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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9. 2024

다행이다. 날씨가 좋아서.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53일 차, 20200509

다행이다. 날씨가 좋아서.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을 감히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2018년 가을, 나 자신에게 떠밀려 쫓겨나듯 독일로 출국하던 그때.

전화 너머 들리는 무심한 아빠의 한 마디

“그래 수고 많이 했다. 무사히 가거라.”

그 깊이를 감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 한마디가 전달한 울림이 귀를 타고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눈가로 흘러와한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홀로 계실 아버지의 모습. 지난 한 달 집에 남겨진 나의 흔적. 태연한 척 무던한 척 일상을 보내실 아버지. 그리움 티 내지도 못한 채로

그냥 무사히 가라는 그 인사로 마음의 일부를 묻혀내며 언제 다시 보자는 기약 없이 아들을 보내는 그 마음의 깊이가 아주 조금은 느껴졌기에.


딸을 홀로 독일 땅으로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부모님을 남기고 홀로 독일로 오는 딸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고마움과 걱정과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이 뒤엉켜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가득 흘리고

떨어져 있어도 딸이 같이 있는 것처럼 꿋꿋하게 지내야지,

그리고 엄마 걱정 안 하게 밝고 건강하게 지내야지, 서로에 대한 굳은 다짐을 하진 않았을까.


다행이다. 날씨가 좋아서.

챙겨주신 한국 과자 하나 뜯어먹고, 건강식품 챙겨 먹고, 챙겨주신 그릇에 음식 담아먹는데

보이지 않는 부모님 손길 느껴진다.

한국에서 보내신 부모님의 따뜻하고 포근한 그 마음

머나먼 타국 독일 땅에 햇살에 담겨 내려온다.


햇살이 따뜻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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