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위로 Mar 17. 2019

더 울분 오브 꾼 스트리트

영화 <돈>

출처 : 영화 <돈>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돈>을 만나보고 왔습니다. 소재는 주식 브로커가 철저하게 완벽한 딜러를 만나며 타락하는 과정이네요. 요즘 영화들 중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데, 사실 소재에 대한 원초적 궁금증보다는 '활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서 극장을 찾았습니다. 감독으로써는 데뷔작인 박누리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김재영 배우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중간중간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구요.


<돈>의 포커스는 탐닉과 타락 그 어디쯤에 맞춰져 있습니다. 애초에 조일현의 성격과 숨겨진 욕망도 그 방향으로 설정했죠. 하지만 그 때문에 방향성을 제대로 찾았다는 장점을 가짐과 동시에 큰 단점을 안고 영화를 이끌게 되고요. 일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타락을 그린 장면들은 어디까지나 일차원적인(술, 담배, 술, 담배..) 표현에 그치고 더이상 나아가질 못합니다. 그러니 우정, 사랑, 가족애 등 쓸만한 소재들도 잔뜩 안았지만 어느 하나 매듭지은 게 없게 되죠.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나 어디 하나 허점 없는 곳이 없습니다.


캐릭터조차도 흔들립니다. 애초에 잘 만든 캐릭터였던 '일현'도 그저 내뱉고 저지르고 보는 사고뭉치가 되어 버렸고, 번호표의 개성은 버려진 지 오래입니다. 일명 '사냥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금감원 직원은 그냥 뛰고 잡는 형사가 되고 말죠. 배우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완벽히 장악했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자신의 손에 쥔 것의 능력을 모르는 듯 일단 치고 받고 뛰고 잡고 판을 대충 벌려놓고 손을 뗍니다.


일현은 초짜 주식 브로커보다는 <국가부도의 날>의 윤정학에 가깝고, 번호표의 배우 유지태의 캐릭터는 <꾼>의 성향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사실 전형적인 것이 제일 낫다(구관이 명관)고들 하지만, <돈>은 거기에서 일보 후퇴했습니다. 범죄는 있지만 피해자나 그에 대한 깊은 설명은 없고, 그렇다고 주제인 돈에 대한 성찰과 회한이 있는 것도 아니죠. 주인공의 타락도, 주위 사람들의 희생도 극을 최소한의 동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에 불과합니다. 결말이 지나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게 통쾌한가 등 허망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재미와 개성이 전무합니다. 영화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를 넘어 그냥 공장서 찍어낸 영화의 수준조차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개성없는 플롯의 연속과 상업영화의 모순이 연계되면서 최악의 시너지를 내고,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만 고통 속에 115분을 보냅니다. 빠른 템포와 트렌디한 편집을 겉치장하듯 뿌려대지만 결국(그나마 가장 쉽게 할 수 있었을) 통쾌함과 시원함조차 형성하지 못한 채 찜찜하게 막을 내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르마의 쏘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