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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위로 Mar 24. 2019

신뢰 대신 맹신

영화 <우상>

출처 : 영화 <우상>

<어쩌다 결혼>으로 한차례 큰 위기(?)를 겪었던 CGV 아트하우스의 신작, <우상>입니다. 설경구, 한석규, 천우희 배우 등 베테랑 배우들이 스릴러라는 장르에 다같이 출연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상당히 강렬했던 영화 <한공주>로 단숨에 무서운 신예로 떠오른 이수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대단한 명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대받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초반은 예상 외의 명료함을 보이다가, 중반부터는 영화가 어려워지고 쓸데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애초에 인물의 행동과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딕션 또한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이죠. 분명 상황과 표정을 봐서는 중요한 부분인데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으니 진행이 되질 않고,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것들을 풀어놓고 늘어놓지만 무엇 하나 이해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세, 어떻게 보면 괴리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사건과 캐릭터들은 숭배의 대상인 '우상'의 탄생을 향해 전력을 다합니다. 수많은 희생과 악, 사건과 해석이 따르지만 결국 하나의 우상, 그 탄생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죠. 자극의 전시와 쓸데없이 돌아가는 스토리라인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술수입니다. 더 멋을 내고 힘을 주기 위해 쌓은 것들이지만 가끔 영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요. 사건과 사건 사이 연결고리의 엉성함이 극에 달할 때쯤 캐릭터들은 역할을 마치고 퇴장하는데, 캐릭터들의 퇴장 또한 죽음 혹은 사고, 사건으로 이루어집니다. 질질 끌지 않는 퇴장이지만, 명료한 퇴장도 아닙니다.


이렇게 수많은 단점들을 늘어놓았지만, 영화의 집중력과 흡입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로와도 같은 플롯 속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하고, 연출은 또다른 강렬한 매력을 만들죠. 시종일관 부각시켰던 차가운 분위기를 끝까지 가져간 것도 칭찬할 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영화의 요소들 중 머리에 남는 것은 유혈 장면들 뿐이네요. 그런 종류의 장면들을 너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보여 준 탓일까요.


영화가 파국을 향해 달려갈 동안 청각적 자극과 시각적 자극을 전부 뿌려댑니다. 처음부터 예견되었다는 듯 당당하게 결말을 나타낼 즈음에 아무 반론도 할 수 없게 말이죠. 인간의 내면과 '우상'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기보다 영상물의 힘에 집중한 탓에 호불호도 심하게 갈리고, 사건사고에 따른 해석들도 분분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관람하기조차 괴롭고, 파헤치기는 힘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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