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릐 Mar 08. 2024

우리의 일상에서 예민함을 자랑하지 못할 자 누구일까.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64일차, 20200520

지난밤 이케아에서 산 옷장을 우여곡절 끝에 만들었다.

연장이 부족해서 망치 대신 손을 쓰고 렌치 대신 손을 쓰고 니퍼 대신에 장갑을 쓰면서 5시간 정도 걸쳐 옷장을 완성했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옷장처럼 빈 방도 조금씩 완성돼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뿌듯하다.

최근 며칠 잘 씻지도 못하고 짐을 나르고 조립하고 옮기고 청소하며 지냈는데 예전만 한 체력이 아닌지 금방 피로감이 쌓인다.


어제 옷장 조립의 여파인지 오늘은 특히나 더 몸이 찌뿌둥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

더불어 예민해진 마음도 부정할 수 없지만 쉽사리 꺼내 보이지는 않는다.

어릴 적 생각하기로 나이가 30이 넘으면 아저씨로 간주했고 완전한 성인이라 생각했지만,

그 나이를 넘어선 내가 몸이 힘들고 지친다고 예민하게 투정 부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로 한심하다.

이 또한 남의 시선을 인식하는 처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선다. 정말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지친 몸과 마음에 막상 나가려니 조금은 귀찮은 마음도 생긴다.

간사한 새끼. 이렇게 시간일 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던 몇 달의 시간을 건너 이제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감히 나의 하찮은 육체에 져서 귀찮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 정말로 이런 간사한 새끼.

그렇게 뭉그적 거리다가 결국 약속시간에 늦어버렸다.


귀중한 시간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여 미안한 마음이 상당했고,

그 귀중한 시간을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가질 수 있는 대화 자리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얼마나 그리워하며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던 사람들인가.


각자가 매일 각자의 전쟁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전쟁에서의 피로와 상처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예민함을 자랑하지 못할 자 누구일까.

성숙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민해진 마음을 인정하고 붙든다는 것 혹은 예민함이 무뎌지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반갑게 문을 여는데 경찰이 서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