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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5. 2024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한 이 무시가 차라리 낫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47일 차, 20200503

최근 독일에서 코로나로 인한 인종차별을 당한 한국 교민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운이 좋게도 아직 나는 그러한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듯 한 인종차별 사례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해 본다.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상황과, 나를 싫어함을 티 내면서 나를 놀리고 화내는 상황. 

어떤 상황이 더 기분 나쁘고 마음 상할지. 그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무시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악의 대응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인종차별 사례에서는 이런 생각이 강하게 부정받는다. 

나를 싫어하는 그 누군가가 동양인을 혐오하는 사람인 경우 그 혐오를 나에게 표현한 경우와 그 혐오로 인해 나를 무시하는 경우. 

대중교통에서 마주하는 그 사람은 추후 내가 마주치지 않아도 될 사람이기에 나를 무시하는 처사는 부작위이기에 작위인 혐오표시보다 상처를 덜 줄듯 하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그렇지 않다.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격하게 표현하며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심지어는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한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겪지 않은 사람이 주는 위로 따위가 들릴 리 만무하다. 


무시. 그동안 참으로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한 이 무시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전 간절하게 기다리던 연락이 오지 않아서 마음 졸이고 손 졸이며 연락을 보냈는데 무시당했다. 

도저히 무시당할만한 상황도 아니고 나를 무시할만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항을 마주하니 상심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더라도 단호하게 거절 의사라도 표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마음을 정리하는데 한 결 수월했을 텐데. (이별, 연애 그런 일 아닙니다.) 


아직 난 너무 무르다.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서, 선한 뜻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독일 와서 배운 제일 큰 교훈은,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며, 때로는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더라도 그렇다는 것. 

그래도 갖고 있던 겨자씨 만한 희망, 내가 선하게 대하면 남도 선하게 대할 것이다, 은 아직도 살아남아서 

인종차별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무시를 당하는 상황이 덤덤하지 않다. 사람은 선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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