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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위로 Feb 10. 2019

처절한 암투의 끝에서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출처 :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입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올리비아 콜맨,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도 이름을 올렸군요. 처음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일 것 같던 영화였어요. 시대극인데 질투를 주제로 하는 영화라니. 신기하면서도 신박했고, 우려도 되었지만 기대가 더 컸습니다.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덕일지도요)


한 마다로,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참으로 당당한 영화입니다. 줄거리에 자신이 없어 에둘러 표현하지도 않고, 연출에 자신이 없어 정면만 응시하지도 않습니다. 정해진 플롯을 따라 똑바로 걸어갑니다. 게다가 연출은 기대 이상(!)입니다. 하나만 꼽자면 여왕과 사라가 함께 지나오던 통로에 여왕이 혼자 있을 때, 드리워진 어둠에 대한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상황과 연출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영화는 유머까지 겸비합니다. 시대극인데다 궁에서의 암투를 그린 터라 유머라 해도 별 것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과하지 않은 유머코드를 이야기에 잘 녹여냈습니다. 대놓고 유머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피식 할 만큼의 장치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마치 여러 장르와 시대극을 섞어 놓아, 퓨전의 느낌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재미도 있고 묵직함도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의 여러 장치들이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 영화를 논하려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연기'입니다. 다른 주조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저는 콜맨의 연기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혼란스러운 눈빛, 당당한 눈빛 등 눈빛 연기는 물론 동작 하나하나까지 여왕과 어울립니다. 여러 비극을 겪었던 히스테리 여왕을 연기하기가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도 놀랍게 잘 표현했습니다. <더 페이버릿>의 작품적 성공에는 연기의 힘이 5할입니다.


두 사람을 자신의 도구라고 생각한 여왕. 하지만 여왕을 도구로 생각하고 접근했던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암투와 두뇌 싸움. '그들을 믿을까 말까'라는 자주적이고 독단적인 선택권을 손에 쥐었다 생각했지만 여왕은 결국 누군가를 선택해도 꼭두각시가 될 노릇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엔딩으로 향할수록 여왕과 하녀, 사라의 민낯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죠. 그리고 어느새 여왕의 시선으로 시작했던 영화를 하녀의 권력이 장악해버립니다. 한낱 하녀에서 시작된 그녀는 여왕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알게 되어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단정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초반에는 캐릭터의 선과 악이 분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정황이 사실인지조차 헷갈리게 됩니다. 이토록 영화에는 엔딩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존재하지만, 예술영화들 중에서는 훨씬 대중적인 블랙코미디입니다. 예술영화들 중에서 '재미'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었던 요즘 영화계에서, 조금의 단비(?)가 내린 듯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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