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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Aug 11. 2022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9일 차, 20200326

집에 불이 나면 제일 중요한 것이 생각난다고 한다. 나는 집에 불이 나면 무엇을 제일 먼저 생각할까.

흔적은 알아보게끔 타버린 것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사랑하는 사람들, 추억이 서린 공간 그리고 물건 등 불에 타 버리기엔 소중한 것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다.


올해 초에 호주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서 전 세계의 많은 걱정과 관심이 몰렸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불이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다. 

초기진압에 성공하지 못해서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가는 이 불이 얼마나 더 강해지고 퍼져나갈지 두렵다.

보이지 않는 전쟁, 보이지 않는 재해 안에서 사는 우리들은 요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평소와는 조금은 다른 감정들이 찾아왔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베를린 중심가 쪽에 위치한 가격도 저렴하고 상태도 굉장히 좋은 집을 방문했다.

집을 내놓으신 분은 가정이 있으신데 아내와 딸은 이미 한국으로 보냈고 본인도 학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집을 내놓는다고 하셨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한 치 앞의 거주 문제가 심각하기에 그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도 그 집이 내가 지낼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잠시 후 받은 연락은, 아직은 독일 생활을 정리하기에 미련이 남아 한 두 달 더 머무르며 상황을 지켜보고 싶기에 집을 내놓으시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많이 아쉬웠다. 내색은 크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많이 아쉬웠고, 그래도 집을 보러 오시라고 초청을 하시기에 승낙하였다. 


선한 인상이다. 다부진 어깨와 깔끔한 인상이 신뢰가 간다. 혼자 지내신다는데 집 정리도 잘한 것을 보면 섬세한 사람인 듯하다.

어차피 내놓을지 않을 집을 나는 왜 보러 간 것인가 싶었지만, 혹시나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분의 마음이 바뀔까 희망을 가졌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로 전쟁과 같다고 말한다. 

그 전쟁통 가운데 살 방도를 찾아가면서 예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처럼 꿋꿋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가자는 이야기도 하셨다. 꿈을 아직 포기하기엔 아쉽다는 그분의 말이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허나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나에게, 가족의 부름을 뒤로하고 이 화재 안에서 홀로 더욱 버티신 다는 분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까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진심을 전하기에는 나는 지금 단순히 집을 간절히 찾고 있는 한 사람으로 서있기 때문에. 


집에 불이 나면 제일 소중한 것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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