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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안녕, 아픔 가득했던 Friedrichshain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8일 차, 20200414

오늘도 오후 5시쯤 밖으로 나선다. 햇살의 빛깔이 조금씩 애기 오줌 같은 노란 기운을 갖기 시작하는 때이다.

햇살만 보고 반팔에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피부가 얼얼할 만큼 추위를 느꼈다. 오늘은 어제에 더불어 검은 집업 후드를 끼어 입고 나간다. 

역시나 평상시를 방불케 하는 인파다. 나름 퇴근시간이라고 그런 것인지 차 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오른쪽에서 비취는 오줌 햇살을 받으며 노오란 우체국 앞에 거리를 두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어제 오랜만에 걸은 탓인지 종아리가 땅긴다. 몇 개나 되는 계단인지는 모르지만, 베를린에 지내는 동안 처음으로 계단 언덕을 올랐다.

오늘도 햇살을 왼손에 잡고 어제 계단 오른 그 공원으로 향한다. 이런 장소도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한다.

쫄쫄이를 입고 열심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독일 사람들이 보인다. 예전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진들이 도전을 할 때면 꼭 저런 쫄쫄이를 입고 나왔다.

천천히 오르는데 얼마 안 있어 숨이 가쁘다. 낯설다. 마지막으로 숨이 가빠본 게 언제인가. 즐겁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무르익은 봄기운이 그 노오란 초록빛을 잔뜩 휘날린다. 

요즘 뉴스에서 종종 읽는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드니 자연의 일부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언젠가 다시 그 환경 운동가들이 나와서 역시 인간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고 열심히 활동을 해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토록 연약해 보이는 얇은 줄기가 국적 가리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 뚫어가며 전 세계에 봄을 증거 한다.


인간의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봄을 바라본다.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매일매일 자판을 눌러가면 끄적거리는 의미 없는 일기이기에 감히 허락되는 싸구려 사상에 휘감겨서 회상하는 그때의 빛깔은

초록조차 물들이는 강한 금빛을 뚫고 나오는 어린 새싹의 초록빛이 마치 저 강렬한 햇살과 싸우듯 용호상박의 스파클.

그 기운 느끼는 누군가는 생명력에 감화되어 말을 잃고 다리만 후들후들, 호흡만 씁씁후후.


집에 오는 길 문뜩 생각해 보니, 이제 행여 이 산책길도 마지막이겠거니.

단 두 번의 여정에서 얻은 뜻밖의 생명에,

내가 살다 살다 이 동네에서 교훈을 얻는구나 참. 안녕, 아픔 가득했던 Friedrichsh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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