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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Oct 26. 2018

'이민'의 정의 - 이민이란 무엇인가?

밴쿠버 다운타운의 모습. 좌하단은 Granville Island,  다운타운 뒷쪽은 내가 살고 있는 North Shore 지역

'개론'의 첫걸음은 모름지기 '개론' 앞에 오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 시작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살펴보자. 


국어사전은 이민을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민에 대해 가장 축약되고 간결한 설명이긴 하지만, 이 정의는 주거의 터전을 옮긴다는 피상적인 측면만을 설명해 줄 뿐, 정작 이민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얻고 싶은 답은 이민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것일 거다. 그렇다면 질문을 더 구체화해 보도록 하자. 아마도 이 '이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문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답을 구하고 싶은 질문은 이런 쪽에 가깝지 않을까?


  "이민 후의 삶은 어떤 것인가?", 혹은 

  "이민 전과 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하여 질문을 구체화해 보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국어사전처럼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 답이 개인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개인의 숙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원한 정답풀이를 내놓을 수는 없더라도 각자의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의 이정표는 세워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내 개인이 찾아낸 위 질문에 대한 답이며,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에 대한 이정표의 노릇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이민은 생활양식(라이프스타일)의 극적인 변화이다.


  모든 공동체에는 나름의 전통과 규범, 생활양식이 있다. 한국인은 크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동시에 다양한 층위에서 가족, 친구, 학교, 직장 등의 여러 하부 공동체에도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공동체들은 제각각의 규범에 따라 돌아간다. 우리의 삶은 당연히 이런 공동체들이 갖고 있는 전통과 규범, 생활양식들에 의해 규정되고 구속받는다. 그런데, '이민'이라는 것을 실행하고 나면 순식간에 이 모든 공동체들에서 이탈하게 되고,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여러 층위의 공동체들에 새롭게 편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삶을 규정하던 전통과 규범, 생활양식이 순식간에 낯선 것들로 교체됨을 의미한다.


  설명이 좀 추상적인 것 같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주로 자신이 속한 사회적 그룹들에 의해 규정된다. 나와 같은 30~40대 남자들의 경우 보통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돈을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한다. 이런 경우에 생활의 중심은 대부분 가정보다 직장에 두어진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어서 야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퇴근 후에도 바로 귀가하여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직장동료나 거래처 담당자들과의 회식이나 접대성 미팅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날은 친구와의 사적인 만남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민 후의 생활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한국처럼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은 거의 없다. 거래처 직원과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일 같은 것은 더더욱 없다. 퇴근도 거의 정시에 이루어진다. 결국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퇴근 후의 시간은 가족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소위 '돈 쓰는 맛'이 없어져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 사회가 워낙 소비지향적이고 소비 수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그런지 고급품 소비를 생활의 재미로 여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명품가방이나 캐나다산 패딩의류가 고가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특히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에게 이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이런 경향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비에서 오는 재미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들은 긍정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할 게 없다'며 이민생활의 무료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한국식의 라이프스타일에 오랜 시간 젖어 살아왔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민 후의 생활이 참을 수 없게 무료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즐거운 지옥이며, 캐나다는 지루한 천국이다"라는 말이 이러한 변화를 잘 설명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이민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극복해야 할 현실적 여건들이 바뀔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어서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분명하게 나은 것일 수도 있다. "기왕에 가난할 것이면 캐나다에서 가난한 것이 낫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에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도 훨씬 덜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제도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기회가 잘 보장되어 있다. 부모가 가난하더라도 본인의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삶이 고단한 것은 캐나다도 마찬가지이며, 이 곳에도 극복해야 할 현실적 여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언어마저 자유롭지 않을 경우에는 이런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하는 일도 더욱 어려워진다. 물론 이민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민 후에도 많은 문제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영주권 취득)'이라는 지상과제의 해결에만 몰입한 나머지,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고민은 피상적인 수준에만 머물게 되고, '어떻게든 되겠지' 혹은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자'라는 근시안적인 시각에 빠져 구체적인 고민 없이 이민을 저지르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성공적인 이민 생활이 되기 힘들다. 영주권을 취득하게 될 때까지의 생활 방편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며, 그 이후의 생계수단에 대해서도 미리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 현실 문제에 대한 고민과 대책 없이 무작정 '이민(영주권 획득)'만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3. 이민은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다.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이민에 대한 다양한 꿈을 갖고 있을 것이다. 좀 두리뭉실하지만, 이런 다양한 꿈들을 포괄할 수 있는 한 가지 표현을 찾아보자면 아마도 그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삶보다 더 나은 삶. 그것은 경제적인 측면이 될 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적은 삶,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은 환경 속에서의 삶 등 다양한 형태들을 포괄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삶을 꿈꾸며 이민을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이민'은 그러한 삶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민이 목적화되어버린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특히 영주권을 미리 얻지 못하고, 일단 넘어온 후에 영주권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에 종종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런 과정은 보통 4~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정부의 이민 정책이 바뀌는 경우도 많고, 거기에 한 두 가지 불운이 겹치는 경우에는 결국 영주권 취득에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도 바닥이 나고 캐나다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은 먼저 이민이 본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효하고 실행 가능한 수단인지를 깊이 고민해야만 한다. 



4. 이민은 사회적 계층의 하향 이동이다.


  중고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온 1.5세대에게도 캐나다 주류사회 편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혹 특출 나게 뛰어난 두뇌와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늦게 이민을 와서도 큰 성공을 이루어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이다. 1.5세대가 하기 힘든 일이라면, 1세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예외적인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한국 사회에서 캐나다 사회로의 수평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꽤 많은 연봉을 받고 폼도 나는 화이트칼라였더라도, 캐나다에 와서 비슷한 위상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같은 직업을 유지하는 경우에도 그 위상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실례를 통해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내가 만나 본 어느 한인 회계사 분은 "한국에서는 사무장이나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거죠"라는 말을 했다.  같은 회계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실제 하는 일의 위상은 그만큼 낮아졌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큰 회계 법인 내의 멋진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부하직원들도 많이 부렸겠지만, 밴쿠버에서는 단칸 사무실에 직원 한 명 없이 혼자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자면 정말 폼이 안 나는 것이다. 그나마도 이런 경우는 나은 편이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자영업에 종사하게 되고,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블루칼라에 속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수입 역시 만족스럽기는 어렵다. 결국 이민 1세대의 경우, 이민 후에 한국에서와 같은 사회적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하향적 계층 이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민생활이 심각하게 우울해질 수도 있다. 다행히도 캐나다 사회는 직업으로 사람의 계층을 나누고 저울질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 본인의 자아와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내면적으로만 극복하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5. 이민은 자녀세대를 위한 희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1세보다는 1.5세가, 1.5세 보다는 2세가 현지 사회에 적응하고 주류사회에 편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이민자들 중에는 고학력자들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이민 2세대들 중에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자질을 경우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이 현지의 아이들과 경쟁할 때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현지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확률도 높은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민은 부모세대가 자식 세대를 위해서 하는 희생이 되는 셈이다. 자기 자신의 하향 계층이동을 감수하면서 자식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이민인 것이다.



이민의 '정의'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니, 다음 글을 통해서는 '성공적인 이민'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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