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

[3월 호] '첫(처음)'

by 하자윤

오랜만에 잡아본다.


두껍고 단단한 손. 자주 얼굴 보고 지내면서도 정작 손을 마주 잡아 볼 일은 왜 이리 없는지.


내 인생의 굵직한 ‘처음’들은 항상 그의 손을 거쳐갔다. 뒤뚱대다 혹여나 넘어질까, 사람 많은 곳에서 길이라도 잃을까, 내 조그마한 손을 큼지막하게 다 덮어주던 손. 세상 모든 풍파 다 막아줄 것 같던, 사랑한다 말 안 해도 다 느껴지던 손끝의 온기를 나는 당연한 줄로만 알고 받았다.


그의 손을 떠나 남편의 손을 잡는 결혼식 날도 그랬다. 신부 입장을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손을 아빠는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자윤아,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니까 울지 말고 행복하게 웃어라. 아빠 딸, 알았지?”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신부가 되었고, 정작 아빠는 너무 떨린 나머지 5월의 결혼식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축사 실수를 하셨다. 본의 아니게 하객들에게 웃음을 주셨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사위 손으로 넘겨준 딸이 내심 섭섭해 독한 술을 연거푸 드셨단다.


남편은 직장 상사의 소개로 만났다. 처음 손을 잡던 때를 기억한다.

따뜻하고 두툼한 손. 걱실걱실 일 잘하게 생긴 손이었다. 추운 겨울 만난 그의 손은 ‘히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아빠를 왜 택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빠랑 있으면 트럭으로 배추 장사를 해도 행복할 것 같았거든.”

실제로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부모님은 배추를 팔러 다니셨다.


“오빠, 오빠는 면허 종류가 뭐야?”

“나? 1종 보통인데, 왜?”

됐다. 내 인생의 첫 손을 닮은 그의 손을 잡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손을 떠나 늘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았겠지만, 나의 아이가 아팠다. 둘째 아이의 수술 날, 엄마인 내가 무너질까 봐 절대 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그 수술 대기실에 아빠는 소리 없이 나타나셨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마음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아홉 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 내내, 땀이 흥건하도록 꽉 잡은 그 손이 있어 악몽 같던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빠, 우리 악수나 한 번 할까?

괜히 악수를 핑계로 아빠의 손을 잡아본다.

언제 이리 세월이 흘렀는지 여전히 두껍고 단단한 손 위로 검은 꽃이 많이도 피었다.

그의 손에 핀 꽃잎의 개수만큼, 그가 얼마나 많은 속을 녹이고 태웠을지 짐작해 본다. 자식의 길에 놓인 자갈을 골라내느라 거칠어진 손마디를 보며, 내가 받은 온기가 사실은 그의 생을 깎아 만든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얼마 전 나의 '대장님'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대장님 : 철갑상어 6형 콘드로이친
나 : 보내면 됩니까~~~~??
대장님 : 땡큐~~~~

이제 내 차례다. 무적 같던 대장님을 지켜줄 손은 이제 내 손이다.

투박하고 거친 그의 손바닥 위로 조심스레 내 손을 겹쳐본다.

아빠, 이제는 내가 꽉 잡을게요.



그가 첫사랑과 결혼해 만난 첫 아이가 나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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