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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Nov 04. 2018

이민가면 뭘 해서 먹고 사나?

밴쿠버 다운타운의 밤

  캐나다에 오기 대략 2~3년 전의 일이다. 우연찮게 나와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캐나다로 이민 가신 분을 잠깐 스쳐가듯 만나게 되었다. 당시 캐나다가 아닌 '이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분께 질문을 드렸다. "캐나다는 살기 어떤가요?" 그분의 대답은 "살기는 좋은데 할 게 없어요"였다.


 "할 게 없다." 단지 이 분만이 아니라, 이민자들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민 가려고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나면 제일 많이 돌아오는 질문이 걱정과 궁금증이 반반씩 섞인 "가서 뭐 하려고?"라는 질문이다. 이민 간 지인들의 예를 들며 "가 봤자 할 것도 없대"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할 게 없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측면은 '해 먹고살게 없다', 즉 할 만한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측면은 '시간은 남아 도는데 할 게 없다', 즉 놀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민 가면 할 게 없다"라는 말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일단 '일', 즉 '뭘 해서 먹고 사나?'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이민와서 먹고 사는 방법은 백인백색이다. 참 다양한 방법으로 먹고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의 지인들만 봐도 그렇다.  몸은 캐나다에 와 있지만 한국에 사업체나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 나오는 소득으로 먹고사는 사람,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굳이 한국에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혼자서 집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소득을 올려 먹고 사는 사람. 원래부터 갖고 있던 재산으로 캐나다에서 여러가지 투자활동을 하면서 그 수익으로 먹고 사는 사람 등등.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을 매우 부러워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흉내낼 수 있는 케이스들은 아니며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이런 케이스들은 논외로 하고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일반화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일', 즉 생업의 측면에서 이민을 온 후에 택할 수 있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비즈니스(사업, 혹은 자영업)'를 시작하는 일이다. 가장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선택하는 방향이다. 업종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근린상가나 몰에서 하는 리테일(소매) 업종이 많다. 영어로는 모두 '비즈니스'라고 표현하지만, 한국말로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못 되고, '자영업'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사업이란 잘 되면 크게 잘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망할 위험도 크다. 실패한 이민의 가장 많은 원인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비즈니스 실패'가 아닐까 싶다.(정확한 통계적 근거를 기반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둘째, '취업'이다. 한국에서 종사하던 직종에 이민 와서도 계속 일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일단 언어가 걸림돌이 된다. 또, '자격증'이 있는 직종이라 하더라도 그 직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가 만만치 않다. (실례를 들자면, 내가 잠깐 월마트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백인 브라질 친구는 원래 직업이 '치과의사'였다. 이 친구는 치과의사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월마트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했다. 또 내가 한 때 다녔던 어느 한인 치과의 치과의사는 한국에서 십수 년 개업하여 치과의사로서 경력을 쌓았지만, 이민 후에 이 곳에서 다시 치과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치과의사 자격시험을 패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학박사 출신이 초밥집을 운영하는 경우도 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공부 후 취업'(이민까지 연결해서 '유학 후 이민'으로 하는 분들도 많다)이다. 이 곳에서 취업이 비교적 잘 되고 처우도 괜찮은 편인 '기술직'쪽으로 공부를 하고 취업 추진하는 방법인데, 내가 선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놀고먹기'이다. 당연히 돈이 많아야 하고, 이 방법에 대해서는 별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비즈니스 하기는 싫지만, 놀고먹기에는 돈이 좀 부족해'라고 생각되는 액수라면 방법은 있다. 일단 어느 정도의 임대소득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어 둔 후에, 남는 시간에 이런저런 알바(?)들을 가끔씩 하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이 세 가지 방법 외에 일반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캐나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은 이 세 가지 범주 내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이나 캐나다나 마찬가지라면 '이민 가면 할 게 없다'라는 말은 대체 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몸은 캐나다에 있으면서 마인드는 아직도 한국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영어 속담을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인데, 영문으로는 아래와 같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법을 따르라'라고 했는데, 영문에는 '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의미 그대로 번역을 하면, '로마에 있을 때는 로마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라'가 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말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 와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캐나다에 와서 캐나다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비즈니스를 선택하건 취업을 선택하건, 이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할 게 없다'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사업'을 하는데, 좀 폼나는 걸 해야지 남들 다하는 편의점이나 세탁소 같은 건 못 하겠어.'라는 마인드라면 할 사업은 없다. (편의점이나 세탁소가 좋은 사업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는 정장 입고 넥타이 매고 폼나는 화이트 칼라였는데, 캐나다에서 취업을 하려니 땀 냄새나고 힘든 블루칼라 일자리밖에 없어.'라는 마인드라면 당연히 할 일은 없다.


  캐나다와 한국은 구조적으로 다른 사회이다. 한국은 어느 정도 아직까지 '사농공상'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 블루칼라를 천시하고 화이트칼라를 우대하는 풍조가 남아있다. 조직이 개인에 우선하며, 노동의 가치나 블루칼라들이 가진 전문성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에, 캐나다는 땀의 가치와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나라이며, 사람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나라이다. 개인이 조직에 우선하고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법은 거의 없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다른 사회로 건너왔으니, 한국에서 목에 힘주고 살던 화이트칼라 출신 이민자들이 캐나다에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무거운 절을 옮길 수는 없으니 가벼운 중이 떠나야 한다. 한국에서 했듯이 화이트칼라로서 목에 힘주고 폼나게 살고 싶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육체노동은 못 하겠는데, 그렇다고 먹고 놀만큼 돈도 없다면 캐나다에서 살 방법은 없다. 캐나다는 당신에게 맞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반면 어떻게든 캐나다에 정착해서 잘 살고 싶다면 한국사회에 맞춰진 그 마인드를 캐나다에 맞게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뜯어고친다고 바로 할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마인드를 장착하고 열심히 살펴보면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길이 보인다 해도 역시 그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인 사회 속에 폭 파묻혀서 있는 듯 없는 듯이 살 것이 아니라, 주류 캐나다 사회에 편입해서 다른 캐네디언들처럼 대접받으며 살고 싶다면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언어 문제도 극복해야 하고, 정서가 다른 캐네디언들과 뒤섞여 일하려면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그 길에는 나름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민을 선택하지만, 더 나은 삶이 곧 '더 쉬운 삶'은 아니다. 이민을 오기도 쉽지 않지만, 이민 온 후의 삶 역시 결코 녹록치 않다. '더 나은 삶'은 이민의 결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민 후의 삶을 통해 치열하게 쟁취해 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민 와도 '해먹고 살 건 있다'. 다만, 한국적인 마인드를 벗어던지고 캐나다적인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재산이 없다면 몸만 태평양을 건너고 마인드는 한국 땅에 남겨두고 오는 만용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한국에서 아무리 능력을 인정받고 잘 나갔더라도 캐나다에 오면 그저 일 년에 몇 만 명씩 들어오는 이민자들 중의 한 명일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눈높이도 낮춰야 한다. 그러면 길이 보이고 할 일이 생긴다.


  '어떤 길이 보이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냐?'라고 직설적으로 물어본다면 답을 하기는 어렵다. 내가 어떤 길을 찾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일 뿐이며,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는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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