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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돌아와 보는 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5일 차, 20200411

어제부터 시작된 부활절 휴일. 사실 재미있는 계획을 가득 세워뒀던 기간이다. 

아버지를 독일로 초대하여 같이 독일 시골을 여행하며, 따뜻한 유럽 봄 햇살을 느끼고

가족처럼 느끼는 친구들을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허전할 틈, 심심할 틈 하나 없이 몸을 혹사시킬 준비로 가득 설레던 그 시간이다.

그 시간이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아직 난 좁은 방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밖에는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이 좋은 날씨를 즐기며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방 안에만 갇혀 있는 나를 비웃듯이 다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득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밖에 나가서 날씨를 즐겼을까.

괜스레 나약한 내 마음이 코로나를 핑계 삼아 본래 통회하는 내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며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코로나 때문에 이런 상황에 갇혀 있다는 피해자적 망상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랜만에 읽은 윤동주 시인의 글이 피해자적 내 망상에 무거운 위로를 내린다.



돌아와 보는 밤 -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의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당시 어두웠던 시대상을 생각하면 내가 겪는 개인적인 어두움 그리고 코로나가 창궐하는 상황과 비교가 안 되겠지만 글이 주는 공감은 시대를 뛰어넘어 표현력 없는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해가 진 밤만 어두움이 아니고 내리는 비만 비가 아니기에, 

울분으로 가득 젖어 들어오는 방 안에서 위로할 존재 없어 조용히 눈 감아 스스로를 포옹하면

그제야 조금씩 익어 오르는 사상, 그래봤자 능금밖에 되지 않는다. 능금이 뭔지 다들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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