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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Sep 30. 2019

6. 40대 아재 캐나다 직업학교에 가다 - 4편

수료

내가 BCIT에서 공부한 Electrical Foundation은 6개월짜리 certificate 코스이다. 졸업장(diploma)도 학위(degree)도 없다. 그러니,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졸업은 아닌 것 같고, '수료'정도가 될 것 같은데, 영어로는 마찬가지로 Graduation이라고 한다.


아무튼 6개월(정확히는 24주)의 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2016년 6월 17일에 graduate을 했다.


그럴듯한 수료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늘 수업을 받던 classroom에 평소보다 늦은 9시에 모인 후에, instructor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고, Unofficial Transcript라는 '비공식 성적표'만 한 장 달랑 받아 들고 학교를 나왔다.


비공식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다른 백인 아이 한 명과 공동 1등으로 수료를 했다. 처음부터 1등으로 수료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시작했는데, 단독 1등은 못하고 공동 1등을 했지만 목표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는 것이 resume에 한 줄이라도 더 쓸 거리가 있고 취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의 성적표(Unofficial Transcript)


'영어로 캐나다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어떻게 1등을 해?'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과정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춘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신경 써서 공부하면 1등은 몰라도 95점 전후의 좋은 점수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공부하는 캐나다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그렇게 똑똑한 아이들은 아닌 데다, 어리고 철이 없다 보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은 참 썰렁했다. 이럴 거면 어제 수업 마칠 때 주고 끝냈어도 될 걸 왜 오라고 한 것인가 싶었다. 이렇게 어느 40대 아재의 6개월에 걸친 늦깎이 학교생활이 끝났다. (물론 각각 10주 과정인 level 2, 3, 4 과정을 듣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되긴 한다.) 


어쨌거나 코스를 무사히 수료하였으니, 이에 대한 총평을 해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 BCIT Electrical Foundation Course 총평


1) 교육 내용은 충실하지만 강도는 높지 않다.


교육 과목은 다양하지만, 교육 과정은 모든 과목을 아울러 크게 이론, 실험, 실습의  세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Electrician으로 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반 지식과 실무 지식, 이론으로 배운 것을 직접 확인하는 실험, 그리고 현장에서 실제로 많이 하는 작업에 대한 실습으로 구성되어 교육내용은 상당히 알차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교육의 강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원래 일과는 7시 30분에 시작하여 2시에 끝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날에 1시 15분에서 30분 사이에 수업을 마쳤다. Quiz나 Final 등의 시험이 있는 날은 1시 이전에 끝나는 날도 많았고, 심지어 9시쯤 시험 보고 10시쯤 집에 갈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수업 진행도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이론 수업의 경우에는 강의를 진행한 후에 Worksheet라는 인쇄물을 나누어 주고, 방금 강의한 내용에 대해 문제 풀이와 자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굉장히 많이 줬다. 이 시간에만 집중해서 공부해도 하교 후에 따로 공부할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물론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이 시간에 잡담하고 논다 ㅋ)

교육 강도가 높지 않은 것은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습 능력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만일 일반적인 대학 강의처럼 강의시간에는 강의만 하고, 강의 내용을 복습하고 체화하는 것을 학생들 개인에게 맡겨두었다면, 학급의 1/3 정도는 수료하지 못하고 탈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과목이든 70점을 넘기지 못하면 바로 탈락 처리되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 반에서는 등록 2주 만에 자진 철회한 1명을 제외하면 15명 모두 수료했다)


2) 평가는 엄격하지 않다. 


일단 시험은 굉장히 자주 봤다.(이건 instructor별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과목별로 마지막에 보는 Final 말고도 Quiz를 과목 당 2-3번은 기본으로 봤다. 1주일에 Quiz 두 번과 Final 한 번으로 시험을 세 번이나 본 주도 있었다.

하지만 시험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수업 내용에 비추어보아도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은 부분에 대한 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고 매우 기본적인 내용들이 주로 출제되었다. 교재를 한 번만 찬찬히 읽고 나눠 준 worksheet만 한 번씩 풀어보면 누구나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다. 

실습에 대한 평가도 매우 후하다. Wiring Method, Motor Control, Condo 등의 실습을 하게 되는데, 마무리만 하면 후한 점수를 줬다. 따라서 이론 부분에서 좀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실습 점수를 통해 그것이 상쇄되기도 했다.

수업 강도가 높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평가를 깐깐하게 하지 않는 것 역시 등록된 학생들을 탈락시키지 않고 최대한 많이 수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였다.


3) 조금만 열심히 하면 두드러질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민자(특히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늦깎이 이민자는 더더욱)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좋다. instructor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 reference도 잘해 줄 것이고, 취업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코스를 시작하면서 반에서 1등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약간 아쉽지만 단독 1등이 아닌, 공동 1등으로 코스를 마쳤다. 영어는 좀 어눌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과 좋은 성적을 보여줬기 때문에 instructor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코스를 마쳤다고 자평한다. instructor 중의 한 명은 reference 필요하면 자기 이름 쓰라고 이야기도 해 줬고, 괜찮은 회사에 interview 할 기회도 주었다. 아마 적당히 코스를 수료하는 것만을 목표로 학교 생활을 했더라면 이런 배려들은 없었을 거다. 나이가 많고, 이민자이고, 영어도 어눌하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취업을 하고, 또 취업 후에도 직장생활을 잘해 나가려면 '성실성'과 '실력'이 반드시 장착해야만 할 기본 무기이다.



- 수료했으니 이제 문제는 취업!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개월의 공부를 마쳤다. 남은 과제는 취업이다.


"수료하면 학교에서 취업은 도와주나요?"라고 질문하고 싶으신 분들 많으실 것 같다.


공식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없다'. 

수업 중에 resume 작성과 job search에 대해 간략하게 배우는 것이 공식적인 취업 지원의 전부이다.


하지만 수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전기 회사에서 학교에 와서 일종의 '취업 설명회'같은 것을 하고 돌아갔다. 총 6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갔다) 직접 회사를 찾는 구직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면, IBEW라고 하는 Union을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료를 1주일 남기고 마지막 콘도 실습을 하고 있던 중에 instructor가 나를 살짝 따로 불렀다.  일반적인 전기 쪽 contractor는 아니고, building automation을 하는 어느 회사에서 foundation을 마친 apprentice를 뽑고 있는데, 관심 있으면 이력서를 대신 보내주겠다고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instructor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해 주겠다는 것인데, 일반적인 건축 전기보다 더 전문적이고 덜 physical 한 일을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수료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그 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추천을 해 준 것은 아니고, 반에서 3등까지 추천을 해 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회사에 취업을 하지 못했고, 나랑 공동 1등을 한 다른 백인 아이가 채용되었다.


이와 같이 학교가 취업활동을 공식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약간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것으로 '40대 아재 캐나다 직업학교에 가다'는 마치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취업 과정과 취업 후 회사 생활에 대해서 '40대 아재 캐나다에서 취직하다'라는 제목으로 몇 편의 글을 써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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