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초에 사교성이 없는, 아싸력이 만렙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친구는 같은 반에 딱 한 명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적은 별로 없었다. 가끔 쓸쓸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친구의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혼자 공상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상상의 세계에 비해 현실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집에서는 방에 틀어박혀 만화를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날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이 없는 아이였던 내게 점심시간은 고역이었다. 다들 밥을 먹는 시간보다 얘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나는 할 말도 없었고 그들의 말이 재밌지도 않아서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가족들이 다 말을 하지 않았었나 보다. 그때의 나는 '당연히 밥을 먹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그게 편했다.
말도 없고 재미없는 아이였던 나와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언젠가 한 시절에는 혼자 밥을 먹은 적도 꽤 됐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딱히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고 좀 머쓱한 정도였던 것 같다.
한번은 새 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당에서 나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고,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기도할 수 있냐고, 친해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그 모습은 꾸며진 모습이었다. 나는 미사 시간마다 온갖 잡생각을 하는 아이였고, 그런 자세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겉모습만 그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친구가 나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할까 봐 나는 항상 거리를 뒀고 그 친구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의 은따 경험은 초등학생 4학년 때였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휴스턴 한인학교에 있는 어느 초등학생의 집에 2주간 머무르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전 해인가, 그 학교 학생 중 한 명이 이미 우리 집에 다녀간 적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 아이의 집에 내가 방문하러 가는 것이었다.
대상 학년은 초등학생 4~6학년이었는데, 4학년 여자아이는 나 혼자였다. 참가하는 학생 중 아는 아이라고는, 하필 나를 싫어하는,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 한 명뿐이었다. 그 아이는 어느 하굣길에서 맨손으로 잡은 벌을 내 앞에 들이밀고는 했다.
따돌림의 기류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생겼다. 원인 제공은 내가 했다(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라는 것은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나는 집으로 가져갈 선물을 사기 위해 기내 브로슈어를 보고 있었다. 작은 향수가 여러 개 묶여 있는 것이 예뻐 보이길래 그걸 살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본 5, 6학년 언니들이 자기들도 뭔가를 사려고 브로슈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선생님이 언니들을 가볍게 꾸짖자, 언니들이 "쟤가 먼저 사려고 했다"하며 나를 가리켰고,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난 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보기만 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쁜 짓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언니들에게 소위 미운털이 박혔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 언니들이 나를 심하게 괴롭힌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달랐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혼자 있더라도 집에 가면 가족이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오롯이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심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5학년 언니가 내게 와서 "너 저 언니들한테 찍혔어. 조심해." 하고 말했는데, 그 언니에게 내가 한 말은 "감사합니다"였다. 나한테 알려준 것이 고마웠고 나에게 말을 붙여준 것이 고마웠다.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는 어느 바닷가에서 잠시 머무르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언니들에 의해 어떤 6학년 언니 한 명이 그 바닷물에 풍덩 빠졌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들 버스에 올랐을 때 어떤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너를 빠뜨렸어야 됐는데 어려서 봐줬다."
그때도 나는 감사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상처는 놀랍게도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남아있었다.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 일이 부끄러워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한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가 "누구나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잖아"라고 했고 나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 했다(물론 누구나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다. 인싸력이 만렙인 내 남편은 그런 경험 따위 없다).
나는 눈치를 보며 그 친구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느 큰 방에 언니들이 다 같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나는 복도 어딘가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그 방에 나를 넣어주고 갔을 때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던 일. 놀이기구를 타러 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떤 언니와 짝이 되어 놀이기구를 탔는데 그 언니의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던 일 등을 말했다.
그 친구는 내 말을 듣더니 대폭소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때 내가 찍어온 사진은 모두 풍경 사진뿐이다"라고 했을 때는 눈물이 나도록 웃어댔다.
그때 알았다. 내가 내 상처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 때, 웃음거리까진 아니더라도 가벼운 이야기 소재로 삼을 수 있을 때 그 상처는 치유받을 수 있다는 걸. 그런 가벼운(?) 따돌림의 상처를 떨치는 데도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은따를 당했던 일이 사는 동안 내게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미움 받을 짓을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혀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날 싫어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림자와 빛은 공존하듯이 그때의 경험이 내게 남긴 좋은 측면도 있다. 나는 병적일 정도로 다른 사람이 따돌려지는 걸 보지 못한다. 뒤에서 남을 욕하는 것도 싫어한다(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살기 위해서 남 욕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에겐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경험상 알게 됐다. 따돌림을 당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라는 법은 없는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몇몇 시절에는 인싸로 지냈던 적도 있다. 그러면 같이 지내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따돌리려는 기운을 종종 감지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 예민한 나는 누군가 고의로 다른 사람을 은근하게 따돌리려는 낌새를 단번에 알아챘다. 세상에는 다른 누군가를 따돌림으로서 자신의 거짓된 강함을(때로는 약함을), 사교성을,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됐다.
따돌림의 문제는 한두 명의 소수만 따돌려지고 다수에 속하는 무리들은 서로 친절하고 선하며 잘 챙겨준다는 데 있다. 그들끼리는 서로를 괴롭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다수에 속하는 이들은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기 쉽고, 소수에 속하는 이들은 자신이 잘못된 거라고 믿어버리기 쉽다.
자신이 다수에 속해있다면 따돌림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다수에 속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을 챙겨주면 된다. 따돌려지는 분위기를 멈추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새로운 분위기대로 흘러간다(하지만 간혹 역공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휩쓸리는 대로 살아간다.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이상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에게 피해가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남을 따돌리는 사람이 명백한 악인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정혜신 작가는 "행동이 옳지 않다고 해서 감정까지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물론 이 말은 감정이 옳다고 해서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은따를 당했던 때를 멀리서 되돌아보면 모든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가며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서로 생채기를 내지만, 그런 순간들에도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