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7일은 나와 우리 가족의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날로 기록되었다. 밴쿠버에서 살아가며 생업으로 영위하기로 마음먹은 직업으로 첫 출근을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 수단이 될 가장의 직업이 확정되면서 우리 가족은 밴쿠버 이주 2년 만에 드디어 캐나다 사회에 '안착'한 셈인 것이다. (Walmart에 7개월 정도 출근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했던 알바였지 본격적인 career로 추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Level 1 apprentice에 불과했던 내가 벌어들일 수입만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 했다. 하지만 4년 정도 열심히 일해서 Journeyman(자격증을 가진 전기공)이 되고나면, 그 때부터는 그럭저럭 내 수입만으로도 4인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월마트에서는 이런 희망을 가지기가 매우 힘들다. 과장급이라 볼 수 있을 department manager까지는 최저시급과 큰 차이가 없고, 부점장(assistant manager)이 되어야 5만불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언제 부점장이 될지, 과연 될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1. 첫 출근
면접 자리에서 바로 채용되어,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오전에만 해도 실업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불과 몇 시간만에 취업이 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일을 하게 되니 이런 상황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뒷간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취업만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은 마음이었는데, 막상 취업이 되고 나니 '이 길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내일부터는 고생해야 되는구나!'라는 하기 싫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단 Level 2까지는 가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역사적인(?) 첫 출근을 앞두고 나도 모르게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출근 전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여러 번을 깼고, 결국 5시도 안되어 일어났다.
출근지는 밴쿠버 다운타운 근처의 초등학교 레노베이션 공사현장이었는데,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30분 이상 일찌감치 집에서 나갔다. 현장에서 팀장 격인 Foreman과 첫 만남을 가져야 하는데, 첫 날부터 지각해서 나쁜 인상을 주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기본 안전 장비인 Hard Hat(안전모)와 Steel Toe(작업화), Visi Vest(형광조끼)를 착용한 후, 공구를 챙겨들고 현장으로 갔다. Foreman을 만났는데,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바로 선임(?)에게 붙여 일을 할당해 주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전선을 넣은 후 땅 속에 파묻을 PVC 파이프를 옮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며 하루 일과가 흘러갔다.
일을 하다보니 BCIT의 instructor였던 Anna의 말이 생각났다.
"Electrician이 다른 trade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덜 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physically demanding(육체적으로 고달픈)한 직업이다. 그리고 특히 Level 1, 2들은 현장에서 힘든 잡 일들은 다 해야한다."
개인적으로 아는 level 4에 있던 다른 분도 "1, 2학년 때는 고생할 각오하셔야 해요"라고 했었다.
어떤 일에서든 마찬가지이지만, 초보자들은 어리버리하다. 일단 큰 그림을 모르니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 지시받은 일만 할 수 있다. 그나마 지시 받은 일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이다. 경력자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굳이 알려주지 않은 부분들도 초보자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현장에서의 첫 날은 이런 어리버리함과 사소한 실수의 연속으로 첨철되었다.
한 가지 다행한 점은 시간이 잘 간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사무실에서 하는 일보다 몸을 쓰면서 하는 일이 집중해서 하다보면 시간이 더 잘 가는 것 같다.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 먹은 후에 또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있다. 여느 캐네디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퇴근 시간은 칼이다. 2시가 좀 넘기 시작하자 뒷 정리를 시작했고, 2시 반에 칼 같이 현장에서 나왔다.
집에 오니 3시, 씻고 나오니 3시 반,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쳐도 개인 시간이 무려 6시간 반이나 남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절대 가져보지 못했던 여유였다. (물론 집에 3시에 와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다.)
2. 7일 출근 후기
출근 첫 날이 목요일이었기에 첫 주에는 이틀만 일을 했다. 고작 이틀이지만 일을 했더니 주말의 휴식이 꿀같이 달았다. 하지만 주말은 이내 지나갔고, 어김없이 월요일이 돌아왔다. 언제 5일이 갈까 싶었지만 시간은 잘도 흘러 갔고, 그렇게 처음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풀로 일을 한 한 주가 지나갔다.
힘든 한 주였다. 좀 더 힘든 날도 있고, 좀 덜 힘든 날도 있지만, 어쨌거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다. 그럭저럭 할 만 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잡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배웠던 일들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났다.
아무래도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먼지는 좀 많이 뒤집어 쓴다. 원래 먼지가 많기도 하지만, 드릴로 ply wood(벽이나 바닥 안에 들어가는 큰 나무판)나 wood stud(나무 기둥)을 자르고 구멍 뚫고 하다 보면 나무 먼지도 많이 뒤집어 쓰게 되고, 콘크리트 먼지나 금속 가루가 날릴 때도 있다. 장갑과 safety glass는 웬만하면 착용하고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살이 빠졌다! 음식조절과 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살을 빼려고 노력해 봤지만 빠지지 않았던 체중이 일을 하는 동안 저절로 빠졌다. 몇 년만에 체중계의 숫자가 170파운드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노가다 근육과 운동 근육은 다르다고 하지만, 어차피 건강하려고 하던 운동이지 몸짱되려고 하던 운동은 아니다. 그러니, 일부러 시간 내서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trade가 가진 한 가지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동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는 나를 포함해 10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인종 구성은 다양했다. 백인도 있고 인도 쪽도 있고, 중국인과 필리핀, 러시안, 그리고 한국인(나)도 있다. Foreman과 러시안 한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20대나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지역적으로는 밴쿠버 교외의 써리(Surrey)라는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꼭 그래서라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괜찮은 녀석들인 것 같기는 한데 입들이 걸었다. Fu*king이나 sh*t이 들어가지 않고 완성되는 문장이 거의 없다. 그런데 또 일을 하다 보니 그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등의 힘든 일을 하다보면 나 역시도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수요일에는 첫 pay를 받았다. 전 주 목요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pay day 전 날인 화요일까지 4일 치를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았다. Pay는 격 주로 수요일에 통장에 입금되며, 명세서는 이메일을 통해 날아 왔다.
3. 먹고 살자
이민 후의 생계라는 문제에 대해 정답은 없다. 개인마다 각각 다른 해답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민을 실행하기 전에 나는 캐나다에서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Plan A, B, C의 세 가지 방안을 생각해 뒀었다.
Plan A는 내가 고안한 어떤 상품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주로 캐나다에 머물면서 가끔 한국을 드나들며 사업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성공만 했다면 시쳇말로 '꿀 빠는'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었지만, 이런 계획이 그렇게 쉽게 잘 풀릴 리가 없다. 그럭저럭 시제품은 개발했지만 투자받을 곳도, 양산할 자금도, 판로도 없어서 캐나다로 영구 이주하는 시점을 전후로 완전히 접었다. Plan B가 Trade를 배워 취업을 하는 것이었고, Plan C가 Small Business(자영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2년 이라는 시간 동안 Plan B를 추진하여 그럭저럭 출발점까지는 올려 놓았던 것이다. 만일 Plan C를 택해서 잘 풀린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성공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아 성공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만한 희생과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런 희생과 노력은 내가 캐나다에서 추구하는 lifestyle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lan C까지 넘어가지 않고 Plan B에서 일이 잘(?) 풀린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FAQ on being an Electrician
1. Electrician의 종류와 분류는?
Electrician은 일단 Construction Electrician과 Industrial Electrician의 두 가지 분류로 크게 나뉜다. 이름 그대로 건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Electrician과 산업 현장(공장 등)에서 일하는 Electrician이다.(더 깊게는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시라) 하지만 출발점은 같다. Apprenticeship도 Foundation과 Level 2까지는 같고, Level 3부터 나뉘어 진다. Construction Electrician은 다시 Residential과 Commercial로 나뉜다. Residential은 주택이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Electrician들이고, Commercial은 몰이라든가 기타 상업 시설을 건축하거나 레노베이션하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Residential과 Commercial은 완전히 분리된 영역은 아니며, 대부분의 중소 규모 전기회사들은 Commercial과 Residential을 같이 하고 있다.
Construction Electrician보다는 Industrial Electrician이 훨씬 대우도 좋고 일도 편하다. 하지만 BC주에서는 되기가 어렵다. 일단 산업 시설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Industrial Electrician들은 이직률도 낮고, 퇴직으로 자리가 생겨도 친인척이 추천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부인에게는 거의 기회가 없다고 한다.
2.Construction Electrician의 근무 시간은?
Construction Electrician들의 일반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이다(7시~3시도 근무하는 회사도 있고, 8시~4시로 하는 회사도 있긴 하다). 근무 중 쉬는 시간은 없고, 30분 간의 점심시간이 있다. '쉬는 시간도 없어? 너무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알고 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캐나다의 노동법에 따르자면 6시간 이상 근무할 때는 각 15분 씩 두 번의 유급 휴식시간과 무급인 점심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급인 점심 시간을 없애버린 후, 각 15분인 유급 휴식 시간 두 번을 붙여서 점심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pay는 8시간에 대해서 지급받게 되는데, 이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하여 짜여진 근무스케쥴이 아니라, 노동자가 30분 더 일찍 집에 가면서 시급은 풀로 챙기기 위해서 짜여진 스케쥴이다.
쉬는 시간이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처럼 쉬는 시간이 아닐 때는 전혀 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일 하는 사이사이에 요령껏 한 숨을 돌릴 수 있다. 화장실도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가면 된다.(단 푸세식 간이 화장실이다. 생각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흡연자들은 틈틈이 담배도 피워가면서 일한다.
3. Construction Electrician의 보수체계는 어떻게 되어 있나?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Level 1 Apprentice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대게 $12~$15/hr의 시급을 받게 된다. 이 시급은 6개월마다 한 번씩 올라가게 되고, 약 4년 후 Journeyman이 되면 $27~32/hr을 받게 된다. Journeyman이 된 이후에도 경력이 더 쌓이거나 ticket(자격증)을 추가로 더 획득하게 되면 pay는 더 올라간다.
BC Hydro라는 공기업에 apprentice로 들어가면 level 1부터 $27.50/hr라는 엄청난 시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BC Hydro입사는 매우 어려우며, apprenticeship을 하는 동안에는 밴쿠버 인근이 아닌 BC주의 외곽 지역으로 배치받게 된다.
4. Benefit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Dental & Medicine 보험을 제공한다(일부 작은 회사들 중에는 없는 경우도 있다). 보통 3개월의 Probation Period(수습기간)을 마친 후 적용해 준다. 일부 좋은 회사들은 RRSP matching을 제공하고, tool allowance를 주는 곳도 있으며, 심지어 레벨 업 할 때의 학비를 지원해 주는 경우도 있다.
5. 휴가는?
역시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연 2주의 유급 휴가를 보장해 준다. 휴가 기간에도 pay를 주기보다는 매번 pay가 나올 때 마다 4%를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개인 사정에 따라 무급휴가는 원할 때마다 쓸 수는 있다. 물론 너무 많이 쓰면 언젠가는 짤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