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57일 차, 20200513
아직 집에 아무런 가구도, 물건도, 인터넷도 없다. 물론 침대도 없다. 이불도. 아무것도.
그래서 어제 열쇠를 받고도 새 집에서 자지 못하고 헌 집으로 왔다.
그 병맛 맛집 그곳으로.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 분은 꽤 섬세하고 예민하셔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시는 듯하다.
내 성격 탓이지만, 행여나 불편하게 할까 봐 하루빨리 새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
햇빛 가득한 새 집으로.
침대와 매트리스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나머지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이케아로 향한다.
설렌다. 항상 얹혀살기만 해서 제대로 된 가구 하나 구비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의 가구만 사용해 왔는데,
비록 싸구려로 보일 수 있는 이케아 가구지만 선택할 수 있고, 채워나갈 수 있고, 언제 방을 뺄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정감의 부재는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해외 생활이 주는,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근간을 흔드는 어려움인지 공감할 수 없는, 그런 큰 고충 중에 하나인데
그 굴레에서 벗어나,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오후 내내 이케아를 돌아다니고 가구를 봐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지치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가구를 골라나가고,
내 의견보다는 여자친구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나를 눌러간다.
어떤 가구를 고르던 난 잘 적응해 나가겠지만, 여자친구의 마음이 좋지 않다면 난 잘 지내지 못할 것이기에.
까다로우면 까다로운 대로 고맙고, 원만하면 원만한 대로 고맙다.
바닥에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이불만 깔고 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행여나 올린 에어 매트리스 글에 한 독일 친구가 답장을 한다.
비록 아직 근사한 침대와 매트리스는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