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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un 20. 2024

책임님, 당신은 Professional 인가요?

HRD Korea 2024, 발표 소회

지난 3년 간 진행했던 프로젝트 사례에 대한 기고 또는 외부 발표 문의를 종종 받게 되는 요즘이다. 물론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거나 끝은 났지만 정리가 덜 되었거나 혹은 데이터의 민감성 때문에 이곳에도 공유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프로젝트 사례라고 할 게 많지 않은 와중에 요청을 받다 보니 반가움과 동시에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오늘 HRD Korea 2024 AI/DX 세션에서 감성분석을 활용한 HR 정성의견 분석 사례 발표를 진행했다. 



사실 이미 다른 자리들에서 외부 발표를 해봤던 데다가 앞으로 2주 사이 3군데 자리에서 추가로 발표를 해야 하기에 오늘의 발표 자체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취준생 시절 월간 HRD를 보면서 각 기업의 사례들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었고, 사원 시절 처음으로 참가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외부 교육 프로그램이 월간 HRD 포럼이었기에 그냥 오늘을 포함해서 예정된 발표들의 자료를 동시에 고민하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두고 싶었다. LG인화원 사례가 외부에 오픈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기에 어쩌면 생각보다 발표 기회 자체는 많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근의 발표 기회에 의미 부여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이나 체계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젝트 사례를 외부의 HR 담당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HRDer로서의 직업병


사실 지난 15년 동안 나는 늘 전문성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깊은 고민해 왔던 것 같다. LG전자 전사의 선행 R&D를 담당하는 CTO 조직에서 R&D 직무 교육 담당자로 일하면서 별나라 이야기 같은 기술 내용들을 콘텐츠로 다루는 동안 주로 교수님들이 강의 형태로 진행되는 교육장 내에서 쌓이는 나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으로 그룹의 연수원인 LG인화원으로 이직을 하기도 했다.


이후 사내 외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사례와 콘텐츠를 검증하고, 그들의 내용을 교육 콘텐츠로 개발하거나 혹은 내가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맥락에 맞게 강사 혹은 SME로 섭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기에 솔직하게 말해서 전문성이나 전문가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조차 개인 크리에이터의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고, 기왕이면 검증된 방송국 출신의 PD들이 운영하는 채널이나 적어도 제작자가 별도로 있는 콘텐츠를 보고 있고, 개인 크리에이터인 경우에는 그들의 초기 콘텐츠보다는 최소 100만 이상 구독자를 확보한 이후 TV 방송 등에서 최소한의 검증이 된 유튜버들의 영상만 찾게 된다. 내용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있어 책을 읽을 때도 기왕이면 이름을 아는 작가들이 쓴 책을 찾게 되고, 그리고 기왕이면 책보다는 논문을 찾아서 내용을 학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논문은 3명 이상의 전문가(?)로부터 내용에 대한 디펜스를 마친 후 나에게 전달되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적어놓고 보니 재수 없기는 한데 이게 15년 동안 진짜 전문가들을 찾고 그들이 보유한 전문성을 확인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전문가인가?


내가 HRD 업계에 입문하면서부터 지난 15년 사이 만나는 전문가들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나의 풋내기 사원 시절에는 소위 산업강사라 불리는 직업이 있었고, 남들이 들으면 좋은 회사라고 할만한 대기업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심지어 그들이 HRD부서에서 오랜 시간을 근무한 이력이 있다면 본인의 재직 시절 교육 콘텐츠를 활용해 기획력과 문제해결, 프레젠테이션 등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각 기업의 HRD 출신 OB분들이 퇴직 이후 시간당 강사료를 높이 받으며 후배들을 대상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전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최소한 관련 전공의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좋은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길 원하게 되었다. 학문적인 깊이와 이론적 배경을 갖춘 사람들에게 신뢰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기 시작하던 시절의 나 역시 괜히 이직해서 다른 회사에서 똑같이 전문성을 고민하느니 진짜 전문가인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첫 번 째 석사과정을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했었다.


최근에는 단순히 학위나 타이틀보다는 그 분야에서 본인의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을 전문가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래도 유튜브나 블로그, 심지어 책 쓰기까지 진입 장벽이 무의미해지면서 이제는 모두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각 분야의 진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강의하는 이런 세상의 변화가 처음에는 참 불편했고, 나의 전문성은 뭘까에 대해서 전보다 더 고민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학습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LG인화원 20년 경력의 HRD 담당자가 전하는 프레젠테이션 비법보다는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소개하는 영상이 훨씬 더 파워풀하고, LG인화원 20년 경력의 HRD 담당자가 전하는 기획력 강의보다는 나영석 PD가 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 썰이 훨씬 더 와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제는 슬프지도 않다.



“정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LG전자에 재직하던 사원 시절, 팀장님께 허락을 받고 월간 HRD 포럼에서 진행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날 프로그램 중 참석자들끼리 팀을 짜서 HR의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는데, 흥국생명에서 오신 한 부장님의 모습이 아주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이 내용에서 그분이 속한 회사가 갖는 의미는 전혀 없지만 그분의 회사와 직급까지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굳이 적어두었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참석한 사람들끼리 제법 열띤 생각을 나누던 중 그분께서는 "자, 그럼 이제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그 주제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분이 이후에 말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장님으로서 그가 보인 태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고, 그때의 나는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도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이후로 한 번도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의 경험이 내가 전문성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가지고 보수적으로 바라보게 한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책임님, 당신은 Professional 인가요?


다행스럽게도 이제 더 이상 회사 안에 부장님은 없다. 모두가 책임인 상태로 일하고 있고, 영어로는 우리의 직급을 Professional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빠짐없이 시청하고 있는 검증(!)된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최강야구를 보다 보니 김성근 감독께서 선수들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프로라는 것이고 이런저런 핑계 없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 몇 주간 오늘 발표를 준비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전문가로 향하는 길에 서 있는 걸까?

나는 어떤 부분에 대한 인정을 받아 외부 컨퍼런스에서 발표 요청을 받은 걸까?

나는 외부의 부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일까?



줄탁동시(啐啄同時)


몇 주간의 고민 끝에 내린 현재까지의 결론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전문성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복잡한 마음은 없다. 오히려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는 '줄탁동시(啐啄同時)'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서로 협력하여 일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뜻한다. 


다분히 HRD 20년 차 부장님이 강의자료 어느 한 구석에 쓸법한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오늘 HRD Korea 2024 발표를 준비하면서 알 속에 있는 나의 준비상태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5년 차가 된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계발을 통해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다.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들이 과연 맞는 것인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겠지만 남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에 맞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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