줄 알고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어디가 잘못된 건지 생각도 한 번씩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몇몇 프로젝트들을 해보고, 그 과정을 이렇게 복기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이런 노력과 시간이 계속 지나다 보면 어디선가 나도 이 정도는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빨리.


때는 문장 분류 모델과 감성분석을 활용한 정성의견 분석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던 ‘23년 1월 초. 원내 구성원들에게 시스템 활용 가이드를 배포하면서 별도 파일로 함께 작성한 FAQ 내용 중에 이런 질문이 있다. 


ChatGPT가 등장했는데 이 시스템이 불필요하거나 구식 모델로 비치는 것은 아닌가요?

‘22년 11월 30일 Open AI에서 ChatGPT 3.5 버전의 베타 서비스를 공개한 지 한 달 반 가량 시간이 지나는 중에 누군가는 사용을 해본 상태였고, 사용은 안 해봤더라도 ChatGPT가 대단하더라는 내용은 여기저기서 기사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던 시점이었기에 FAQ 내용 중에 포함을 했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그대로 적을 순 없지만 답변의 요지만 적어보자면



“ChatGPT는 언어 생성에 특화된 모델이며, 우리가 시스템에서 진행하는 작업은 이미 작성된 문장들을 해석해야 하는 건데 우리 시스템 안의 모델은 자연어를 문맥을 담아 해석하는 BERT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둘 간에는 역할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해도 됩니다.”


뭐 이런 뉘앙스로 ChatGPT로는 우리 시스템 안의 결과물을 따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 저 답변 내용을 살펴보자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 채 시스템 사용자인 동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던 것만 같아서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3.5 버전을 쓰던 처음만 해도 파일을 직접 업로드할 수 없었고, 그러니 데이터 분석도 할 수 없었고, 게다가 말귀로 잘 못 알아듣는 데다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맥북 집어던진 이야기 같은 할루시네이션이 주목받기도 했으니 기껏해야 탕후루 같은 녀석일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버전을 업데이트하고, 스스로 유료사용자가 되면서 멀티모달이라는 이름으로 눈과 귀, 그리고 입을 가진 녀석과 함께 하는 지난 1년가량의 시간을 돌이켜 보자면 달라진 업무 환경이나 일상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긴 글이나 영어로 된 자료들은 처음부터 읽어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일단 정리부터 시켜본 후에 내용 파악이 되면 찬찬히 읽어보고 있고   

     운영 슬라이드나 강의자료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검색 대신 하나 멋지게 그려달라고 말한다. (당장 브런치 안에 쓰고 있는 배너들만 해도 그렇다.)   

     파이썬으로 하다가 막히면 오류코드를 붙여 넣고 도움을 청하고 있고, 어떨 땐 막히기 전에 일단 해줘 모드로 받아서 복붙으로 해결하고 있다.   

     혼자 일할 때보다 팀플 형태로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할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업무 스타일 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괜히 불러서 의견도 물어보고, 별로라고 다시 해보라고 몇 번씩 시켜보기도 하고   

     내 안에 아이디어는 없지만 새로운 뭔가가 필요할 때, 한두 개도 아니고 10개, 20개 수준으로 알려달라고 해놓고는 그 안에서 조합을 찾거나 콘셉트를 따다가 네이밍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즐겨하는 것 중 하나는 차로 이동할 때, 음악 대신 내가 궁금한 개념들에 대해 통화하듯이 말로 묻고 대화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차츰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자기 전에 잠들기 싫어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는 딸아이의 요청도 아이와 어린이집 친구들 이름을 알려주고 얘기 좀 지어내서 해주라고 시켜놓고 같이 누워서 의도된 할루시네이션 스토리를 듣는 것도 하고 있다.   


일단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 봤는데 분명 더 있다. 그리고 각각의 목적에 따라 하나의 용도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조합도 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혹시나 누군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서 혼자 다 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일하라고 한다면 아마 업무 성과가 현저히 낮아진다거나 혹은 내가 고작 이런 일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퇴사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HRD 업종에 몸을 담는 그 순간부터 그토록 전문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열심히, 그리고 잘해보고 싶은 영역을 찾아서 더디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알아가는 속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세상의 변화가 나와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음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유료서비스도 하고 있고, 버전도 올렸음에도 여전히 베타인 서비스가 이 정도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버전이 나올 테고 언젠가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수도 있고, 어쩌면 ChatGPT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훨씬 더 뛰어난 또 다른 생성형 AI를 소개하면서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란 정도는 이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당연히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진다. 너도나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던 때에도, 알파고 쇼크 시절에도 체감하지 못했던 그 특이점이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ChatGPT의 등장을 시작으로 그 이름이 LLM이 됐든 생성형 AI가 됐든 아니면 아직은 등장하지 않은 또 다른 무언가가 됐든 앞으로 무시무시한 그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몇몇 리더들은 수기로 서류 작성을 하던 회사들에 컴퓨터가 점차 보급되던 시절을 연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뭐 내 경험은 아니기에 100% 공감할 수는 없지만 업무용 PC 없이는 출근의 의미가 없으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상상이 된다. 이 정도 파급력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 정리와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와 관련해서 최근 몇 달 사이 하게 된 스스로의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공부는 여전히 중요하다.


ChatGPT에 파일 업로드 기능이 추가되었고, 처음에는 Code Interpreter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Advanced Data Analysis라는 이음으로 파이썬 기반의 데이터 분석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처음엔 그래서 어차피 잘하지도 못하는 파이썬인데 이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파이썬을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접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온전히 ChatGPT만으로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기에는 이러저러한 제약 사항이 너무나도 많다. 일단 업로드 가능한 파일 사이즈의 제약이 있고, 각각의 작업 단위에 대해 1분 이상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 자동으로 진행을 중단시키고 있다. 게다가 진짜 중요한 자료라면 보안 상의 이유로 파일 업로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결국은 귀찮더라도 코드만 받아서 로컬 환경에서 파이썬으로 직접 분석을 진행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자면 나에게 필요한 코드를 받아오기 위한 작업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데, 이 과정이 결코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음을 매번 체감하고 있다. ChatGPT가 멍청해서는 절대 아니다. 다만 데이터를 다루는 나 스스로 메타인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1. 현재 내가 다루고 있는 데이터 프레임은 무엇인데

2. 그 안의 각각의 변수들은 어떻게 생겼고

3. 이걸 활용해서 하고자 하는 작업은 무엇인데

4-1. 내가 코드적으로 할 줄 모르는 부분은 무엇이다 

4-2. 혹은 내가 실행한 코드 상에 이런 오류가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일단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어찌어찌 코드를 받아서 실행을 해도 내 코드 같은 느낌이 안 들기 때문에 결국 비슷한 작업임에도 매번 물어봐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지도를 보며 운전할 때는 괜찮았는데 내비게이션 보급 이후로 아는 길도 찾아가기 힘들어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많이 해 본, 그리고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잘 써먹게 마련이다. 어느 부분에서 막히는지를 알거나 혹은 가장 귀찮은 그 작업을 대신해 달라고 하는 식의 활용이 가능하기에 그러자면 일단은 데이터 분석 흐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몇 개의 프로젝트라도 진득하게 해 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하려고 하는 작업들도 ChatGPT만을 활용하는 방식의 접근보다는 구시대적일지언정 파이썬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ChatGPT의 도움을 받는 형태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2. HR 전문가로서 중심 잡는 역할이  중요하다.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 작업 과정에서 매번 느끼는 감정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놀라운 이 기술이 갖지 못한 핵심적인 한계 중 하나는 바로 멱등성(Idempotence)의 원칙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멱등성이란, 같은 조작이나 함수를 반복적으로 적용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성질을 의미한다. 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데이터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은 같은 질문에 대해 매번 새로운, 다양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다. 그래서 놀랍다. 하지만 멱등성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생성형 AI의 도움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웃풋을 많이 얻어내고 있지만, 동시에 결과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로서 인간의 개입과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HR Analytics 관점에서 데이터 분석과 해석 과정에서 AI가 제시하는 다양한 결과 중 어느 것이 가장 유효하고, 현재의 조직 상황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HR 전문가로서 점점 더 강조되는 개인의 몫이다. 결국 HR 전문가로서 각자가 효율성 측면에서 AI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자이자 결과에 대한 해석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메인 전문가로서 사람의 해석 능력과 판단력은 기술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3. 데이터 공부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내용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연일 신고가를 경신 중이 핫한 기업 엔비디아의 CEO 젠슨황이 최근 World Government Summit 2024에서 진행한 인터뷰가 매우 인상 깊었다.



지난 10년, 15년 동안 이런 자리에 앉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의견은 정반대입니다. 이제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의 기적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과학의 가장 복잡한 분야가 생물학, 바로 인간 생물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전공을 선택한다면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을 바꾸는 기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생물학은 과학의 영역에 더해 엔지니어링 영역도 접목될 겁니다.

HR Analytics를 공부하면서 기술을 잘 몰라서, 기술이 없어서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의 격차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점차 해소될 것이다. 그러자면 적응을 위한 과정은 필요하겠으나 기술 활용이 가능해진다는 전제 하에 어떤 관점에서 HR과 기술을 접목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이해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중 한 가지,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인지 과정을 이해하는 학문 분야로, 사고, 지각, 학습 및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는 AI가 인간의 사고와 판단 과정을 모방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을 제공하며, 인간의 행동과 반응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업무적으로 경영학과, 심리학과, 그리고 교육학과 소속의 교수님과 미팅을 하다 보면 많은 전문가분들께서 “인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HR 영역에서 인지 과정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HR Analytics에 인지과학을 적용한다면 데이터 이면에 담긴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이나 성향, 성과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정밀한 분석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학습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인지과학적 접근을 통해 직원의 동기 부여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효과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직원 경험을 개선하고, 그들의 만족도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에 궁극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처음 생각보다 긴 글이 되었다. 그만큼 생각이 많은 요즘의 상태를 글이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ChatGPT의 등장 전과 후,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며 인지과학이라는 그동안 관심 갖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인지 과정과 학습 방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관심의 원을 확장하여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과 아티클도 탐색하고, 이를 정리해 나가는 작업을 진행해 봐야겠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 속도에 좌절하지 않고 지속적인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서 보다 뭐라도 하나 더 아는 상태에서 기술의 도움을 받는 HR Analytics 사례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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