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야가 어린이집에 간 첫날이다. 2주 간은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 오늘은 1시간 동안 같이 놀다 왔다. 집에 돌아와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이고, 낮잠을 재운 다음 글을 쓰려고 보니 이번 글이 100번째 글이다. 100번째 글이라고 해서 딱히 평소랑 다른 점은 없지만, '1000개의 글쓰기'를 목표로 정할 때 글이 100개씩 쌓일 때마다 그때의 느낌, 혹은 얻은 것들을 기록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소회를 남겨보려고 한다.
브런치를 시작한 게 작년 5월이니까 지금 10개월 정도 됐다. 정확히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291일째 날이다. 291일 동안 100개의 글을 썼으니 3일에 한 번 꼴로 글을 발행한 셈이다. 생각보다 많이 쓰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 글을 매일 쓰는 중이라 그나마 이 정도다.
대학생 때 문예창작과를 나오긴 했지만 사실 그동안 글을 제대로, 열심히 써본 적은 없었다. 마음속에 어떤 욕구는 있었지만 실천으로 옮길 엄두는 못 냈다. 그러다 2019년 가을에 <쾌락독서>라는 책에서 다음 구절을 만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책으로 노는 방법은 읽기 외에도 많다. 책 모임을 꾸려 책 수다 떨기,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책으로 잘난 척하기, 책 수집하기, 책을 테마로 여행하기... 그런데 그중 끝판왕은 역시 직접 책을 쓰기가 아닐까 싶다. (쾌락독서 178p)
책 쓰기를 나랑 너무 동떨어진 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쉽진 않겠지만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동안심장이 뛰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2020년 새해를 맞을 때 다이어리에 비전 5개를 적으면서, 마지막에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을 적었었다. 결국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그해 4월에 알게 되어, 작가 신청에 두 번 탈락한 후 세 번째 신청에 브런치 작가가 됐다. 아마 그보다 더 많이 탈락했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글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동시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금세 침체기가 찾아왔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2주 만이었다. '내 까짓 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행의 문턱을 넘지 못한 볼품없는 문장들이 작가의 서랍에 쌓여갔고, 내 글을 쓰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기웃거리기 바빴다.
그때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목표를 세웠다. 그게'브런치에 글 1000개 발행하기'였다. 1000개의 글을 발행하기 전까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는 써야 비로소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자격(다른 사람과 비교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1000개도 턱없이 부족할 수 있다. 손에 닿을 수 있는 목표를 정한 것뿐이다).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되는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런 고민들은 그때 가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닥치고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목표를 정한 것은 꽤 도움이 됐다. 좌절의 순간마다 '아직 1000개도 안 썼으면서 벌써 좌절하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하면 애초에 무언가를 기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그렇게 내 목표만 생각하면서 글을 썼고, 오늘 그 목표의 1/10 지점까지 왔다.
100번째 글을 발행하는 시점에 내가 얻은 것, 혹은 변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글을 써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건 알게 됐다(이건 매일 글쓰기를 하는 동안 알게 된 마음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우선순위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동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어느 날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했고 어느 날은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희생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굳이 계속 글을 쓰는 나를 보면서,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두 번째로, 글 쓰는 데 평정심을 갖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회 수 등의 이유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던 마음에서 벗어났다. 예전에는 조회 수가 떡상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붕 떴다가, 조회 수가 낮아지면 그래프가 꺾인 모양 그대로 침울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물론 조회수가 높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건 이제 안다.
세 번째는, 내 글을 읽어주는 브런치 작가님들과 구독자님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브런치는 정말 구독을 누르기가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경우에도,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은 거의 다 읽는 편이라 구독 한 번이 무척 신중해진다. 구독은 얼마 없는 내 시간을 바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 남편은 나를 구독하고도 내 글은 거의 읽지 않는다(호야 관련된 글만 본다 흥). 그걸 알기 때문에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말 못 할 감사함을 느낀다. 아무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글쓰기가 참 팍팍했을 것 같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 글쓰기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성찰이나 사색을 꽤나 빈번하게 하는 편이라 그걸로 된 게 아닐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독서량과 공부량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100번째 글 발행의 시시콜콜한 소회는 여기까지다. 200번째 글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남아있는 900개의 글이, 나뿐 아니라 읽어주는 분들에게도 즐거운 기다림이기를 염치없이 바라본다.