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극장으로서 여의도의 가능성
여의도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의 썼던 글을 하나 찾게되었다. 이 글은 정림학생건축상에 1차로 제안했던 새로운 청와대에 대한 글이다.
정치적 극장으로서 도시적, 건축적 청와대
[ 초록 ]
수도는 국가를 표상하는 중추로서 정치적, 경제적 힘이 집중된 장소이다. 자본주의 이후의 현대 역사에서 경제가 정치보다 강력함이 자명한 사실이지만 수도로서 정치적 중심성 없이는 경제 또한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적 중심성은 다양한 견해와 의견을 표출하는 장소의 기반이 되며 그러한 장소는 정치적 극장으로서 기능한다. 정치적 극장은 각 주체간의 보고, 보이고,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를 시각적인 관계에 기반하여 표출하는 도시 공간이다. 이러한 개념에 입각하여 수도, 서울의 정치적 중심성을 강화하고자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가지는 제도 및 개념의 정치적 틀구조내에서 도시적, 건축적으로 표상할 방법을 탐구한다. 그것에 기반 하여 새로이 제안하는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는 제 기능의 수행과 여의도 국회지구와 여의도 광장 사이의 공간에 건축적 개입하여 각 주체의 정치적 특성을 발굴, 연결, 재구성하는 도시적 건축적 전략을 취하여 새로운 정치적 궤도를 구축하고자 한다.
[ 본문 ]
수도의 정치적 중심성과 청와대
‘수도’는 한 민족이 공동의 사회, 경제 생활을 영위하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동일한 문화와 전통적 심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인간 공동체인 민족국가의 거대한 복합체의 정치적, 경제적 중추로서 조직된 도시를 의미한다. 이는 국가를 표상하는 중추로서 정치적, 경제적 힘이 집중된 장소이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축적으로서 형성된 도시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이후의 현대 역사에서 경제가 정치보다 강력함이 자명한 사실이지만 수도로서 정치적 중심성 없이는 경제 또한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수도의 정치적 중심성은 다양한 견해와 의견을 표출하는 장소의 기반이 되며 그러한 장소는 ‘정치적 극장’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작동하고 있다. ‘정치적 극장’은 정치의 다양한 현상을 일종의 볼거리로서 시각적인 관계에 기반하여 보고, 보이고, 보여주는 인식의 행위를 보다 잘 수용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정치적 공간을 의미한다. 오늘날 하나의 정치 문화형식으로 자리잡은 촛불 시위와 같이 정치적 행위를 시각적으로 보이고 보여주면서 그들의 권력, 힘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과거 독재 정권에서도 시각적 선전도구 등을 통하여 그들의 정치적 행위를 행했음 또한 정치의 보고, 보이고, 보여주는 행위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례이다. 새로이 제안하는 우리동네, 청와대는 수도의 정치적 중심성이 작동하기 위한 기반 개념으로서 정치적 극장은 도시적, 건축적 차원으로 그 의미를 표상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정치적 극장으로서 우리동네, 청와대는 건물의 내재적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주체, 공간, 특성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배경이 될 것이다.
정치적 극장 개념의 제안 배경
정치적 극장의 개념은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입각해서 형성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아는 ‘—주의(ism)’와는 구별점이 있다. 자본주의(Capitalism), 현실주의(Realism) 등의 ‘—주의(ism)’는 모두 신념체계 내지는 이념체계를 지칭한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는 영어로도 ‘Democracy’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 Demos(민중)와 Kratia(권력)의 합성어이다. 즉, 민중권력이란 의미로 기존 왕 또는 귀족이 통치하던 것을 참정권이 있는 국민들에게 그 주도권이 있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와 헌법 제 1조 2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기반이 된다. 이는 주권 재민이 민주주의 근본원리에 해당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집단 혹은 전체에 주목하는 것과는 반대로 개인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즉, 자기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알고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고 그 의무를 충실히 다하겠다는 주권자로서의 각성과 의지를 가진 개인들이 이뤄내는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틀 구조 내에서 구상된 정치적 제도와 원칙을 구상한다. 이를 통해 사회내의 모순과 대립을 구조화하여 사회적 문제들을 표출함으로서 그것들을 통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갖는 핵심적 기능이다. 그런데 일련의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구축된 제도를 어떻게 도시적, 건축적으로 표상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그 간의 사회적 논의가 거의 전무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제안으로서 ‘정치적 극장’을 수도에 구축하고 그것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치적 집합체로서 마을을 형성해주는 것을 제안한다. ‘정치적 극장’을 수반하는 정치적 집합체로서 마을을 구성하기 위하여 청와대(행정부)와 국회의사당(입법부), 그리고 광장(국민의 정치적 자기표현의 장)이 갖는 도시의 새로운 정치적 궤도를 확립하고자 한다. 도시적 맥락, 상징성, 역사, 기존의 시설 등을 고려했을 때 현재 수도로서 서울에서 이에 적합한 장소는 여의도이다.
여의도의 정치사회학적 지형
현재의 여의도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적 고성장 정책으로 인해 발생된 여러 가지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한 부도심이다. 도시계획 당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김수근, 김석철 등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여의도 및 한강연안개발계획]을 제안하여 도시 계획을 진행하였다. 당시 보고서에는 선형도시 개발 계획과 입체 보행도시 등의 주요 개념과 함께 국회지구, 공관지구, 대법원 지구, 시청 지구 등의 행정, 특별 지역을 설정하여 서울의 경제적인 요인 고려와 함께 정치적 중심성을 기본으로 여의도의 개발 방향성을 설정했다. 하지만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일방적인 요구로 인해 폭 300m, 길이 1.2Km의 광장이 만들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정치적 논리의 개입에 의해 개발 계획의 본 의도가 변질되고 만다. 하지만 지금의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표상되는 국회지구(국회의원회관, 국회도서관, 국회의정관 등)가 있다. 또한 각 종 국민 동원행사와 군사 행진의 목적으로 조성하여 박정희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된 옛 5.16광장 이었던 여의도 공원이 존재하고 있다. 국회지구와 가까운 새로운 ‘우리동네, 청와대’에는 행정부와 의회가 각 사안에 대해 보다 긴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갖춰진다. 또한 시각적 연계를 통하여 삼권분립에 입각한 제도적 상징을 재인지, 상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여의도 광장의 경우 군사정권의 역사를 희석하고 사용권한의 폭을 넓히고자 지금의 공원 형태로 변경되었다. 지난 광화문 광장에서의 촛불 시위 내지는 혁명에 보았듯이 광장은 정치적 표현의 장으로서 기능을 부여하고 주권자들이 언제든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고 그들의 주권을 행사하는 장이다. 이러한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정치적 극장으로서 광장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는 존재하고 있는 장소들에 개입하여 각 장소의 정치적 특성을 발굴, 연결, 재구성하는 도시적, 건축적 전략을 취한다. 이에 기존의 KBS 본관을 제외한 신관, KBS홀, 연구동 아파트의 장소에 새로운 우리동네 청와대를 위한 마스터 플랜을 구상한다. 기존 본관의 경우 여의도 광장과 면하여 있는 위치적 특성을 활용하여 그 기능을 정치적 극장에 입각한 프로그램으로 변경한다. 그 이외의 KBS 시설들은 기존 방송국들이 도심을 벗어나 전체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새로운 사옥을 건설하는 추세를 따라 새로운 사옥으로 이전하는 것을 전제한다.
제도적 산책로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는 국회지구과 여의도 광장의 사이에 입지한다. 이로 인해 입지 내의 계획 뿐만이 아니라 국회지구와 새로운 청와대의 경계와 여의도 광장과 새로운 청와대 그리고 KBS본관 건물간의 관계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존재하여야 한다. 기존의 윤중로에 둘러 쌓인 국회지구는 윤중로와 더 많은 결절점을 형성하여 내부로의 유입을 계획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열린 국회지구를 형성하도록 한다.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윤중로가 가지는 선형의 산책로를 활용하여 국회지구와 새로운 청와대 그리고 여의도 광장의 정치적 궤도를 표상하는 새로운 제도적 산책로를 조성한다. 이러한 공간은 대의 민주주의의 제도를 건축적, 도시적으로 표상하는 공간이다. 이는 광장이 수행하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장으로서 공간과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제정하고 그들의 의사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 그리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행정부를 연결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정치적 궤도를 구축한다. 선형의 제도적 산책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본 정신을 일깨우는 공간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의 민주주의 역사와 그 장소적 가치를 발굴하는 큐레이팅 과정을 통해 야외에 전시한다. 이는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그 가치를 일깨우는 민주주의의 성지들의 오브제를 공간에 배치한다. 이로써 일반 대중의 접근이 쉽고 실제 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그들의 일상에 흡수되어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삶에서 찾을 수 있도록 계획한다. 또한 이 공간은 여의도 한강 공원에 비해서 소외된 여의도 남측에 흐르는 샛강 변 장소들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고 연결하는 공간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선형의 제도적 산책로의 시작은 여의도 한강 공원과 여의도 광장 북측에서 시작한다. 국민의 뜻을 표출하는 여의도에서 출발하여 법을 입안하고 의결하는 국회를 지나 그 법에 기반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행정부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끝은 다시 국민의 공간인 광장으로 제도적 산책로는 순환적 구조로 그 끝을 잇는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도 광장 남측은 휴식공간과 녹지공간 확충이라는 목적에 의한 공간으로서 자연 생태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광장에서의 다양한 행위를 수용하지도 광장으로서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기존 여타 과장과 같은 기념비적 공간이 아니라 친밀한 공간으로서 방들로 구성된 광장을 제안한다. 이는 기존의 정치적 선전도구 및 공원의 제한적인 행위를 수동적으로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입을 용이케하는 공간적 구조를 의미한다. 이 장소는 선형의 제도적 산책로의 끝 지점으로서 그 흐름을 잘 받아주고 다시 한강 측면의 여의도 광장으로 순환하도록 공간을 계획한다.
폴리티컬 커먼스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 본관 자체의 건물에서는 ‘정치적 공유 장소‘(Political Commons)(이하 폴리티컬 커먼스)라는 핵심 공간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기존의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폐쇄적인 소통 구조, 일방향적 직무방식, 단편적인 정책결정, 소수에 의견에 치우친 집행 결정 등의 정치적, 제도적 문제를 건축적인 개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폴리티컬 커먼스는 행정부의 본기능인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돕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다. 이 공간은 만남을 통해 정책에 관한 연구와 논의, 다양한 관계간의 소통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대통령은 물론이고 각 부 수석, 비서실 공무원, 출입 언론인에게 모두 열린 공간이다. 이 공간은 크게 연구의 공간과 소통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먼저 연구의 공간은 정부 산하의 정당, 정치 이념과는 별개로 공익성, 공공성 만을 목적으로한 정책 연구소 격인 정책 싱크탱크의 존재를 상정하고 계획한 공간이다. 정책 싱크탱크는 공공 정책을 연구하고 학술적 기반을 통한 분석과 제언을 제안하는 행정부 핵심기관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및 정책과는 별개로 그 자체의 독립성과 자율성, 지속성을 담보한 기관이다. 이들이 연구에의한 모든 결과물들은 이 폴리티컬 커먼스의 연구의 공간에서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다. 또한 정책 싱크탱크의 주도하에 시의성 있는 사안들의 경우 행정부와 입법부, 각 분야 전문가 및 국민들을 대상으로 포럼 등을 진행하여 사안에 대하여 심도 깊은 논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다른 축인 소통의 공간의 경우 정보를 전달하고 얻으면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곳은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과 기자회견실, 접견실 등의 다차원적 소통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한다. 또한 상황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의실이 이곳에 배치되어 의도적으로 내부 이용자들의 동선을 통합하여 대통령과 수석, 대통령과 공무원 등 다양한 관계들간의 우연한 만남과 소통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공간적 여건을 조성한다. 이 두 가지 성격의 공간은 시각적, 공간적으로 연결되도록 연구와 소통이 융합된 오픈플랜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구성된 폴리티컬 커먼스는 상부와 하부를 통합할 수 있도록 각각 상부와 하부 보이드에 배치된 수직동선을 통해 이동 동선을 연결한다. 상부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각 수석들의 사무실이 있고 외부와는 분리되어 있는 곳에 상황실을 계획한다. 하부에는 대연회장, 비서실 사무공간, 경호실 등을 계획한다. 또한 제도적 산책로와 면한 저층부는 여의도 광장에서 확장된 방으로 구성되어 국민들의 공간에 연속성을 갖도록 한다. 또한 이곳은 청와대의 국가적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한다.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가 그리는 미래
이러한 전략들로 구축하고자한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는 보고, 보이고, 보여주는 정치적 인식의 행위들을 보다 사회에 잘 반영하도록 도시적, 건축적 여건을 갖추고자한 공간이다. 이를 구현함으로써 청와대라는 건축적 개입을 통해 수도, 서울의 정치 사회적 지형을 변화시키고 정치적 중심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로써 국민들은 촛불집회 등의 가시적인 정치 행위의 의미를 초월하여 정치를 보다 가까이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정치 행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학습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제도화하는 사회정치적 인식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한 여의도라는 부도심에 새로운 정치적 중심성을 부여함으로서 서울 도시 계획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대문 안의 구도심의 방사형 확장으로 인한 무분별한 도시 확산 현상의 제동을 걸고 한강을 중심으로한 선형 개발을 통한 도시 문제의 해결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의 폴리티컬 커먼스는 앞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들의 시각적 배경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의 제도와 개념을 표상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정치적 극장’은 하나의 개념이나 명사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이는 앞으로 우리, 대통령과 국민들이 수행해 나갈 프로세스이며 동사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 도시적, 건축적 어휘를 통해 정치적 극장으로서 청와대를 제안하고 그 미래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참조자료
Absolute architecture / Brussel manifesto - Pier Vittorio Aureli
여의도 도시계획제안 - 김수근, 김석철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 - 김성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