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9일 차, 20200415
서러움이 너를 잡아먹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그렇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가지 사항은 지켜야 한다.
밥 먹을 힘이 없어도 뭐라도 먹기
춥게 하지 않기
잠이 오지 않더라도 잠을 자기
긴장감에 하루 종일 사로잡혀 지냈다. 괜스레 이 공간에서 보냈던 좋은 추억들이 잔뜩 생각나서 나의 선택을 의심하게 하고,
꼭 떠날 때에는 지금 이 공간이 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차량을 이용할 때면 무사히 차량을 주차할 공간이 생길지 조마조마 마음 졸이고.
초행 운전길 별일 없을지 괜스레 걱정. 차량 대여할 때마다 찾아오는 무보험의 압박. 독일의 낯선 교통체계에 외제차로만 가득 찬 도로들.
이 모든 긴장감을 통틀어 이사 전 증후군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이 증후군은 이사 당일이면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예를 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파서 기력이 떨어짐을 느끼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등. 잔뜩 쌓아둔 짐들을 보면 언제 다 푸나 싶을 정도로 앞이 막막해지거나. 혹은 낯선 공간의 내 모습조차 낯설어 새로 적응할 나날들이 막막하다는 것. 그럴 때면 아무리 좁고 답답해도, 그냥 그 물침대 같은 침대에서 부대끼며 지내고 싶기도.
대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오묘한 이 기분은 친숙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좀 나아질까. 형과, 아빠와, 그리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다들 한국에 있는 사람이라서 비로소 혼자 있게 되는 밤 시간은 괜스레 두렵다. 근데 이미 밤이니, 뭘 좀 먹어야겠구나.
잔뜩 쌓인 짐 앞에서 허기짐은 없지만 기력이 빠짐을 느껴서 식사를 생각하는 내 모습이 잠깐 처량하게 느끼다가도, 밥까지 제대로 못 먹으면 더욱 처량해질까 봐 부지런하게 나를 부엌으로 몰고 간다.
낯선 주방에서 낯설게 끓이는 라면. 익숙한 맛이 오랜만이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먹음으로써 얻는 서럽지 않음으로 위안을 받는다.
낮에는 좋은 햇살 핑계 삼아 아직도 낯선 이 도시의 더욱 낯선 동네를 정처 없이 걸었다. 예전 살던 곳에 비하면
주거지역이라 더 조용하고, 더 푸르르고 주변 슈퍼마켓도 더 가깝다. 심지어 중동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채로운 음식점과 식료품점도 있다.
그렇게 나가고 싶던 그 좁아터진 방에 비하면 새 방은 궁궐 같은 방이지만 내 마음속 무언가 불만 가득한 것은
눈동자 하나 비추지 않는 선글라스를 끼고 배추도사의 시래기 버전 같은 느낌으로 등장하신 집주인아줌마의 까탈스러움 때문인지,
필요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방에 무엇 하나 어울리는 가구가 없어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커진 침대지만 내 갈비인지 침대 갈비인지 헷갈리게 하는 얇은 매트리스 때문인지,
아마도 잔뜩 싼 이 짐들을 풀기엔 지금 이 공간은 아직 아니라는 사실 때문은 아닌지.
4월 중순이 넘었어도 군용 깔깔이를 껴입고 애써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