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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아무런 바람도 비도 내리지 않는 그런 폭풍우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4일 차, 20200410

방 안에 폭풍이 불어닥쳤다. 제대로 햇빛 한 번 받지 못하고 바람 한 번 불지 않은 방에 폭풍이 불어닥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상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매일 폭풍이 분다.

피하고 싶은 많은 문제들과 어려움들은 꿈에 다가와서 휴식조차 방해한다. 4주째 이어지는 재택근무에 매일이 휴식이지만 제대로 휴식 한 번 취해본 적 없다. 진정한 휴식은 언제쯤 찾아올까. 분명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피곤한 회사 생활에 부족한 휴식을 탓할 내 모습이 보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휴식이 없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나는 정말로 핵노답.

자꾸 문제점만 생각나고 불평불만이 생기는 뇌의 부분을 도려내면 좀 좋아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깨고 싶지 않은 잠을 억지로 깬다.

몇 되지 않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보면 나의 하루하루는 그들 덕분에 지탱된다. 행여나 나를 걱정할 그 사람들 덕분에.


며칠 전부터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 10 제곱미터를 넘지 않는 생활 반경에 필요한 에너지는 두 끼로도 충분히 다 섭취될 수 있을 것이다. 돈도 절약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섭취를 줄여서 체중 증가도 예방하자는 아주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은 서럽다.

매일 혼자 먹는 밥도 서럽고, 변변치 못한 식사도 서럽다. 제대로 차려먹을라고 하면 나타나는 게으름도 서럽고, 행여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그 조차 즐기지 않고 허겁지겁 일 마냥 처리해 보이는 내 모습도 처량하다. 혼자 먹기 아쉬워 유리에게 좀 나눠주면 마치 설거지까지 내가 하라는 듯 빈 접시를 그대로 식탁에 놔두는 모습도 서럽고, 그 모습에 아무 말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내 모습도 서럽다. 밥 먹는 이 한 가지의 일에 서러움이 넘처나는 내 모습도 서럽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음이 슬프거나 적적할 순 있어도 서러움은 피해야 한다. 서러움은 너무 쉽게 마음을 약함에 굴복시키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서러움은 이렇게 혼자 적는 글에서 조금 내비취지만, 이러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역시나 나는 엄살이 심한 사람이라 생각할 그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폭풍우 속에서 살아간다. 아무런 바람도 비도 내리지 않는 그런 폭풍우다. 우산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온전히 지나갈 뿐이다.

엄살 가득 부리고 싶다. 난 막내니까. 나이가 30이 넘었어도 엄마는 항상 나를 내 새끼로 부르실 테니까. 그 무릎베개 삼아 엄살 부리는 마음 어디 가지 못해서 푸념 가득 찬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는다. 그래도 이 폭풍우는 온전히 지나가고 싶다.

비 온 후에 마주한 햇살이 감사하고 추위 뒤에 마주하는 따뜻함이 감사하고, 목마른 후 마신 물이 달콤하고, 시장이 반찬이고, 베를린 시장은 미하엘 뮐러.

아직도 철이 덜 든 나는,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감사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만 생각하는데, 이 폭풍우가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그 시간이 지금 온전히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내 작은 것엔 감사하지 못하겠지만.

10만 명이 부쩍 넘은 독일의 코로나 감염자수. 그 폭풍의 핵 가운데 살아가는 한 없이 조용한 하루하루.

아직 나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건만, 왜 내 마음은 병 걸린 사람처럼 서서히 나약해져 가는지. 혹시 아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마음의 코로나 바이러스라도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너머 마주하는 얼굴들, 스피커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I am fine. It is all good.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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