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엄마랑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by 햇살바람


그저께 가족 단톡방에 엄마가 사진 하나를 올렸다. 예전에 남편이 엄마에게 줬던 스타벅스 음료 쿠폰 2장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잊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한 듯했다. 카톡을 본 나는 오래돼 구겨진 쿠폰 사진을 클릭해 유효기간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2주가 남아있었다. "언제 가려고?" 묻는 내 질문에 "나는 언제나 가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이 갈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실에 머쓱해진 나는 어제 호야 하원 전에 엄마를 만나 함께 스타벅스에 갔다.


좁은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스타벅스가 낯선 엄마였지만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보더니 쉽게 메뉴를 골랐다. 각자 분홍빛과 초록빛 음료 하나씩을 고르고 치즈케이크까지 계산해 자리에 앉았다. 엄마랑 오래 얘기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제는 1시간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저녁에 일기를 쓰며 '앞으로 가끔이라도 엄마랑 수다 떠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라고 적으면서, 엄마랑 수다라니 나와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랑 단둘이 카페를 간 게 처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도 엄마랑 둘이서 카페를 간 기억은 없었다. 나는 딸인데도 성격이 곰살맞지 않아서인지 엄마와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엄마의 친구 역할은 여동생 담당이었다.

우리 집은 화목했지만 나는 문제가 많았다. 공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못했다. 중학생 때는 반에서 32명 중 29등까지 찍었고 시험은 고등학생 때 100점 만점에 20점까지 받아봤다. 비행청소년은 아니었지만 3mm짜리 피어싱을 하고 등교를 한다던가 수업 시간에 cd플레이어로 몰래 음악을 듣는다던가 맨 앞에 앉아서 벽에 낙서를 한다던가 영어 쪽지시험 때 커닝을 한다던가 하는 등의 일로 종종 교무실에 불려 가 혼났다.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으면 다른 선생님이 지나가며 "이런 애(겉보기에는 얌전할 것 같은 애)가 이러면 더 열 받더라" 하며 지나갔다.


고2 때는 집에 통금시간을 몇 번 어겼더니 아버지가 망치로 내 핸드폰을 부쉈다. 고3 때는 일 년 동안 지각, 조퇴, 결석을 한 횟수가 총 16번으로 반에서 제일 많았다. 대학교를 대충 다니다가 졸업한 후에는 서점에서 일했는데 저녁에 기타를 배운다는 핑계로 연습실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한 번은 한 달만인가 두 달만에 집에 갔는데 집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 큰 딸 때문에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고 들었다). 엇나간 삶은 점점 땅속을 파고들듯이 이십 대 후반까지 계속되다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내 발이 땅에 붙어 있구나를 그때 처음 느꼈다.


두 분 다 정상인 범주에 드는 좋은 분들이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나도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저 깊은 곳에는 다른 감정이 깔려 있다.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과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다. 아버지는 강압적인 사람이었고(아버지에게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는 항상 소리를 질러야 했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은 고등학생 때 학교 근처에서 잠시 혼자 산 적이 있는데 베개 밑에 숨겨 놓은 담배를 엄마가 발견한 적이 있다. 담배를 발견하고도 엄마는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여동생이 알려주기를 엄마는 그때 그 담배가 내 것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고, 그곳에는 나 혼자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뭘 물어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보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이 나를 믿어서라고 좋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평생 무관심으로 받아들였다.


엄마와 처음 둘이서 카페를 간 일로 예전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다정하게 엄마와 앉아있기까지 참 멀고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그동안 엄마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됐고 마흔을 앞두고 있다. 이전과는 많은 게 달라졌다. 한순간에 되진 않겠지만 이제는 엄마랑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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