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지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재수생활을 마치고 교육학과를 선택하면서부터 가업(?)을 계승하여 HRD의 길을 걷는 것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다만 졸업반 당시 경력개발 관련 수업을 들으며, 나의 커리어 계획을 고민하는 기회가 있었고, HRD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과 취업을 두고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기억을 회상해 보자면 세상 물정을 모르던 그때의 나는 “교수"라는 동일한 커리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안에서 대학원과 취업 중 순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취업을 먼저 하는 길을 택했고, 처음의 계획과는 조금 달랐지만 사원 3년 차에 잊고 있던 목표를 떠올려 일반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런데, 업무와 병행하던 일반대학원 생활은 나의 생각과 달랐다. 고작 실무 3년 차 밖에 안 되는 주니어였지만 HRD 현업의 속도는 학교의 그것보다는 많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말하자면 현업의 HRD 담당자들은 이론적 백그라운드는 탄탄하지 않지만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이전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이미 고민해서 실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학교 수업과 과제를 통해서는 현업의 사례에 대해 이론적 배경을 덧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HRD를 접했고, 막연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학생이던 내가 매일 마주하는 내 앞에 서는 분들이 교수님들이었으니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 있으니 내가 마주한 교수님들의 주된 업무는 학생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활동이라는 것이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원형탈모까지 겪어 가며 논문을 쓰고 졸업은 하였으나 그때 결심한 것은 ‘공부는 나의 길이 아니며, 내 인생의 공부는 여기까지이다.’였다.
그런 내가 어쩌다 보니 데이터 길에 접어들어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두 번째 석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일과 전문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전환을 거쳐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다면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걸로는 부족했던 걸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이제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커리어의 변곡점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은 결코 즐겁지도 수월하지도 않았던 두 번째 석사를 마무리할 때에도 내 인생의 공부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있는 걸까? 사실 이번에도 그 시작이 온전히 자의적이진 않았다. 난 그저 일을 위해 데이터 분석 과제 멘토 섭외 목적으로 교수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고, 자연스레 나의 관심과 프로젝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생성형 AI의 창발에 대한 꽤나 즐거운 대화였던 기억이 있는데 대화 도중 교수님께서 “우리 학교에 인지과학이라는 전공이 있는데 어쩌면 책임님 관심사랑 잘 맞을 것 같네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순간에 접한 정보였지만 미팅을 마치고 복귀하던 지하철에서부터 인지과학 전공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인지과학에 대한 소개글이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mind) 또는 인지(cognition)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분야로서 인지심리학, 언어학, 철학, 컴퓨터과학 및 신경과학의 기여를 바탕으로 하는 종합적 학문분야이다. 인간의 사고를 계량화 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5개 전공 교수님으로 다양한 관점의 배움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끌림이 있었다. 그간 엄격하게 구별해 온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밝혀낸다는 미명하에 각 전공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융합 전공인만큼 특정 전공에서 개설되는 수업만 이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공에서 개설되는 수업들을 듣고 졸업 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 가능하다고 한다. 평소에도 각각의 콘텐츠 영역에 대해 여기저기 외부 교육들을 찾아서 들으러 다니는 HRD 담당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코스웍 중에는 지난 두 번의 석사 학위 때보다는 조금이나마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겠지… 쳐 맞기 전까지는…)
인지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말이죠
지난 몇 년 사이 업무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분들을 찾아가 말씀을 나누면서 많이 들었던 표현이다.
보통은 그분들께서 말씀하시는 핵심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혹은 모든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의 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땐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은데,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궁금했다. 그래서 인지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떤 과정을 통해 사고와 반응을 하는지, 내가 관심 갖는 조직 내 구성원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어떤지 뭐 이런 것들?
물론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석사가 아닌 박사 과정일 때,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인지. 비록 지난 꿈을 떠올려 이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기에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행복회로를 돌려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일 테니 지도하시는 교수님들께 그런 편의를 봐주시길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에 걸친 석사 경험들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학위 과정은 결국 몰랐던 내용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그 주제나 전공 분야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 인지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무엇하나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채 지나게 되겠지만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마음으로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 될 몇 년의 시간 동안 그저 묵묵히 나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