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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Oct 28. 2018

이민을 결심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네 가지

눈덮힌 밴쿠버의 겨울


나는 영주권을 손에 쥐고 태평양을 건널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영주권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마 이민을 포기하고 아직도 한국에서 살고 있을 것 같다. 영주권에 대한 보장도 없이 가족까지 이끌고 무작정 태평양을 건너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모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영주권 없이 건너와서 유학 후 이민이나 경험 이민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영주권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오히려 나처럼 영주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훨씬 드문 케이스였다. 다양한 성공 케이스와 실패 케이스들을 보고 들으면서, 일단 와서 영주권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터무니없는 모험은 아니라고 느끼게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몇몇 드문 경우들을 제외하고 나면, 한국 사람이 영주권을 손에 쥐고 이민을 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권 없는 이민은 여전히 '모험'이다. 실패할 확률이 상당하고, 실패를 통해 치러야 할 대가는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이민 경험자의 입장에서, '나 이민 갈 거야'라고 결심하기 전에 반드시 미리 숙고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이민 오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다르다.


한국에서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어학연수나 유학시절 짧게 경험했던 해외에서의 생활에 대한 향수(?)가 일어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이민'이라는 선택에 대한 가능성의 싹이 돋아난다. 이 싹이 점점 커지면서 우리는 소위 '이민병'에 걸리게 되는데, 이는 이민을 실행하지 않으면 절대 치유되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이민'병'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성이나 논리로서는 극복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일단 '이민병'이 도지고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이민 갈 방법만을 찾게 되고, 그 결과로 종종 무리한 결정까지 내리게 된다. 이민만 갈 수 있다면 어떤 고난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싹트고, 영주권을 얻어 가족 모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그 날을 위해 몇 년간의 고생은 기꺼운 마음으로 이겨내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된다.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장실 가기 전과 후에도 180도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막상 넘어와서 먹고살기 힘들 정도의 박봉을 받으며 한국에선 안해보던 힘든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하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십수 년을 화이트 칼라로만 살아왔던 내가 캐나다까지 와서 먹고살아보겠다며 전기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공사현장에서 전기 시공 일을 하고 있다. 좀 낮춰서 말하면 '노가다'의 범주에 들어갈만한 일이다. 건설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몸을 써서 일하다가, 먼지와 자재, 건축 쓰레기가 뒤섞인 현장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점심 도시락을 까먹다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와서, 지금 이게 뭐 하고 있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말고 다른 거 해서 먹고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현재의 선택을 전적으로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일 캐나다에 오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현재의 고달픔보다 한층 더 높은 암담함 속에 살고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민 오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달라지니 이민을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록 지금 생각으로는 모든 고생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일단 그 상황에 처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런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기약도 없는 고생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말 냉정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고, 없다면 이민을 포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민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 지금 현재보다 두 세배는 더 단단하게 각오를 다져야만 할 것이다.



2. 조건이 많은 계획은 그만큼 실패 확률도 높다


유학 후 이민을 추진하시는 분들은 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유학 후 이민으로 들어가면 최소한 아이들 학비는 굳는 것이다. 이렇게 절약되는 돈도 연간 수천만 원이니, 내 유학비용이 그리 아까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생활비인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금을 빼고 저축한 돈을 가지고 가서 초절약 모드로 무조건 아끼면서 살면 2~3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가진 돈이 다 바닥나기 전에 학교를 마치고 취업을 하면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일에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돈이 좀 부족하면 내가 공부하는 동안 아내(남편)에게 워크퍼밋이 나오니 파트타임이라도 뛰면서 벌어서 보태면 된다. 문제는 영어가 좀 딸린다는 건데, 지금은 좀 (많이) 딸리지만 유학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현지인들과 부대끼다 보면 공부를 마칠 때쯤엔 영어 실력이 많이 늘어 있을 것이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점을 잘 받으면 쉽지는 않더라도 취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최소 2~3년은 걸리겠지만, 그동안의 고생만 감수하면 우리 가족 모두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대로 잘 풀려서, 혹은 이 생각대로는 안 되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행운을 얻거나 다른 길이 나타나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잘 살아가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실패하고 돌아가는 분들도 많다. 많은 유학 후 이민 추진자들이 가진 위와 같은 일반적인 생각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 많은 조건문들이 들어 있다. 첫째, 가진 돈을 아끼고 아껴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둘째, 영어가 취업이 가능한 수준까지 늘어야 한다. 셋째, 취업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 넷째, 취업을 해야 한다.  다섯째, 취업한 직장에서 가족이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 조건들은 or 조건이 아닌 and 조건들이다. 모든 조건을 다(대부분) 만족시키지 못하면 계획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조건들이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더라도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조건이 많은 계획은 그만큼 실패한 확률도 높다는 점에 대해서 더 이상 상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 지금 가능한 방법이 언제 불가능하게 바뀔지 모른다.


수시로 바뀌는 캐나다의 이민 정책도 크나큰 변수 중의 하나이다.

2016년에는 캐나다 이민국이 고용주 스폰서에 주어지던 600점의 점수를 50점으로 대폭 낮추면서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던 많은 한인 분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 대부분 초밥집 등의 고용주 스폰서를 통한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는 분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수시로 일어나는 이민국의 정책 변화가 영주권 신청 준비자들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가장 큰 위험 요소이다.


영주권 수속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하는 말이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 캐나다의 이민 정책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정교해진다'는 것은 이민 시스템이 캐나다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더 엄밀하게 선별하여 받아들이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 이민국이 국내외적 상황에 따라서 이민자 쿼터를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점점 정교화하면서, 앞으로는 과거처럼 일정 조건만 채우면 무조건 적으로 영주권이 발급되던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영어권이 아닌 한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경력이나 학력에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더라도, 안타깝게도 언어적인 한계때문에 '캐나다가 필요로 하는 사람'의 범주 내에 들어가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의존하고 있는 '이주공사'들은 어찌 보면 이런 이민 시스템에서 '빈틈'을 찾아내 한인들에게 영주권을 받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시스템이 점점 정교화된다는 것은 이런 빈큼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주공사에 수속 대행비를 내고 실제 영주권을 받기까지는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4~5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주 공사들이 현재의 시스템이 가진 '빈틈'으로 이민희망자들에게 영업을 하겠지만, 그 빈틈이 영주권 심사까지 소요될 수년의 시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본인이 이런 빈틈을 통해 영주권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 속한다면 정말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4. 이민 가서 얻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한국을 떠나서 잃을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일단 이민병에 걸리고 나면 이민 가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이 집중된다. 좋은 환경, 경쟁이 적은 교육제도, 좋은 사회 복지 제도, 많은 여가 시간, 가족 중심의 생활 등....  하지만 '얻을 것'에만 생각이 집중되다 보면 '잃을 것'에 대해서는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먼 앞 날을 내다보면 좀 암담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월급이 꼬박꼬박 잘 나오는 직장, 언어 장벽이 없는 사회, 인정받는 나의 학력과 경력, 일생을 한국에서 살면서 쌓아온 사적인 인간관계와 공적인 인맥, 가족과 친지, 정서적 이질감이 없는 문화, 입에 맞는 음식 등.... '이민병'에 걸려 눈이 뒤집힌(?) 지금은 비록 대단치 않게 생각되는 것들이지만, 막상 버리고 떠나오게 되면 크게 결핍을 느끼게 되는 부분들이다.


그러니 '그래 결정했어! 나 이민 갈 거야!'라는 마음을 먹기 전에 먼저 이민을 통해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한 덧셈과 뺄셈 계산을 잘 해야만 한다. 냉정하고 치밀하게(보수적으로) 계산을 해 보고, 몇 번을 계산해도 결과가 마이너스(-)로 나온다면, 과감히 접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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