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teview Korea
[기명투표란?]
이 글의 주제는 "한국 국회에서의 기명투표"입니다. 한국 국회에서의 기명투표에 대한 분석에 앞서 먼저 기명투표(roll-call vote)라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현대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의회"라는 대의기관을 가지고 있고 의회는 주로 법을 만드는 일, 즉 "입법"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의회에서의 입법은 최종적으로 의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데, 본회의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은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법률"로 확정됩니다. 이때, 의원들은 자신의 이름과 투표선택을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는데 이를 "기명투표"라 합니다. 의회에서의 기명투표제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선거에서의 투표와는 대조적입니다. 그렇다면 왜 의원들의 투표기록은 기명투표라는 이름 하에 공개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의회정치 분야의 저명학 정치학자인 메이휴(Mayhew, 1974)는 그의 저서 Congress: The Electoral Connection 에서 의원들의 기명투표 또는 호명투표를 의원들이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입장을 표명(position taking)"하는 행위라 규명한 바 있고 케인스론 등(Canes-Wrone et al., 2002)은 실제로 기명투표로 나타난 의원들의 정책입장이 의원들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원들의 기명투표제는 의회에서의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의 대표자가 정책을 입안함에 있어서 얼마나 민의를 반영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제도입니다.
[한국 국회에서의 기명투표]
기명투표가 의원들의 정책입장을 표명하는 행위라는 메이휴의 주장은 의원들이 기명투표를 함에 있어서 의회 내에서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모든 의원들은 국민의 대표자로 각각의 양심에 따라 투표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기명투표를 통해 정책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교섭단체 간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응집력이 높은 의회(cohesive legislature)이며 개별 의원들이 이러한 합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Shin and Lee, Forthcoming). 물론, 개별의원의 양심에 의한 투표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정당규율 하에서 당파적 투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쟁도 있지만 이 포스팅의 핵심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아래의 <그림 1>은 이러한 국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16-18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대부분의 법안은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며 이 중 상당수는 95%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국회 본회의 투표에서는 의원의 자율성이 매우 낮고 많은 경우 교섭단체 간의 합의에 의해 법안이 처리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림 1>의 결과는 메이휴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기명투표를 통해 정책입장 표명을 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1>은 16대 국회 이후 100% 합의처리 되는 법안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많은 경우 교섭단체 간의 합의로부터 이탈하는 투표를 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국회에서의 기명투표에 대한 NOMINATE 분석]
그렇다면, 한국 국회에서도 의원들이 기명투표를 통해 정책입장 표명을 하고 있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는 풀과 로젠탈(Poole and Rosenthal, 1997)이 개발한 NOMINATE(Nominal Three-Step Estimation)라는 방법을 활용하여 한국 국회에서 의원들이 기명투표를 통해 정책입장을 표명하는지 여부를 살펴볼 것입니다. NOMINATE는 주어진 의원의 기명투표 자료를 통해 해당 의원의 최적점(ideal point)을 도출해내는 기법입니다(NOMINATE 방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Poole and Rosenthal, 1997; Poole, 2009 등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는 의회를 2차원의 공간으로 가정하고 이 안에서 개별 의원들의 정책적 위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아래의 <그림 2>부터 <그림 4>는 한국 국회에서의 기명투표에 대한 NOMINATE 분석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위의 그림 2부터 4를 보면 한국 국회에서도 기명투표가 개별 의원들의 정책입장 표명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개별 의원들이 각기 다른 최적점을 가지고 있고, 이는 의원들의 투표행태가 의회 내에서는 물론이고 소속 정당 내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섭단체 간의 합의제와 강력한 정당규율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국회에서도 기명투표는 개별 의원들이 자신의 정책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포스팅에서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한통속" 내지 "국회의원들은 정당에 기속된 거수기"라는 통념이 사실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의회연구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정당 양극화"(party polarization)가 한국 국회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