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눌린 이야기

그리고 약간의 종교 이야기

by 햇살바람


* 종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천주교가 아니신 분들은 읽으시면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천주교이시더라도 불편하실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은 스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전 육퇴 후 남편과 고기 구워 먹는 저녁.


"이거 볼래?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래."


남편이 핸드폰으로 영상 하나를 틀어주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경이로운 소문>을 보기 시작했다. <경이로운 소문>은 인간 '카운터(악귀 사냥꾼)'들이 인간 안에 들어가 있는 악귀들을 물리친다는 판타지 액션 히어로물이다. 원작이 웹툰이라 그런지 만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남편이 틀어준 건 시청률이 높았다는 3화였는데(시청률은 그 후로도 계속 높아졌다), 우리는 3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이틀 동안 6화까지 전부 몰아봤다.


그러다 드라마의 재미와는 별개로 고개를 드는 궁금증이 생겼다.


'악귀는 정말 있을까?'


예전에 '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도 나는 그것을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악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내가 가위에 눌렸던 경험 때문이다.







오래전 알던 지인 중에 가위에 자주 눌리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맡에서 누군가 두 사람이 계속 대화를 나누더란다. 그래서 지인은 라디오를 틀어놨나 보다 하고 그냥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라디오 플러그가 꼽혀 있지 않더라는 이야기... 가위에 수두룩하게 눌려봤다던 그녀는 가위에 눌리면 새끼손가락부터 움직여보라는 조언을 했었다.


나는 이제껏 딱 한 번 가위에 눌려봤다. 13년 전,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여름이었다. 기타에 빠져서 연습실만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는데, 새벽 2시에 연습실에서 돌아와 자려고 누웠을 때였던 것 같다. 난생처음 가위에 눌렸다. 그때 새끼손가락부터 움직여보려는 노력을 했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떤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웠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런 거야? 그래도 되는 거야?" 같은 어투였다. 목소리는 귓가에 들려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려왔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 머릿속에서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곧 그 여자 아이 외에 성인 두 명의 목소리도 같이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었고 이번에도 역시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도 나를 책망하는 듯, 말소리가 빠르고 거칠었다.


서로 자기 말을 하느라 바쁜 그들은 계속 쉬지 않고 말했고, 목소리는 웅웅 거리며 섞이고 한 데 엉겼다. 말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커지면서 머릿속을 어지럽힐수록,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심한 어지러움이 나를 삼켰다. 모든 건 (아마도) 잠깐 동안 벌어진 일들일 텐데,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고 눈도 떠지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이 그대로 침대 속에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어나야 돼.'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악을 지르며(물론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눈을 떴고, 눈이 떠지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스위치로 달려가 불을 켰다. 내가 누워 있던 침대를 돌아봤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또 그럴까.'

불을 켜고 한참을 있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회오리치는 바다에 머릿속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 다시 시작되려 했다. 다행히 아까보다는 수월하게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다시 불을 켰다.


이것이 내가 가위눌린 이야기의 전부다. 귀신을 본 것도 아니고, 딱히 소름 돋는 장면도 없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뒤 30대 초반 가을까지 8년 동안, 나는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없었다.


항상 불을 켜고 잤으니 모르긴 몰라도 전기세가 꽤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다가 중간에 깼을 때 불이 꺼져 있던 적도 종종 있다. 아마 내가 잠든 걸 보고 가족 중 누군가가 불을 꺼준 것일 테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깜깜한 어둠 속이면,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공포에 휩싸인 채 불을 켰는데, 불을 켜러 뛰어가는 그 2~3초의 시간이 끔찍이도 길었다. 나는 쫄보라서 공포 영화도 안 보는데, 그럴 때마다 꼭 공포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듣기로 엄마랑 여동생이 내 침대에 성수를 뿌려준 적도 꽤 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시 불을 끄고 잘 수 있게 된 건 30대 초반에 어느 가톨릭 성령 피정을 다녀온 후부터였다. 피정 중 성령 체험을 했는데(당시에는 성령 체험을 자주 했었고 그때가 제일 강한 체험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그때 나는 평소와 다른 숨을 쉬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쉬는 어느 숨 속에서 이제껏 맡은 적 없는 지독한 악취를 느꼈다. 나에게서 나쁜 기운이 나간 거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그 후부터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었다. 피정을 다녀오고 며칠 뒤,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을 끄고 누웠다. 그렇게 8년 만에 불을 끄고 잔 날,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가끔씩 두려움이 엄습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성가를 맘속으로 부르며 잠들곤 했다(이상하게 기도문보다 성가가 더 도움이 됐다). 지금은 남편과 아기랑 복작복작하게 자느라 성가를 맘속으로 부르며 자는 일도 거의 없다.


(이건 그저 내 이야기일 뿐, 가위에 눌리는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죄책감에 시달렸던, 그리고 일부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대부분의 죄들이, 그 8년 동안 지은 것들이었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나쁜 기운이 있었다는 글을 쓴다는 게 어찌 보면 께름칙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도 사탄이 들어갔었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8,33)" 하고 말하셨다.


일반 신자인 내가 써도 되는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 방심하는 순간 악귀는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에게 지금은 악귀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예수님조차도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 10,18)"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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