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밴쿠버 딸기아빠 Oct 03. 2019

40대 아재, 캐나다에서 취직하다 - 1. 취업분투기

* 이 글은 앞선 '40대 아재, 캐나다 직업학교 가다'라는 시리즈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40대 아재가 캐나다에서 취업한 이야기의 전모를 알고 싶으시다면 이전 글들을 먼저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이민학개론-Trade가 답이(ㄹ 수도 있)다'라는 포스팅도 먼저 보시면 제가 취업한 분야에 대한 배경 정보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영주권을 먼저 확보한 후에 캐나다에서 취업하는 사례이며, 제 사례를 '유학 후 이민'과 같은 영주권 취득의 수단으로는 사용하실 수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1. 첫 면접


언제 끝날까 싶던 26주간의 BCIT Electrical Foundation 과정도 어느새 수료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고민만 하고 있을 뿐 딱히 이렇다할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빨리 취직할 필요가 있나?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으니, 한 두달 쉬면서 좋은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이런 마음까지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미팅 후에 실습장으로 들어가던 나를 우리 반 instructor인 Chad가 불러 세웠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니?"

 "물론이죠. 무슨 일인가요?"

 "Building Automation을 하는 ESC라는 회사에서 apprentice를 뽑는다는데, 관심있으면 추천해 줄게"


Automation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구미가 확~ 당겼다. 코스를 하는 동안 가장 재미있었고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분야이며, 장기적으로 보면 더 전문성있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관심있다고 말하고 냉큼 이력서를 보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이 회사의 채용 담당자로 부터 이메일이 왔다.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instructor가 나만 이 회사에 추천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우리 반에서 top 3라고 할 만한 학생들 세 명을 추천했던 것이다. 3등인 친구는 이미 다른 곳에 취업이 되었기 때문에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반 공동 1등인 나와 다른 백인 아이 하나가 이 회사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좋은 자리인만큼 물론 이 친구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도 면접제의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먹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한 명을 뽑으면 저 녀석이 될 것이고, 두 명 이상을 뽑아야 내 자리가 있겠구나' 


면접날이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화이트칼라 사무직 자리가 아니니 취업 면접이라고 해도 정장을 하는 것은 오버다. 취업 면접 때는 평상시 일할 때의 복장보다 '한 단계'만 더 포멀하게 입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색 옥스포드 셔츠와 캐쥬얼한 여름자켓으로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고 갔다.  약속된 면접시간은 10시였고, 회사의 위치는 집에서 차로 45분쯤 떨어진 곳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것까지 고려해서 집에서 1시간 30분 전에 출발했다. 하지만 길은 뻥뻥 뚫렸고, 도착하니 면접까지는 45분이나 남아 있었다.(구글맵의 도착 시간 예측은 정말 정확하다!)


남는 시간 동안 회사 건물의 외관을구경을 했다. 빌딩 컨트롤 시스템을 개발/제조하는 다른 회사와 함께 건물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제법 규모는 되는 것 같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직원 복지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고, 큰 프로젝트도 많이 하는 견실한 회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약속된 면접시간보다 10분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리셉셔니스트에게 용무를 말하고 방문증을 받은 후 로비에서 대기했다. 10분 쯤 후에 드디어 나를 면접할 담당자가 나왔다. 호리호리하고 큰 키에 인상 좋은 은발의 백인이다. 대략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이 사람은 나를 자기 사무실(개인 방)로 데리고 들어갔고, 면접은 사무실 안의 테이블에서 1:1로 이루어 졌다.


면접은 두 장 정도로 된 인터뷰 sheet를 보면서 진행되었는데, 아마 면접을 볼 때마다 사용하는 회사 내부의 표준 양식인 것 같았다. 면접 내용은 일반적이었다. 특별히 까다로운 질문은 없었고, 함정 질문도 없었으며, 엄격하고 깐깐한 기준으로 나를 테스트하기 위한 면접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나마 가장 까다로웠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은 "What is your challenge?"('어떤 힘든 도전은 뭐니?'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와 "Why do I have to hire you?"(내가 왜 널 고용해야 하니?) 정도의 질문이었는데, 무난하게 대답한 것 같긴 하지만 면접관이 감동할 정도로 훌륭한 대답은 하지 못했다.


그 외의 질문들은


"공구 사용에는 익숙하니?"

"출퇴근 용 차량은 있니?"

"가끔은 주중에 4~5일 정도 출장가서 일하다가 주말에만 돌아오는 일도 해야하는데 괜찮니?"


와 같이, 내가 회사의 필요에 맞추어서 일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는 내용들이었다.


면접과정에서 학교에서 배운 과목 들 중 이 회사의 업무와 가장 관련이 많을 것 같은 Motor Control이라는 과목이 가장 재미있었고,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Electrician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점을 나름대로 appeal했다. 준비해간 성적표도 은근슬쩍 보여주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면접관도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분 정도 걸린 면접을 마치고 "I hope to see you again"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최고로 잘 본 면접은 아니지만, 무난하게는 본 것 같았다. Instructor의 추천으로 보는 면접이다보니 나의 자질을 평가하려고 하기 보다는 고용해도 무리없는지 확인하는 수준의 인터뷰라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취업이 이렇게 쉽게 풀릴 수가 있을까?'라는 일말의 불안감도 생겨났다. 우리 반에서 가장 똑똑한 백인 아이도 같은 자리를 두고 면접을 본다는 사실 역시 큰 불안요소로 느껴졌다.


그리고,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면접일은 월요일이었고, 그 주 내로 결정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금요일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월요일에 내가 전화를 했다. 


"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채용했고...."


'아~ 그 녀석이 뽑혔구나!.'  나중에 같은 반 다른 친구를 통해 들으니 역시 생각대로였다.


하지만 면접자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Chilliwack과 Abbotsford 쪽에서 일하는 팀에도 자리가 하나 있기는 한데, 거긴 니가 출퇴근 하기는 너무 멀지?"

"응, 너무 멀어"

"밴쿠버에서 주로 일하는 팀에 Work Load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사람 더 필요하다고 하면 너 바로 채용할거야"

"그럼 나도 아직 기회가 있는거네? 너무 고마워. 좋은 소식 기다릴게!"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이번에도 금요일까지 연락이 없었다. 월요일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나 지금 Edmonton에 출장갔다가 돌아가는 중이야. 너 일자리 때문에 그러는거지? 밴쿠버 팀에 왕복 3시간 걸려서 출근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이 친구를 Abbotsford와 Chilliwack에서 일하는 팀 쪽으로 돌리고 그 자리에 너를 보내줄 수 있을지 내일 회사 출근해서 알아보고 연락줄게"

"그래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2. 이력서 보내기


이 정도했으면 이제 다른 회사를 알아볼 때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회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채용담당자를 알게 되었고, 다행히도 내가 자기 회사에서 일할 능력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가끔씩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은근한 압박을 가하면 자리가 났을 때 나를 채용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그 때를 기다리면서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채용 공고가 난 여러 회사들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는 WorkBC.ca, Craiglist.com, Indeed.ca의 세 곳에서 주로 찾았다. 그리고 Level 1 apprentice를 채용 중인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채용사이트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채용공고는 없는 지 살폈고, 있으면 이력서를 보냈다.


다른 한 편으로는 STEP이라는 기관을 통해 취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STEP은 BC주 건축협회 산하의 조직인데, 정부의 자금을 받아 건축 쪽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STEP을 통해서도 연락해 볼 만한 회사들의 연락처를 받았고, 이 회사들에 보낼 이력서도 준비를 시작했다. STEP의 담당자는 자기가 알려준 회사들에는 직접 찾아가서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이력서를 보내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 이틀, 사흘...... 십 수개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어디서도 연락이 없었다.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학교에서 열심히 했고 잘 했으니 취업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막상 이력서를 내도 연락이 오는 곳이 없으니 막막했고 심한 무기력감이 들었다. 


'역시, 취업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3. 두번째 면접과 취업


많은 회사들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2주가 지나도록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이제는 STEP 직원의 조언대로 이력서를 들고 직접 회사들을 찾아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날 하루동안 방문할 회사들의 목록을 정리했다. 이 회사들에 제출할 이력서를 출력하고 봉투에 넣은 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잠깐 씻으러 간 사이에 부재 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음성 메세지를 확인하니 2주 전에 WorkBC를 보고 이력서를 보냈던 회사들 중 한 곳이다.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 날 오후 2시에 면접을 보자고 한다. 이력서를 돌리러 나가려던 계획은 바로 보류되었고, 면접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우선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번듯한 홈페이지도 있는 것을 보니 완전 구멍가게는 아닌 것 같았다. 일반적인 건축전기 외에 system integration을 전문으로 한다고 써 있었다. 이전에 면접 본 회사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특화된 전문분야를 갖고 있는 회사인 것 같기도 했다. 포트폴리오를 보니 학교와 의료기관 공사도 많이 한 회사이다.


pay와 benefit은 어떤지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Glassdoor.com같은 사이트에도 정보가 없다.


Google Map으로 들어가 회사의 주소지를 입력했다. 위치를 확인한 후, street view를 통해 회사 건물을 찾아 보았다. 작은 건물의 한 부분을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 규모는 이전 회사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역시 일찌감치 집에서 나갔고, 면접시간보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했다. 차에서 잠깐 기다리다가 면접시간 10분 전에 회사의 벨을 눌렀다.


이 회사와의 면접은 거의 형식적이었다. 내 이력서를 앞에 놓고 매우 일반적인 질문들만 몇 개 했다. 그러더니 곧, 


"너에게 기회를 줘 볼께. Level 1과 Level 2에 대해서는 사실상 회사가 투자를 하는 셈인 건 알고 있지? Level 3 정도는 되어야지 월급값을 하는거야. 그리고 우리 회사의 Level 1 초임은 $1*.00/hr이야."


시간당 급여 액수를 듣는 순간 '잘못 왔구나'라는 생각이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일단 인터뷰는 끝까지 좋은 인상으로 보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일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것도 아닌데, 이미 나의 채용이 기정사실화 된 듯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 좀 올려 줄 여지는 없니?"


라고 질문하며 네고에 들어갔다. 의외로 선선하게 대략 10% 조금 넘게 올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래봤자 얼마 차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일단 업계의 평균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기에,


"24시간만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니?"


라고 물었더니, 


"일단 내일부터 일은 시작하고 일하면서 생각해 봐. 그리고 일 안하게 되더라도 이왕 North Van에서 Surrey까지 왔으니, 온 김에 Paperwork은 다 하고 가."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뭔가 말려드는 느낌.....

Paperwork을 하면서 재빨리 이 분야에서 일하는 아는 분께 연락을 했다.


"그 정도면 아주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니 웬만하면 3개월까지는 좀 이상해도 참고 일해 보라. 너무 이상하면 그 이후에 옮겨도 된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작성한 서류들을 건네주고 내일 어떤 장비들을 챙겨서 어디로 출근하면 되는지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사무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STEP의 담당자에게도 전화를 했다. 


"나 P****라는 회사랑 interview했는데 내일부터 출근하래. 근데 시급이 $1*.**/hr 밖에 안 돼. 나 여기 다녀야 되니?"

"법정 최저 시급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 그만하면 평균은 되니까 일단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회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나도 이름은 아는 회사니까 이상한 회사는 아닐거야"


'말려드는 것 같다'는 꺼림칙한 생각과 시급에 대한 불만족은 제쳐두고 일단 내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에 출근하기 마음먹은 것은 참 잘 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다른 회사들로 부터의 연락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학교 수료 후 3주 만에 취업까지 했으니 비교적 빨리 취업에 성공한 편이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우리 반 15명 중에 제대로 full time으로 취업한 녀석들은 절반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취업 수기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글에서는 첫 출근 날에 대해 이어서 써 보도록 하겠다.





*부록 - STEP의 선물


STEP은 건축 쪽 분야에서 구직 활동에 도움을 주는 기관인 동시에, ITTI(Immigrants Trade Training Initiativ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규이민자의 Trade 쪽 교육과 취업을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그래서 5년 이내의 신규 이민자가 Trade 쪽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 일하는 데 필요한 장비도 일부 지원해 준다. 취업 소식을 알렸더니 담당자가 


"필요한 Tool들 있으면 말 해. 내가 사다줄게"


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전기톱(Sawzall)과 멀티미터, 그리고 작업용 부츠 중에 지원해 줄 수 있는 만큼만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돈으로 치면 대략 $500불이 넘는 금액인데, 흔쾌히 모두를 지원해 주었다.


사실 취업 자체에 대해 STEP에서 도움 받은 부분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금전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니, Trade 쪽에 진로를 잡고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접촉해 볼 가치가 있는 기관이다. (과거에는 BCIT 학비도 전액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나는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 학비 지원은 받지 못했는데, 어쩌면 여전히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http://www.stepbc.ca/







매거진의 이전글 6. 40대 아재 캐나다 직업학교에 가다 - 4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