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마저 실패
'내부 심사 결과 대출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받아본 메시지다. 카페를 옮긴 지 2주년이 채 되지 않은 오늘도 은행별, 카드회사별로 모조리 대출 신청을 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서민금융지원 분야마저도 최종 탈락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담담하다. 암담하다는 게 더 정확한가. 내 눈앞은 암흑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시골에서 경차를 사기 위해 소액으로 대출한 것 외에는 도시 카페를 준비하면서 거의 처음 겪은 일이이니까.
우선 가게에 있던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했다. 저금리로 실행하기 위해 지역보증재단을 통해 알아보았다. 사업자로는 첫 대출이고 신용도 또한 훌륭해서 바로 수락되었다. 그래도 퍽 모자란 금액은 모바일 은행 사업자 대출로 충당했다.
다음으로는 리모델링 비용이 필요했다. 나름대로 아빠를 잘 설득했다고 착각하면서 내가 매달 이자를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부탁드렸다.
아빠는 자동차정비사다. 현재 50년 경력이 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동차정비를 전공하면서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셨다. 지방의 큰 기업부터 작은 회사까지 정비 관련 일을 쭉 해오셨다. 내가 초등학생 4학년이었던 때 어떤 기념일도 아닌 것 같은데 각지에 살던 친척이 모두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 같이 가게에 가서 축하를 하신다고.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와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아마 복잡하기도 했고 시험공부 핑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이 지나고서 현상된 사진으로 정확하게 알아챘다. 아빠가 카센터를 열었다는 걸.
아빠는 운영 중간에 동업을 하기도 했고 직원을 둔 적도 있다. 둘 다 불가피했던 시점에는 막 운전면허를 딴 엄마가 가게 일을 도왔다. 주로 그때그때 필요한 부품을 도매상사에 찾아가 사 오는 업무였다. 자동차 정비는 어떤 부품이 필요할지 예측할 수 없어 고장 난 차를 살펴본 뒤에 적합한 대상을 주문해야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퀵배달이 없었던 터라 아빠 혼자서 모든 일을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마침 엄마도 일을 쉬던 때여서 가능했다.
엄마의 역할은 부품 구매에 그치지 않았다. 손님에게 떼인 돈을 돌려받으러 늦은 밤 시골집을 찾아가야 했거나 가게 주변에 주차된 차량을 마구잡이로 단속하는 불량한 단속업자의 기세도 눌러야 했다. 온갖 장비와 부품으로 복잡해진 정비소 안을 다니며 청소도 했는데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저분한 가게와 아빠를 동일시해서 함부로 대할까 봐 방지하는 차원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빠에게 쏘아대는 엄마의 잔소리 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몸을 쓰는 일이라 위험한 고비도 수차례 있었지만 일해온 시간을 떠올리던 아빠는 가끔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 있었다. "가게 일로 너네 공부시키고 서울 보내고 밥 먹고 살았다"라고.
하나 더 보태야 한다. 아빠 가게 덕분에 나의 도시 카페는 버티고 있다고.
오늘도 대출에 실패한 나는 가족 걱정거리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출 하나로 카페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당장의 한 달, 아니 일주일이라도 견디려면 늘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대출은 곧 빚의 늪인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발버둥 쳐서라도 건너야 한다. 나를 향한 가족의 걱정이 아픔으로 번지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