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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지금의 시간까지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30일 차, 20200416

매일을 살다 보니 30회가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적었더니 30회가 되었다. 사실 이 글의 모티브는 안네의 일기였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상황에 매일매일 기록을 남겨 훗날 누군가라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몇 년만 지나도 이 기록들이 지금보다 더욱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하루의 글들이 30회를 넘어간다. 


어제는 독일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조치 관련 새로운 발표를 했다. 최소 5월 3일까지는 현재의 봉쇄 조치가 이어진다고 한다.

다음 주부터 일정 크기 이하의 가게들은 영업을 허용하는 등 점차적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매일 2000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태를 보고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00명이다. 2000명은 지난 몇 주의 증가폭에 비하면 줄어든 수는 분명하지만 무언가 께름칙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50명 이하의 확진자를 보여도 긴장을 늦추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는데 2000명의 확진자를 내는 상황에서 학교 개학을 운운하는 독일이라니. 분명 독일의 훌륭하신 의사 박사 등등 사자 달린 분들이 깊이 고뇌하고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겠지만 서도, 그냥 내 느낌은 그 상황에 좋게 반응하진 않는다. 

사실 밖에만 나가봐도 코로나로 움츠린 분위기라기보단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한 휴식 기간으로 보인다. 

드물게 보이는 마스크 한 사람들. 피부를 부대끼며 운동하는 사람들. 물고 빠는 연인들. 생지옥 난리 부르스를 매일 통과하는 우리들, 그리고 나. 


서 있는 곳이 바뀌면 보이는 것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분명 예전에 살던 집보다 안 좋은 점도 새로 이사한 집이 갖고 있건만, 그 답답했던 공간에서 숨 막히게 튀어나오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신기하게도 어제 새 공간에 들어온 이후에 깊이가 얕아졌다. 

설렘도, 걱정도, 불안도, 기쁨도 아닌 오묘한 감정이 어제부터 나를 계속 휘감는데, 임시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짐도 다 풀지 않은 내 모습에 견주어,

계속 이렇게 살아가기엔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같이 떠올라서 마음이 붕 떠있는 상태이다.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이 상황의 불편함은 내 친구 페루산 유리를 떠오르게 한다. 


매일을 살다 보니 독일에 온 지 3년이 되어간다. 매일매일을 살다 보니 군 제대도 10년이 넘었고, 그렇게 매일을 살다 보니 30년도 더 살고 있다. 

이렇게 허락된 시간 안에 매일을 살다 보면, 언젠간 나도 엄마의 나이를 지나 아빠의 나이까지 닿을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큰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이사 하나로 인해 오만가지 생각으로 열량이 소모되는 나를 보면 그렇다. 

매일이 아슬아슬하다. 정처 없이 떠도는 종이배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딘가에 던져져 맥락 없이 일을 시작하고 그렇게 정처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나 반추하며 반성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혹은 계획대로 하루를 보내고서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더라도

알 수 없는 힘으로 마음이 부러지고 나면 눈을 뜨기조차 어려운 하루가 시작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간까지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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