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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9. 2024

37.5도의 온기가 왔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52일 차, 20200508

5월 7일 저녁 11시 한국, 인천

그녀는 텅 빈 인천 공항 2 터미널의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화물을 맡기고 한적한 보안수색대를 지나 탑승 게이트로 간다.

아직 비행기 탑승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미리 가서 대기를 한다.

3월 중순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럽발 비행기가 연달아 취소된 이후 2달의 기다림 끝에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독일로 입국하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린다

는 소식을 전화기 너머로 전해 듣는 나는 독일 베를린에서 5월 7일 오후 4시 즈음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5월 8일 새벽 5시 독일, 베를린

인천발 비행기가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시간에 잠이 깼다.


비행기는 얼마나 한적했을지, 혹시나 몸이 안 좋은 사람은 타지 않았을지, 음식은 잘 나왔는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른 불편한 점은 없었을지, 공항에 도착해서 환승 구간은 잘 지나고 있을지, 유럽 입국 수속은 무사히 마쳤을지 등 오만가지 걱정에 잠을 더 청하려 해도 쿵쾅거리는 심장이 허락하지 않는다.

도착을 했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연락이 와 있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차분히 나갈 준비를 한다.

전화가 왔다. 입국 심사도 잘 마치고 지금 환승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천만다행이다. 9부 능선은 넘은 듯하다.


5월 8일 아침 8시 독일, 베를린

미리 나와서 기차를 기다린다. 생각보다 많은 기차 탑승객에 놀란다. 화창한 날씨가 우리의 만남을 반겨주는 듯하다. 설렌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애써 침착하게 스스로를 부여잡지만 설레는 마음은 목 줄 풀린 개처럼 이리저리 마음속을 뛰어다닌다.


5월 8일 오전 11시 30분 독일, 함부르크

함부르크 공항 입국장. 아무도 없다. 혼자 입국장을 빠져나갈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 얼마나 쓸쓸할지 가늠이 안된다.

내가 있음으로 텅 빈 입국장이 우리만의 재회를 위한 특별한 장소가 된다. 비행기가 착륙했다는 알림이 나온다.


5월 8일 오전 11시 50분 독일, 함부르크

그녀가 나온다. 바로 나를 알아보고 달려온다. 품에 가득 안는다.

37.5도의 온기가 왔다. 17시간을 넘어, 8,500 km를 건너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건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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