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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위로 Feb 20. 2019

신은 죽었는가?

영화 <사바하>

출처 : 영화 <사바하>

2015년 <검은 사제들>로 한국 미스터리 장르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입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종교'가 소재가 되었고,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사람들도 이름은 알 듯한 명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네요. 영화 제목에는 '여섯 번째 손가락'이라는 의미심장한 부제도 붙었습니다. 예고편 또한 생각보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였기에, 어쩌면 <검은 사제들>보다는 과격하고, <곡성>보다는 소극적인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기대와는 다른(?) 음침하고 서늘한 분위기에 살짝 놀라기도 했구요.


영화는 사슴동산이라는 의문의 단체를 찾은 박목사가 그 집단과 그들이 모시는 사천지왕의 비밀에 천천히 접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종교와 신에 관한 설명과 가설도 신비하게 풀어내는데, 기존의 미스터리 장르와는 다른 매력이 존재합니다. 인물에 자세한 부연설명이나 개성은 거의 없지만 상황과 인물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단서가 모이기 시작하죠. 자동차, 사슴, 코끼리 등 많은 주체들이 등장하고 그 표현도 포괄적이고 광역적입니다. 확실히, 소재를 이용하는 부분에서는 <검은 사제들>보다 뛰어난 면이 많습니다.


음악의 활용도 돋보입니다. 경전을 빠른 속도로 외는 효과를 줌으로써 긴장감과 압박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나타나죠.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 주전자에서 김이 새는 소리 등도 음향효과에 이용되며 영화의 이점이 됩니다. 물론 동시에 중요하지 않은 장면을 과장하는 역할도 하고요. 미스터리 영화가 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을 동력 삼아 영화의 스릴러적 재미를 이끌어냈습니다.


물론 '신'과 불멸의 존재를 다룸으로써 영화의 모든 행동의 의미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총에 맞아도 어떻게든 살아 있고, 그만큼의 야망과 잔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유독 박목사에게는 친절하고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안이한 부분들이지만, 이 모든 것을 '미륵의 보살핌 덕분' '미륵의 뜻'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있습니다. 참으로 뻔뻔하지만 너무 당당하고 나름의 이유도 있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여기부터 스포일러가 난무합니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 인물적 측면의 해석, 그리고 상징적 의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사바하>는 포괄적이고 많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정황과 사건들은 연쇄적이고 결말에 마침내 끝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 대한'분명한' 해석이 필요한 영화이죠.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가?' '신은 어찌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가' '악은 어찌 존재하는가?' 등의 원초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결국 신에 대한 선망이자 원망으로 귀결되는 영화입니다.


인물적 측면으로 보자면,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이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김제석의 네 명의 자식들부터, 금화의 언니까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인물은, 박목사입니다. 박목사는 제 3자입니다. 그 모든 사건을 수사하지만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그저 지켜보기만 하죠. 박목사가 사건을 지켜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영화에서의 신과 김제석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죠. 나름의 사연도 역사도 지니지 않은, 물욕에 찬 냉철한 박목사의 시선으로 우리는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김제석의 탄생 100년 후(그러니까 1999년) 태어나,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는 그 아이는 금화가 아닌 금화의 언니였습니다. 영화의 초중반에 괴물이자 악의 집결체로 표현되던 '그것'은 영화의 거의 끝이 되어서야 그 정체를 드러내죠. 그것은 다름 아닌 경지에 오른 존재였고, 마침내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나한의 내면을 바라보아 진정한 악의 존재를 깨닫게 해 줍니다. 나한이 총을 맞고도 불멸의 존재를 죽이려 하다 실패했을 때, '그것'은 그에게 의지와 도구를 건넵니다. 그리고 진정한 악의 존재는 멸하게 되죠. 마찬가지로 '그것'도 열반하게 됩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신의 존재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동생의 다리를 뜯어먹은 이유로 괴물이자 악으로 분류되었지만 중생들이 고통받을 때 같이 눈물 흘렸고, 마침내 악의 존재를 멸할 때에는 그 기회를 주었습니다. 마치 예수를 죽이려 2살 아래의 아이들을 모두 죽였듯이 99년생 금화도 위기에 처했을 때, 금화를 지키고자 했던 행동들이었죠. 나한이 동생을 죽이러 집에 찾아왔을 때도, 금화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금화의 언니의 힘으로 금화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신의 존재, 즉 '그것'의 행동에는 하나하나의 의미가 있었군요.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신과 인간은 이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인물과 사건에는 하나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져 있었구요. 캐릭터를 마구잡이로 소비하지 않고, 끝까지 같이 간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개척인 동시에 진척도 있는 영화네요. <검은 사제들>과 비슷한 장르라서 같은 쪽으로 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군요. 이 감독의 차기작이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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