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by 랑봄

그간 시댁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면 외동인

나는 친정부모님께 하소연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라도 하면서 내 힘듦과 아픔을 다독임을 받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는 처음에는 같이 화 내주다 그래도

어른들인데.. 하며 진정시켜 주는 편이고 친정아빠는 어릴 때

시골에서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기에 그 영향인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말로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네가 싫어도 너 남편 부모다. 애기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다. 물은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이런 대답에 난 아빠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다.

"아빠, 난 내 딸이 이런 일을 겪었음 중간다리 역할 제대로 못한 사위 먼저 잡고 시댁 찾아가서 뒤집어엎었을 거야, 아빠처럼 고지식하게 대응 안 해"라는 말을 했었다. 아빠도 마음에 걸렸는지 몇 주 뒤 말을 했다. "아빠도 속이 상해, 내 딸이 시댁에서 그런 말을 듣는데 속 편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

하지만 딸 가진 부모는 죄인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하소연 들어주면 속이 좀 풀리겠지 그럼 고부갈등 없이 편하게 살길 바라는 거야" 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아빠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난 아빠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기엔 나에겐 일들이 많았고 내 말에 공감을 해주지 않음에 투정을 부린 거였다. 하지만 더 이상 친정부모님 생각하며 참고 마음을 다스리며 시댁과 이 전처럼

지내기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지만 그들이 곁에 있음에 좋을 부분보다 안 좋은 부분이 더 많아 보였고 이제 어느 정도 자라니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란 걸 아이들도 안다.


짬짬이 우리 집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들

시댁이란 이유로 나 말고도 나의 부모, 아이들까지 언급을 하는 걸 보면 그런 시댁은 본인들 인생에서 최대 업적이 아들 낳은 거 말곤 없다는 글을 봤었다. 그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작년 중순까진 시댁에 본인이 아이들만 데리고 시댁에 다녀오겠다, 집에서 쉬고 있어라 했지만

결코 난 보내주지 않았다. 갈려 건 너 혼자 가고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말라고. 시댁에서 날 보고 싶어 하겠니? 애들이 보고 싶은 거지 내가 왜 시댁이 원하는 걸 따라줘야 하는데ॽ़ 갈 거면 너 혼자 가. 그렇게 남편도 가지 않았다.

남편과의 합의로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에만 가잔 이야기를

해서 이번 연도 설에 마지막으로 갔었다. 추석에는 남편 일이 생겨 가지 못했으며 설 당일에 갔을 때도 이리저리 바빴던

전과 달리 난 상차림, 설거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 구석에 앉아있었다.

며느리 도리.. 더 이상 나에겐 며느리 도리란 없다.

그들에겐 이상한 애가 들어와서 집안을 어둡게 한다

생각할지언정 선 넘기 이 전에 내 모습들을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이전에는 한 번쯤은 묻고 싶었다.

대체 그 어린 나에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들을 한 거며

무슨 답을 얻고 싶었던 건지, 본인들의 말과 행동들이

한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였고

슬픔으로 다가왔는지 아는지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질문도 답도 얻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물론 이게 정말 마지막 일 거라 생각은 안 한다.

언젠간 같은 일이 반복이 된다면 그때는 이 전처럼

아무 말 없이 물러서진 않을 거란 다짐을 한다.


자잘한 이야기들을 다 쓰기엔 한계가 있어 내 기준 큰 일들만 써 보았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큰 상처와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다. 그렇지만 이기적 이게도 나는 오히려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는 지금이 편하다. 그들로 인해 남편과

굳이 싸울 일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일로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니 거즌 십 년을 바라보는 이제야

결혼이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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